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20,2019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의 딸들

과학기술 넘나들기(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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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명 과학자의 딸들은 대체적으로 어떠한 유형의 인물이었는지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큰 업적을 남긴 과학자 부모의 뒤를 이어 역시 과학자로 성장하여 나름 성공한 이들도 있겠지만, 과학과는 무관한 분야에서 활동하거나 평범한 여성들이 대부분일 것이기 때문이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과학자의 딸들, 그리고 그녀들과 과학자 부모와의 관계 등에 대한 여러 이야기에 대해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과학자의 딸 중에 부모 못지않게 연구에 매진하여 업적을 남긴 대표적 인물로는 퀴리 부인의 장녀인 이렌 퀴리가 있다. 이렌 퀴리 역시 어머니처럼 동료 과학자와 결혼하여 남편과 함께 여러 중요한 연구와 업적을 남긴 바 있다. 그녀는 남편인 졸리오 퀴리와 공동으로 1935년 노벨화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역사상 최초의 여성 수학자로 불리지만 비극적인 생애를 마쳤던 히파티아(Hypatia, 370~415) 역시 과학자 또는 수학자의 딸이다. 그녀는 370년경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시대의 수학자 테온(Theon)의 딸로 태어났다. 테온은 그리스 기하학의 완성자인 유클리드의 ‘기하학 원론(Element)’의 주석을 달고 수학을 발전시킨 인물로 유명하고, 또한 프톨레마이오스(Ptolemaeos)의 저서인 ‘알마제스트(Almagest)’에도 주석을 달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유명한 천문학서이자 수학서인 ‘알마제스트’의 주석은 사실은 테온이 아니라 그의 딸이었던 히파티아가 작업한 것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히파티아는 아버지보다 뛰어난 수학적 역량을 발휘했던 셈이다.

이들처럼 부모의 뒤를 이은 과학자는 아니었지만, 저명한 과학자의 딸로서 후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은 경우도 있다. 이들은 비범한 능력으로 아버지의 과학 연구를 돕지는 않았지만, 아버지와의 다정하고 애틋한 관계 등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저명 과학자들의 인간적 내면을 엿볼 수 있는 전기를 제공하기도 하였다.

다윈의 사촌누나이자 아내였던 엠마 다윈 ⓒ 위키미디어

다윈의 사촌누나이자 아내였던 엠마 다윈 ⓒ 위키미디어

진화론을 정립한 저명한 생물학자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이 바로 그런 경우이다. 다윈은 한 살 연상의 외사촌 누나였던 엠마 웨지우드(Emma Wedgwood Darwin, 1808~1896)와 결혼하여 슬하에 많은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 몇 명은 아주 어린 나이에 사망하기도 하였다.

근친결혼으로 인한 폐해가 아닐까 생각하는 이들도 있겠지만, 당시 사회의 높은 영유아 사망률 등을 고려하면 그리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는 없을 것이고 다윈 자신 또한 병약한 편이어서 여러 차례 병치레로 고생을 하곤 하였다.

어린 나이에 사망한 다윈의 큰딸 애니 ⓒ 위키미디어

어린 나이에 사망한 다윈의 큰딸 애니 ⓒ 위키미디어

다윈의 큰딸이었던 애니(Annie Darwin) 역시 아버지와 비슷한 증세로 고생을 하다가, 10살의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현대 의학계에서는 애니가 결핵에 걸려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당시 의학 수준으로는 정확한 병명도 알 수가 없었고 민간요법으로 치료 받은 것이 고작이었다.

자신이 가장 아끼고 귀여워했던 큰딸의 죽음에 큰 충격을 받은 다윈의 비통한 심정은 그가 1851년에 부인 엠마에게 쓴 편지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오늘 정오에 애니는 평안하게 마지막 잠에 들었다오. 너무도 짧은 생을 살다 간 이 아이와의 추억이 자꾸 생각나 얼마나 가슴이 아픈지 모르겠소. 한 번도 말썽 피운 적이 없는 사랑스러운 아이였지 않았소?…”

이때 다윈이 느꼈을 신에 대한 원망이 훗날 무신론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진화론 형성의 계가가 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호사가들의 지나친 억측이라 하겠다.

