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2019

통조림 직공이 밝혀낸 발효의 비밀

노벨상 오디세이 (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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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원에서 인간으로의 진화를 설명하는 여러 가설 중 ‘술 취한 원숭이 가설’이 있다. 잘 익은 과일이 발효하면 알코올이 만들어지는데, 과일의 발효는 당분이 많아야 가능하므로 칼로리가 매우 높다. 이처럼 생존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기 위해 알코올 냄새를 잘 맡아 술에 취한 원숭이들이 더 많은 짝짓기를 해 인간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발효는 알코올뿐만 아니라 인류의 식탁을 더욱 풍성하게 하는 데도 일조했다. 밀과 보리가 잘 자라는 고대 이집트에서 하루 동안 묵혀둔 밀가루 반죽이 훨씬 부드럽고 향기로운 빵이 된다는 사실이 우연히 발견된 이후 인류는 효모를 이용해 빵을 구워왔다.

150여 년 전만 해도 효모가 뭔지 몰랐기에 발효 현상을 기적처럼 여겼다. 이는 어원에서도 잘 드러난다. 발효를 뜻하는 영어 ‘퍼먼테이션(Fermentation)’의 어원은 ‘fever’로서 ‘열’이라는 의미다. 또한 효모는 영어로 ‘이스트(Yeast)’라 하는데, 이것은 그리스어로 ‘끓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모두 뜨겁게 끓고 열이 있다고 본 것이다.

효모가 가진 특정 단백질 촉매인 효소에 의해 발효가 유발된다는 사실을 밝혀내 190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에두아르트 부흐너. ⓒ Public Domain

효모가 가진 특정 단백질 촉매인 효소에 의해 발효가 유발된다는 사실을 밝혀내 190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에두아르트 부흐너. ⓒ Public Domain

효모를 처음 목격한 이는 네덜란드의 과학자 안토니 반 레벤후크다. 1680년에 그는 자신이 만든 독특한 구조의 단일렌즈 현미경으로 인류 최초로 맥주 시료에서 효모 덩어리를 관찰했다. 프랑스의 화학자 루이 파스퇴르는 1856년에 와인의 신맛을 내는 것이 효모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파스퇴르는 특히 알코올 발효와 효모 세포 간의 근본적인 관계를 파헤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발효가 단순한 화학반응이 아니라, 화학으로는 환원할 수 없는 생명의 고유 현상이라는 생기론(生氣論)를 펼쳤다. 그 후 몇 십 년 동안 유지된 파스퇴르의 이 같은 견해로 인해 발효 과학의 발전은 답보 상태였다.

기존 견해 뒤집은 획기적 연구 결과

그런데 1897년에 발효는 효모 세포에 의한 생명 현상이 아니라 효모 내에 있는 효소의 작용에 의해 일어난다는 획기적인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독일의 생화학자 에두아르트 부흐너(Eduard Buchner)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그는 살아 있는 효모만 발효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효모가 가진 특정 단백질 촉매인 효소에 의해 발효가 유발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는 발효가 효모 세포에 의한 생명의 직접 발현에 의해서만 나타난다는 기존 견해를 완전히 뒤집은 연구결과다.

이로 인해 과학자들은 그동안 이 분야의 발전을 방해했던 파스퇴르의 굴레에서 해방되었으며, 이후 발효에 관여하는 효소와 조효소가 잇따라 발견되고 분리되면서 ‘생화학’이라는 새로운 분야가 시작됐다. 에두아르트 부흐너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07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부흐너는 1860년 5월 20일 독일 뮌헨에서 법의학과 교수의 아들로 태어났다. 하지만 그가 12살 되던 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그는 주로 형의 도움을 받으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의 형인 한스 부흐너 역시 면역학 분야의 유명한 세균학자로서, 후에 동생과 함께 수많은 공동연구를 하기도 했다.

청년 시절 부흐너는 뮌헨 막시밀리안 김나지움에서 교육을 받고, 뮌헨공과대학의 전신이었던 한 실험실에 합류해 공부했다. 그러나 갑자기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인해 그는 일시적으로 학업을 포기하고 통조림 공장에 취업해야 했다. 통조림에 어떻게 설탕을 첨가해 보존하는지에 대한 이때의 경험은 추후 그의 발효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1884년 폴리테크닉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한 부흐너는 뮌헨의 한 연구실에서 아돌프 폰 바이어(1905년 노벨 화학상 수상)를 만나면서 화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아돌프 폰 바이어와의 인연은 그에게 많은 행운을 안겨주었다. 그는 뮌헨대학에서 아돌프의 보조 강사를 시작한 지 2년 만에 강사로 승진했으며, 그에게 발효를 주제로 강연과 실험을 할 수 있는 연구실을 열게 해준 이도 바로 아돌프였다.

식물학 공부하면서 알코올 발효에 관심

뮌헨식물원에서 식물학을 공부하면서 본격적으로 알코올 발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부흐너는 많은 실험 끝에 파스퇴르의 주장과는 달리 산소의 존재가 발효의 전제 조건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1896년 가을에 실험을 하던 중 그는 우연히 설탕을 알코올로 전환시키는 효소 혼합물을 발견했다. 이듬해 1월 9일 ‘효모 세포 없이 일어나는 알코올 발효에 관해’라는 제목으로 발효에 관한 최초의 논문을 발효한 부흐너는 자신이 발견한 그 효소 혼합물을 ‘치마아제(zymase)’라고 명명했다.

십수 종의 효소와 조효소적 요소로부터 이루어진 복잡한 구성의 이 유효물질의 발견으로 현대 과학은 발효의 생화학적 연구에 관계되는 모든 효소와 그 반응을 밝혀낼 수 있었다. 이 연구는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생화학 분야에서도 혁명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됐다.

그러나 치마아제의 발견은 그에게 더 많은 연구를 요구했다. 다른 과학자들이 제기하는 여러 반대 주장에 맞서 자신의 연구 결과를 방어해야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부흐너는 1902년까지 무려 17개의 논문을 발표했다. 특히 친형인 한스 부흐너 등과 공동으로 1903년에 출간한 치마아제에 관한 저서에서 그는 설탕의 알코올 발효에 관한 그의 주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1904년에 독일 화학회장으로 선출된 부흐너는 1914년 7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자원 입대했다. 그는 독일의 철혈 재상으로 알려진 비스마르크의 추종자였다. 1916년 교육 현장으로 돌아온 그는 1917년에 다시 전쟁에 합류해 루마니아 전선으로 파견됐다. 그리고 바로 그해 8월 3일 전투 중 파편에 맞아 중상을 입은 지 열흘 만에 그는 루마니아의 포차니 육군병원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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