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2019

과학과 미술의 만남 ‘카메라 옵스큐라’

전승일의 과학융합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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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옵스큐라의 역사

카메라 옵스큐라(Camera obscura)는 ‘어두운 방’이라는 뜻의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는 용어로서,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사진 촬영 기계인 ‘카메라’의 어원이기도 하다.

카메라 옵스큐라는 어두운 방이나 상자 한 쪽 면에 있는 작은 구멍을 통해 빛을 통과시키면, 반대쪽 벽면에 외부의 풍경이나 형태가 거꾸로 투사되어 나타나는 현상을 기계장치로 만든 것으로서, 인류 역사에서 아주 오랫동안 관찰되고 연구되어 왔다.

카메라 옵스큐라 ⓒ public domain

카메라 옵스큐라 ⓒ public domain

기원전 4세기 무렵 고대 중국의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묵자(墨子)의 저서 ‘묵경(墨經)’에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가 기록되어 있으며, 비슷한 시기 고대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서 ‘자연학적인 문제들(Problemata Physica)’에는 카메라 옵스큐라의 원리를 이용해 바깥의 풍경을 관찰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의 수많은 연구와 그림이 수록되어 있는 12권의 필사본 저서 ‘코덱스 아틀란티쿠스(Codex Atlanticus)’에서도 카메라 옵스큐라에 대한 작동 원리 및 이를 이용한 미술에서의 원근법(遠近法)을 설명하였다.

그리고 16세기 이탈리아 과학자 지오반니 바티스타 델라 포르타(Giovanni Battista della Ports, 1504~1615)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빛에 의한 자연 현상의 하나로 보는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저서 ‘자연의 마술(Natural Magic, 1558)’을 통해 카메라 옵스큐라의 영상을 미술과 연관지어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사용할 것을 권장하기도 했다.

자연의 마술 ⓒ public domain

자연의 마술 ⓒ public domain

카메라 옵스큐라가 어두운 상자 속에 바깥의 풍경이나 사람의 모습을 투사하여 영상으로 만들어내는 원리는 과학적인 투시(透視)에 따른 미술에서의 선 원근법(Linear perspective) 및 소실점(消失點, vanishing point)의 원리와 매우 유사하다.

이러한 이유로 실제로 17~19세기 화가들은 좀 더 빨리, 그리고 좀 더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는 도구로 카메라 옵스큐라를 널리 사용하게 된다. 당시 화가들에게 카메라 옵스큐라에 투영된 이미지는 ‘객관적인 진실’이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영상기계와 예술(이원곤 지음)’에서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인공적인 눈(Artificial Eye)’이라고 부르면서 “그것은 화가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가능한 한 빨리 젊은 화가들로 하여금 이 신성한 그림을 연구하도록 하자”라는 프란체스코 알가로티(Francesco Algarotti, 1712~1764)의 ‘미술에서의 수필(1764)’ 속 글을 인용하여 소개하였다.

조선시대 카메라 옵스큐라, 칠실파려한

카메라 옵스큐라를 활용하여 그림을 그리는 기법은 우리나라 조선시대 1780년대에 이미 도입되어 초상화 제작에 활용되었다.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이며 시인이자 과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저술을 총정리한 문집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는 카메라 옵스큐라를 ‘칠실파려한(漆室玻瓈眼)’이라고 부르고, ‘칠실관화설(漆室觀火說)’이라는 개념을 통해 그 원리를 실험하고 연구한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칠실(漆室)’은 ‘어두운 방’, ‘파려’는 ‘유리’, ‘안(眼)’은 ‘보다’로 ‘캄캄한 방에서 유리 렌즈를 통해서 본다’라는 뜻으로, 카메라 옵스큐라의 순 우리식 표현의 한자말이다.

유언호 초상화 ⓒ public domain

유언호 초상화 ⓒ public domain

카메라 옵스큐라를 활용한 조선 후기 미술의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당대 최고의 초상화가로 손꼽히는 화산관(華山館) 이명기(李命基)가 1787년에 그린 ‘유언호 초상화’(보물 제1504호)이다. 유언호(兪彦鎬, 1730~1796)는 우의정(右議政)을 지낸 조선 후기의 문신(文臣)이다.

미술사학자 이태호 교수의 ‘조선 후기에 카메라 옵스큐라로 초상화를 그렸다’라는 논문에서는 조선 정조 시절 다산 정약용의 연구 기록과, 단원 김홍도와 쌍벽을 이루었던 궁중 화원 이명기의 초상화 기법을 통해 조선 후기 미술에서 카메라 옵스큐라 기법이 활용됐음을 실증해 보였다.

정약용의 ‘칠실파려한’ 연구와 이명기의 초상화는 과학과 예술의 만남을 보여주는 훌륭한 사례로서, 세계과학사 및 미술사에서 소중한 기록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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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작권자 2019.05.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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