June 20,2019

데이터 조작으로 얼룩진 기름방울실험

노벨상 오디세이 (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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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측정의 날’이었던 지난 5월 20일은 국제 도량형 역사상 매우 특별한 날로 기록됐다. 바로 이날부터 질량 단위 킬로그램(㎏), 전류의 기본 단위 암페어(A), 온도 단위 켈빈(K), 물질의 양을 나타내는 몰(mol) 등 4개 단위의 개정된 정의가 공식 시행됐기 때문이다. 국제단위계의 7개 기본 단위 중 한 번에 4개 단위의 정의가 바뀐 것은 1875년 미터협약 이후 144년 만에 처음이다.

이번에 바뀐 4개 단위 중 하나인 암페어의 경우 전자 1개가 갖는 전하량, 즉 기본 전하 e를 변하지 않는 상수로 고정하고, 이것으로 암페어를 새롭게 정의하기로 했다. 현재 e를 구하는 방법은 초전도체 2개 사이에서 일어나는 조셉슨 효과를 이용한다.

그런데 전자의 기본전하량을 처음으로 정확히 측정하고, 모든 전자에 공통된 보편적 기본 전하의 존재를 실증한 것은 이미 1910년에 이루어졌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2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미국의 물리학자 로버트 앤드루스 밀리컨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아인슈타인과 나란히 서 있는 192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밀리컨(왼쪽).  ⓒ public domain

아인슈타인과 나란히 서 있는 1923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로버트 밀리컨(왼쪽). ⓒ public domain

1868년 3월 22일 미국 모리슨에서 목사 부부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오벌린대학에 입학한 이후 그리스어와 수학 과목을 특히 좋아한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러나 대학 졸업 이후 기초 물리학과의 강의를 맡으면서 물리학에 흥미를 갖게 됐다.

1893년 물리학 분야에서 석사 학위를 받은 그는 미국 조폐국에서 용해된 금과 은을 사용해 백열등 표면에서 방출되는 빛의 양극화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베를린대학과 괴팅겐대학에서 2년간 공부하다가 마이컬슨 교수의 초청으로 귀국한 다음 시카고대학에 새로 설립된 라이어슨연구소의 조수가 되었다.

밀리컨이 본격적으로 전자의 전하량 측정을 시작한 것은 시카고대학의 교수로 부임하기 3년 전인 1907년부터였다. 전자를 발견한 톰슨 연구팀은 상자 속에서 전기가 축적된 물방울이 중력에 의해 낙하할 때 전기장으로 조절해 전자의 전하값을 얻고자 시도했다.

물방울 대신 증발하지 않는 기름방울 사용

하지만 이 같은 방법은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상당히 부정확할 수밖에 없었다. 그 방법의 실험 오차를 줄이기 위해 고민하던 밀리컨은 더 센 전기장을 걸어서 공중에 떠 있는 물방울들만 측정하는 방법을 고안해냈다.

그런데 이 방법은 물방울이 금방 증발해 사라진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었다. 이 문제는 하비 플레처라는 그의 제자에 의해 간단히 해결됐다. 물방울 대신 잘 증발하지 않는 기름방울을 사용하는 방법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이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물리실험 중 하나로 꼽히는 밀리컨의 기름방울 실험이다.

로버트 밀리컨이 개발한 기름방울 실험 장치. ⓒ public domain

로버트 밀리컨이 개발한 기름방울 실험 장치. ⓒ public domain

이 실험을 통해 그는 전자에 의해 운반된 기본전하량을 정확히 측정하고, 그 양이 모든 전자에서 일정하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또한 모든 전하는 기본이 되는 최소 전하량의 배수로 이루어진다는 사실까지 알아냄으로써, 전하량의 값이 연속적이라는 주장이 잘못되었음을 밝혀냈다.

전자가 갖는 전하량은 자연의 기본상수 중 하나인데, 이를 정확히 측정했다는 것은 물리학에서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이를 통해 분자의 기체상수인 아보가드로 상수를 비롯해 플랑크 상수, 볼츠만 상수 등의 기초 상수들이 새롭게 계산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노벨상위원회는 밀리컨의 수상 업적으로 광전효과에 관한 정량적 연구도 빼놓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만약 그의 광전 효과에 대한 실험 결과가 없었다면 아인슈타인의 법칙은 무의미했을 것이며 보어의 이론도 지지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주에서 지구로 쏟아지는 모든 종류의 원자핵을 총칭하는 우주선(宇宙線)이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한 것도 밀리컨이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 헤스가 처음 발견한 우주선이 지구에서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그 같은 이름을 붙였다.

실험 조건 충족하지 않는 데이터만 제외

이외에도 스펙트럼분석을 연구해 단파장인 밀리컨선을 발견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긴 그는 캘리포니아공과대학의 총장으로 장기간 재임하며 지역의 작은 대학이었던 이 대학을 세계에서 기초과학을 가장 잘 가르치고 연구하는 대학으로 이끌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평소 테니스와 골프를 즐겼던 밀리컨은 1953년 12월 19일 캘리포니아의 산마리노에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는 사후에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데이터 조작 사건의 당사자가 되고 말았다.

그는 기름방울 실험 결과를 발표한 논문에 58개의 데이터를 게재했으며, 그것이 실험에서 도출된 모든 데이터라고 밝혔다. 그런데 밀리컨이 죽은 후 과학자들이 도서관에서 보관 중이던 그의 연구노트를 조사한 결과, 실험 중 그가 도출한 데이터는 총 175개로 나타난 것이다.

이는 밀리컨이 자신에게 유리한 데이터만을 선별해 논문의 결론을 유도했다는 의미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그는 순식간에 연구 윤리를 위반한 부도덕한 과학자로 낙인찍혔다.

하지만 그 후 새로운 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의외의 사실이 드러났다. 그가 버린 데이터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결과여서 그런 것이 아니라 실험 조건을 충족하지 않은 상태에서 도출된 데이터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즉, 제외시킨 데이터들은 실험에서 조건적인 문제가 있거나 서로 다른 방법을 사용해 오차가 너무 큰 경우, 측정 횟수가 충분하지 않은 경우였다. 밀리컨은 그 같은 데이터들을 제외한 이유에 대해서도 상세히 적어놓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졌다. 게다가 그가 삭제한 데이터들을 포함시키더라도 논문의 결과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는 사실도 확인됐다.

이로써 밀리컨은 데이터를 자신의 입맛대로 요리(cooking)했다는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그의 기름방울 실험만큼이나 유명한 물리학 실험 사건 중의 하나로 지금까지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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