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6,2019

미래의 다른 문명에게 남긴 메시지

과학 서평 / 숨

FacebookTwitter

최고의 과학 소설에 수여되는 모든 상을 석권하며 전 세계 21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작가, 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이 17년 만에 출간되었다. 작품집 ‘숨’은 SF계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휴고상과 영국과학소설협회상 등을 수상한 표제작 ‘숨’을 비롯해 총 9편의 중·단편을 수록했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하나의 우주’로 불리는 이번 작품집에는 과학적 논제가 풍성하다. 시간여행, 엔트로피, 인공지능, 외계 지성, 평행우주 그리고 생체 기억과 디지털 기억 등이 등장하며 현존하는 과학계 이슈를 망라한다.

철학적 질문도 가득하다. 새로운 과학 기술의 가능성은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태도는 무엇으로, 어떻게 변화하며 그 결과 인간은 어디로 향해 나아가는지, 인간의 자유의지는 삶의 의미와 어떻게 닿아있는지 묻는다.

과학적 논제와 철학적 질문은 저자가 고안한 흥미로운 이야기에 담겨있다. 테드 창은 독보적인 상상력을 통해 인류와 개인이 맺고 있는 관계를 끊임없이 추적하며 미래까지 이어질 오랜 질문을 캐낸다. 훌륭한 과학소설이 개발할 수 있는 낯설고 정밀한 감동을 새긴다.

숨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엘리

우주의 다른 종과 문명을 향해 보내는 편지

첫 번째 작품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은 시간여행을 다룬 작품이다. 작가 노트에서 테드 창은 1990년대 중반 미국의 이론물리학자 킵 손(Kip Thorne)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의 틀 안에서 어떻게 (이론상의) 타임머신을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 소설을 착안했다고 밝혔다.

‘킵 손이 묘사한 타임머신은 한 쌍의 문에 가까웠고, 한쪽 문으로 들어가거나 거기서 나오는 물체가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다른 문에서 나오거나 거기로 들어가는 식으로 기능했다’는 그의 상상은 ‘상인과 연금술사의 문’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소설에는 바그다드의 직물상인 푸와드가 등장한다. 그가 한 가게에서 ‘세월의 문’을 발견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과거로 갈 수 있다면 무엇이 달라질까? 미래를 볼 수 있다면 우리의 현재는 달라질까?’ 라는 물음을 서정적인 문체로 펼쳐낸다.

‘숨’은 앞선 소설보다 비관적인 미래를 담고 있다. 소설 속 화자의 세계는 무한하게 뻗어 나가는 단단한 크롬 내부 아르곤 공기실로, 이곳에는 공기압으로 구동하는 기계 인간들이 살고 있다. 화자인 과학자는 자신의 두뇌를 여는 ‘자기 해부’를 시행하고 생명의 원천은 공기가 아니라 기압 차이임을 증명한다. 기압이 평형 상태에 도달할 때, 우주는 그 모든 작동을 멈출 것이라는 논증을 이어가는 이 화자의 희망은 현존 인류가 꿈꾸는 구원과도 닮았다.

우주의 물질과 에너지 총량은 일정한데, 쓸모 있는 에너지를 사용하면 열과 같은 무용한 에너지로 전환돼 결국 우주는 종말을 맞을 수밖에 없다는 ‘엔트로피’ 개념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로, 우주의 다른 종과 문명을 향해 어느 해부학자가 남긴 편지라는 콘셉트의 소설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소설로는 드물게 과학 학술지 ‘네이처’지에 실린 작품이다. 이미 테드 창은 ‘인류 과학의 진화’를 2000년도에 게재한 바 있으니 처음은 아니다. 등장인물과 대화 없이 진행되는 이야기로 ‘버튼 하나와 큼지막한 녹색 LED 등 하나가 달려 있는’ 예측기의 출시로 많은 사람이 선택 행위를 중단하는 세계를 묘사한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환상일 뿐이라는 것이 증명된 세계의 인류를 말한다.

‘하드 SF’의 대가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는 전직 동물원 사육사가 소프트웨어 회사인 블루감마사에 취직하여 인공지능 애완동물인 디지언트를 훈련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이 작품은 테드 창의 유일한 중편 소설로 이미 2010년 발표와 동시에 출판된 바 있으나, ‘구글 어시스턴트(Assistant)’, 사물인터넷(IoT) 허브 ‘구글 홈’, AI 채팅플랫폼 ‘챗봇(Chatbot)’ 등 인공지능 서비스가 속속 출시된 이후에 감상은 또 다른 의미를 전해줄 것이다.

이 밖에도 작품집에는 생체적인 기억이 디지털적인 기억으로 대체되는 과정을 추적한 ‘사실적 진설, 감정적 진실’, 인류에 의해 멸종 직전으로 내몰린 종의 일원이 말하는 ‘거대한 침묵’, 평행우주를 직접 목격하고 선택하는 세계를 그린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등 과학적 사실과 법칙에 무게를 두고 쓴 이야기가 수록되어 있다.

한편 ‘하드 SF’의 대가로 불리는 테드 창은 미국 브라운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과학도이자 테크니컬 라이터(technical writer)이다. 소프트웨어 기업에서 테크니컬 라이팅을 병행하며 전 세계에서 개최되는 학제 간 콘퍼런스와 창작 워크숍에 참여하며 과학과 예술 영역에서 독보적인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과학과 예술, 과학과 철학을 오가는 사고 실험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는 그이지만 과작(寡作)의 작가로도 통한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