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07,2019

금주 정책이 낳은 또 다른 폐해?

임산부 음주 규제가 오히려 아기 건강 해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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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연초부터 미국 대부분의 주에서는 술을 사고팔 수 없게 됐다. 금주법으로 일컬어진 수정헌법 18조가 발효되었기 때문이다. 이 법의 제정을 추진한 세력은 보수주의자들이었다.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을 비롯해 음주로 인한 노동 생산성 저하를 염려하던 산업 자본가들, 그리고 당시 맥주 산업을 주도하던 독일에 대한 적대심 등이 법 제정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금주법 탄생의 일등공신은 본격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신여성들이었다. 그들이 진심으로 없애고 싶었던 건 술 자체가 아니라 술에 취한 남편들이었다. 힘들게 번 돈을 술집에 가서 모두 탕진하고, 술에 취해 아내를 구타하는 남편들의 행위가 미웠던 것이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미국의 금주법을 탄생시킨 주인공은 보수주의가 아니라 페미니스트 운동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술에 취한 세계사’ / 마크 포사이스 著)

금주법을 이끈 대표적인 여성 운동가 중 한 명이 캐리 네이션이다. 첫 남편을 알코올 중독으로 떠나보내고 목사와 재혼한 그녀는 모든 사회문제가 술로 인해 발생한다고 믿고 술 판매 금지 운동을 벌였다. 캐리 네이션은 금주법이 제정되기 8년 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녀들의 활동 덕분에 1920년 8월에는 여성의 참정권을 보장하는 수정헌법 19조가 통과되기도 했다.

임산부의 음주를 제한하기 위해 시행하는 여러 정책들이 오히려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Public Domain

임산부의 음주를 제한하기 위해 시행하는 여러 정책들이 오히려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 Public Domain

그런데 금주법은 또 다른 폐해를 낳았다. 암시장에서 불법 거래되는 술 가격의 폭등을 불러온 것. 당시 위스키 트럭 1대 분이면 대도시의 집을 몇 십 채나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이 같은 엄청난 시장을 등에 업고 나타난 세력이 전설적인 마피아 보스 알 카포네였다.

금주법 덕분에 연간 1억 달러 이상의 수입을 올리게 된 알 카포네는 밀수를 할 때 비포장도로의 덜컹거리는 트럭 안에서도 잘 깨지지 않는 튼튼한 병을 만들기 위해 위스키병의 디자인을 바꾸도록 지시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디자인이 바로 바닥의 닿는 면이 넓은 것이 특징인 캐나디안 위스키다.

이처럼 밀주업자와 마피아의 배만 불리고 전국의 음주량을 오히려 증가시킨 금주법은 선거 공약으로 금주법 폐지를 내세운 루스벨트가 선거에서 당선된 이후 각주에서 서서히 자취를 감추었다. 금주법은 미국 헌법에서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 유일한 법이었으며, 유일하게 폐지된 수정헌법으로 남았다.

미국 헌법에서 개인 자유 제한한 유일한 법

금주법은 없어졌지만 미국 내의 여러 주에서는 임산부의 음주를 제한하는 규정들을 만들기 시작했다. 1973년에 임산부의 음주 효과에 대한 영향력이 있는 논문이 발표된 후 정책 입안자들이 임산부의 음주 폐해에 대해 눈을 돌렸기 때문이다. 그로 인해 임산부의 음주 관련 정책을 시행하는 주의 수가 1974년 1개 주에서 2013년에는 43개 주로 증가했다.

임신 중의 음주는 유산이나 사산 또는 태아 알코올 스펙트럼 장애(FASD)로 알려진 광범위한 장애를 일으킬 수 있다. FASD로 태어난 아기들은 외형적으로 나타나지 않더라도 학령기에 ADHD나 학습장애를 유발할 수 있으며, 성인이 되어서도 심장이나 신장 같은 장기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임산부의 과다한 알코올 섭취가 태아에게 해를 끼칠 수 있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과학자들이 동의하는 편이다. 문제는 그 양이다. 어느 정도까지 음주를 해도 안전한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런데 최근에 의외의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임산부의 음주를 제한하기 위해 시행하는 여러 정책들이 오히려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이다.

샌프란시스코 캘리포니아주립대(UCSF)의 사라 로버츠 교수와 미국 공공보건연구원의 미낙시 수바라만 박사팀은 1972년부터 2015년까지 미국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의 출생 기록으로 저체중 및 조산 비율을 측정했다. 그 후 그 결과를 임산부의 알코올 섭취에 관한 정책을 시행하는 주와의 관련 여부에 대입한 것.

그 결과 임산부의 음주를 막기 위해 술집이나 식당에 경고 표지를 붙이거나 임신 중 음주를 아동학대 등으로 규정하는 정책들이 태아의 저체중 및 조산 등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면 임산부 음주 경고문을 식당이나 술집에 붙이는 정책은 2015년에만 저체중 탄생 신생아의 수를 7375명 증가시켰고, 술을 마시는 임산부를 아동학대죄로 처벌하는 주에서는 조산하는 아기가 1만 2372명이 더 많았다.

실업률 높아지면 신생아 사망률 감소해

이에 대해 연구진은 음주 규제 정책이 임산부에게 병원에 더 가지 않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태아의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분석했다. 임산부의 음주가 큰 범죄로 취급당하다 보니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산부인과에 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럼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 연구진은 임산부에 대해서만 음주를 규제하는 것보다는 알코올 소비 자체를 전반적으로 줄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주류 판매 장소 및 시간을 제한하거나 주류세를 높여 자연스럽게 알코올 소비를 줄이는 방법을 들 수 있다.

술값이 높아져 사기 힘들어지면 실제로 아기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스페인 폼페우파브라대학 연구진은 아기들의 건강과 출생 지역에 대한 실업률 간의 연관관계를 조사한 결과, 실업률이 10% 오를 때 신생아 사망률이 7% 감소하고 저체중으로 태어나는 비율은 3% 감소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임산부들이 경기 침체기 동안 음주 및 흡연을 줄이는 대신 운동 및 수면 시간은 늘리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불황일 때 오히려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하지만 이런 효과는 어디까지나 소득의 일시적 감소에만 가능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경기 불황으로 소득이 줄어들면 사람들은 단기간 음주 등을 줄여 건강이 나아지지만, 장기 불황으로 이어지면 오히려 정신 건강과 육체 건강에 매우 해롭다.

주류세의 인상 역시 단기적 효과를 거둘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책의 효과가 미지수이긴 마찬가지다. 술이 건강에 해롭다는 것은 단순한 진리이지만, 그것을 규제하는 정책을 펼치기란 참으로 쉬운 문제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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