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17,2019

생물학 역사 바꾼 결정학의 선구자

노벨상 오디세이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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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과학적인 주제를 잡아 ‘○○의 해’로 정하는 유네스코는 지난 2014년을 ‘결정학의 해’로 선포했다. 결정학이란 원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있는 고체의 결정 구조 및 원자 배열을 분석하고 연구하는 학문이다.

이제껏 이 분야의 연구와 응용에서 무려 20개의 노벨상 수상자가 배출됐다. 그런데 유네스코가 2014년을 결정학의 해로 정한 것은 이 분야에서 첫 노벨상이 나온 게 100년 전인 1914년이었기 때문이다. 결정에 의한 X선 회절 현상을 발견한 독일의 물리학자 막스 폰 라우에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1879년 10월 9일 코블렌츠 근교에서 군 장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물리학에 관심을 가졌던 아이였다. 1899년부터 슈트라스부르크대학과 괴팅겐대학에서 물리, 수학, 화학을 공부한 후 1902년에는 막스 플랑크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03년 광파의 상호작용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X선 회절에 대한 연구로 결정학 분야에서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막스 폰 라우에 박사. ⓒ public domain

X선 회절에 대한 연구로 결정학 분야에서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막스 폰 라우에 박사. ⓒ public domain

1905년 베를린대학의 이론물리학연구소로 돌아가 막스 플랑크의 조수가 된 그는 바로 그해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 이론에 흥분했다. 이후 그는 1907년부터 약 4년간 특수상대성 이론의 적용에 관한 8개의 논문을 발표할 만큼 아인슈타인에 빠져들었다.

1917년 아인슈타인을 이사장으로 하여 베를린 달렘에 물리학연구소가 설립되자, 폰 라우에는 독일 과학연구소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던 그 연구소의 행정 업무를 관장하기도 했다. 이후 나치가 집권해 유태인이라는 이유로 아인슈타인을 압박하자 그는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는 견책 당할 위험을 무릅쓴 채 나치가 인정하지 않는 상대성이론 등 아인슈타인의 과학적 견해를 지지했다. 하지만 폰 라우에는 반나치주의자였음에도 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강단에서 물러난 채 독일을 떠나지는 않았다.

스키를 타다 실험 아이디어 떠올려

그가 결정학 분야의 선구자가 되는 연구를 시작한 건 1912년이었다. 뢴트겐이 발견한 X선이 매우 짧은 파장을 가진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당시 많은 과학자들이 그 특성을 밝혀내는 실험에 도전하고 있었다.

동료들이 그에 대해 토론하는 것을 보고 폰 라우에는 결정을 통해 X선의 짧은 파장을 연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설을 세우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알프스에서 스키를 타다가 X선 회절에 대한 실험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그는 동료들에게 납 상자 안에 위치한 황산아연 결정체로 X선이 도달하게끔 하는 실험을 진행시켰다. 그 결정체의 뒤와 옆에는 감광판이 설치돼 있었는데, 그가 예측한 대로 필름에는 검은 형태의 점들이 나타났다. 결정 원자 구조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 X선 회절무늬였다.

1931년 11월 12일 막스 폰 라우에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 왼쪽부터 발터 네른스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로버트 밀리컨, 폰 라우에. ⓒ public domain

1931년 11월 12일 막스 폰 라우에가 주최한 만찬에 참석한 당대 최고 물리학자들. 왼쪽부터 발터 네른스트, 아인슈타인, 막스 플랑크, 로버트 밀리컨, 폰 라우에. ⓒ public domain

그가 발견한 결정체에서의 X선 회절현상은 X선이 매우 짧은 파장이라는 증거였다. 사람의 눈은 한계가 있다. 인간은 가시광선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미경을 써도 사람의 눈으로는 원자들 사이의 간격을 보기 힘들다.

그런데 X선처럼 아주 짧은 파장의 빛을 이용하면 원자들 사이의 거리를 재는 것이 가능해진다. 0.15나노미터 정도의 파장을 가지는 X선이 약 1나노미터 정도 두께의 결정면 사이에서 회절현상을 나타내는 것을 발견한 폰 라우에의 연구는 순식간에 중요한 과학 기술로 부상했다.

헨리 브래그와 그의 아들 로렌스 브래그는 폰 라우에가 촬영한 X선 회절 패턴을 이용해 원자의 전자 분포를 예측하고 염화나트륨의 구조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1913년에는 다이아몬드, 1925년에는 수정의 결정 구조가 이를 통해 밝혀졌다. DNA가 이중나선구조임을 밝혀 현대 생물학의 전환점을 만든 왓슨과 크릭의 연구도 바로 이 기술 덕분이었다.

스승인 막스 플랑크보다 노벨상 먼저 받아

폰 라우에는 결정에 의한 X선 회절의 연구로 X선의 전자기파로서의 성질을 확립한 공로를 인정받아 191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다음해인 1915년 노벨 물리학상은 그의 X선 회절 연구를 이용해 X선에 의한 결정 구조의 해석에 성공한 브래그 부자가 수상했다.

폰 라우에의 수상을 결정할 당시 노벨위원회는 이처럼 쉽게 의견의 일치를 본 경우는 드물다고 밝혔을 정도다. 막스 플랑크가 양자가설을 제안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것이 1918년이니 폰 라우에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현대 물리학의 양대 산맥으로 인정받는 스승보다 4년이나 먼저 노벨상을 받은 셈이다.

취리히대학과 프랑크푸르트대학 등에서 교수를 역임한 폰 라우에는 1919년에 베를린대학으로 돌아와 스승인 막스 플랑크와 다시 함께 연구했다. 그 후 그는 초전도 연구에서도 훌륭한 성과를 올렸다. 초전도 현상을 해소하는 데 필요한 자기장의 한계값이 물체의 형태와 함께 변하는 것을 설명한 1932년의 연구결과가 대표적이다.

스키를 타다 X선 실험 아이디어를 낼 만큼 스키광이었던 그는 등산과 자동차 운전을 좋아했다. 평소 빠른 속도를 즐기긴 했으나 자동차 사고를 한 번도 낸 적이 없었지만, 1960년 4월 8일 실험실로 가기 위해 차를 운전하던 중 초보 오토바이 운전자와 충돌 사고를 일으켰다.

오토바이 운전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으며, 폰 라우에의 자동차는 전복됐다. 그로부터 약 보름 후 그는 병상에서 영영 일어나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다.

2000년대 이후 노벨 물리학상의 주인공은 소립자 및 천문학 분야 등을 제외할 경우 대부분 나노과학 분야에서 탄생되고 있다. 이처럼 현대 과학의 대세가 된 나노과학이 새로운 과학 분야로 부상한 건 1990년대 초부터다. 하지만 나노과학의 시초는 X선 회절을 발견한 막스 폰 라우에의 연구에서부터 이미 싹트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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