부녀 간의 애절한 사랑을 보여 준 또 하나의 위대한 과학자는 바로 ‘근대과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이다.

그는 평생 정식으로 결혼하지는 않았지만, 가정부였던 여인과 동거하여 슬하에 1남 2녀의 자식을 두었다. 그러나 갈릴레이의 자녀들은 ‘사생아’ 신분으로서 출생신고도 하지 못했고, 남들의 이목을 피해서 키워야만 했다.

갈릴레이의 딸들은 장성하자 수녀원으로 보내졌는데, 사생활의 비밀이 보장되는 은둔하기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또한 사생아 출신 여인들은 결혼하기도 어려웠으므로, 수녀가 되는 것이 여러모로 불가피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수녀가 된 갈릴레이의 딸 셀레스테 ⓒ https://wellcomeimages.org/indexplus/obf_images/a6/ae/deca5fdc2549a740f3fe29f88280.jpg

수녀가 된 갈릴레이의 딸 셀레스테 ⓒ https://wellcomeimages.org/indexplus/obf_images/a6/ae/deca5fdc2549a740f3fe29f88280.jpg

갈릴레이는 어릴 적에 비르지니아(Virginia)라는 세례명으로 불렀던 큰딸과 특히 애틋한 관계를 오랫동안 유지하였다. 그녀는 수녀가 될 때에 아버지가 하늘과 별에 큰 관심을 두고 연구하는 것을 알고서, 세례명에 하늘을 뜻하는 ‘셀레스테’를 포함하여 마리아 셀레스테(Maria Celeste)라고 이름을 지었다.

사생아로 태어나서 결혼도 못 하고 형편도 넉넉지 못한 수녀원에서 가난과 외로움을 겪으면서 아버지를 원망했을 법도 한데, 마리아 셀레스테는 도리어 갈릴레이를 평생 존경하고 헌신적인 애정을 보여주었다.

특히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이가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가택연금의 처벌을 받고 집에 갇혀있을 무렵, 셀레스테는 아버지에게 매일 편지를 쓰면서 그를 위로하였다. 이렇게 갈릴레이와 큰딸이 주고받은 애절한 편지가 수백 통이나 되는데, 갈릴레이는 편지에서 일상적인 얘기뿐 아니라 그의 학문적인 의견도 개진하는 등, 딸이라기보다는 다른 곳에 살고 있단 ‘동료’처럼 대하기도 하였다.

갈릴레이 기념우표 ⓒ 위키미디어

갈릴레이 기념우표 ⓒ 위키미디어

갈릴레이와 딸의 편지들 상당수는 소실되고 말았는데, 딸이 갈릴레이에게 보내는 124편의 현존 편지 등을 바탕으로 쓰여진 책으로서 ‘갈릴레오의 딸(Galileo’s Daughter)’이 있다.

뉴욕타임스 과학기자 출신의 저널리스트 데이바 소벨이 유려한 문체로 갈릴레이 부녀의 애절한 사랑 및 당대의 과학과 신앙 등을 잘 묘사하여 호평을 받았고, 국내에도 번역본이 출간된 바 있다.

또한 유명한 해외 연극의 하나인 ‘갈릴레이의 생애’가 지난 4월 국내 무대에 올랐고 역시 갈릴레이에 관련된 뮤지컬들도 나오면서, 공교롭게도 지난달에는 갈릴레이에 관한 예술작품들이 줄을 이어 선보인 바 있다.

이들 작품에서도 갈릴레이의 딸인 셀레스테가 중요한 캐릭터로 등장하여 우리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과 여운을 남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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