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019

원자도시에 숨겨진 여성들

과학서평 / 아토믹 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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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의 역사를 돌아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전쟁이 안 일어났어도 이렇게 빨리 과학기술이 발전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 말이다. 인류의 비극은 다른 면에서 보면 엄청나게 빠른 변화를 가져오는 촉진제인지도 모른다.

역사상 가장 중요한 과학 프로젝트 중 하나는 원자폭탄을 개발한 맨해튼 계획이다. 아인슈타인의 공식이 현실이 되어 엄청난 위력으로 2차 세계대전을 마무리한 사건.

사람들은 이 계획에 참가한 유명한 과학자들의 이름을 주로 거명한다. 오펜하이머는 연구개발에도 뛰어나지만, 행정가로서도 명망이 높은 인물이다. 일본 과학자가 쓴 책을 보면 아인슈타인은 2차 대전이 끝난 뒤 미국을 방문한 일본 과학자에게 눈물을 흘리면서 원폭투하를 사과했다고 한다.

자신들의 연구 내용이 수십 만 명을 살상하는 무기로 개발됐다는 사실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다가 중단하고 물러난 물리학자들도 있다.

그렇지만 원자폭탄의 제조는 물리학이면서도 공학이고 제조업이며 건설업이었다. 이 모든 것이 비밀리에 이뤄져야 했다. 이 어마어마한 계획에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중요한 작업이라는 것만 알고 충성스럽게 참여한 많은 여성들이 있었다.

원폭 개발에 참여한 시골 여성들    

아토믹 걸스(The Girls of Atomic City)는 맨해튼 계획에 참여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풀어낸 책이다. 얼마나 수많은 사람들을 인터뷰해서 엮어놓았는지 작가의 열성에 감탄하게 된다. 역사상 가장 어마어마한 무기 개발계획의 생생한 모습을 시골 출신 여성들의 눈높이에서 보려면 그 정도의 노력은 필요했을 것이다.

아토믹 걸스는 한편으로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같은 느낌도 준다. 독자들은 다 안다. 등장인물들이 원자폭탄 제조에 동원됐다는 사실을. 그러나 책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전혀 모른 채 오크리지의 황무한 곳에 모여 새 마을을 이루고 산다.

드니즈 키어넌 지음, 고정아 옮김 / (주)알마 값23,500원

드니즈 키어넌 지음, 고정아 옮김 / (주)알마

아토믹 걸스를 읽어나가면, 재깍재깍 시한폭탄의 초침 소리를 듣는 것 같다. 저 시한폭탄이 언제 뻥 터져버릴까 두려움 속에 마음을 졸이게 된다. 과연 등장인물들이 언제 어떤 방법으로 자신들이 원자폭탄을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될까 하는 조바심이다.

자신들이 원폭 제조에 마치 나사 바퀴처럼 부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여성들도 있었다. 그러나 알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서는 안되었다. 이 비밀유지 규정을 위반하면 오크리지 마을에서 퇴출되어야 한다.

마침내 ‘아토믹 걸스’가 자신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순간이 왔다. 원폭 투하의 소식은 라디오를 통해서 공식화됐다.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면 세뇌와 선전 공작에 가까운 비밀유지 조치도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다. 미국은 경제 대공황이라는 충격을 가까스로 빠져나오는 찰나였으며,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라는 악마의 피비린내 나는 살인극이 인류의 미래에 암흑을 내리던 시절이었다. 자신들이 하는 일이 승리를 돕고, 참전한 오빠, 동생, 아버지의 고통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믿었다.

내용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책 끝부분에는 저자의 인터뷰가 실렸다.

화학 관련 책을 쓰고 있던 드니즈 키어넌(Denise Kiernan)은 오크리지에서 여성들이 일하는 사진을 우연히 봤다. 2차대전 때 정부가 세운 도시에 7만5000명이 살았고, 상당수가 시골 출신 미혼여성이며, 대다수는 히로시마에 원폭이 떨어질 때까지 자신들이 무엇을 하는지 몰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자료조사에 이어 요양원을 방문해서 한사람씩 만났다.

2차 대전에 대한 책은 많지만, 확실히 아토믹 걸스는 독특하다. 드니즈 키어넌은 이 대중역사서가 그 시절과 특정 과학발전에 대한 사람들의 이해를 조금 더 높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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