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9,2019

난공불락 췌장암 치료 길 열릴까?

암 신호 단백질 정체·역할 밝혀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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췌장암은 우리나라 전체 암 발생건수 가운데 3% 정도로 적은 편이나, 사망률은 5위로 높다. 특히 췌장 악성종양은 5년 생존율이 8%밖에 되지 않아 공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췌장암 치료가 이렇듯 어려운 것은 아직까지 발생 원인을 잘 모르고, 조기 진단이 어렵기 때문이다. 진행성 췌장암(advanced pancreatic cancer)은 종종 증상이 없어 암이 여러 신체 부위로 퍼진 뒤에야 뒤늦게 진단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와 함께 종양세포가 여러 암 치료제에 저항성을 나타내는 ‘보호막(protective shield)’ 미세환경에 둘러싸여 있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활성화된 성상세포에서 주로 발현되는 LIF(녹색) 단백질이 췌장암 조직의 면역세포(보라색)와 암세포(노란색)에 나타나 있다.  CREDIT: Salk Institute

활성화된 성상세포에서 주로 발현되는 LIF(녹색) 단백질이 췌장암 조직의 면역세포(보라색)와 암세포(노란색)에 나타나 있다. ⓒSalk Institute

활성화된 성상세포가 문제의 단백질 분비

이런 상황에서 최근 미국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 과학자를 포함한 국제연구팀은 췌장암의 ‘아킬레스건’으로 보이는 신호 단백질의 역할을 밝혀내 조기 발견과 치료법 확립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 관련 동영상

연구팀은 정상 조직에서는 전형적으로 휴면상태에 있는 췌장 성상세포(pancreatic stellate cells)가 활성화돼 종양 둘레에 껍질 같은 보호막을 형성하는 단백질을 분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또 활성화된 성상세포는 백혈병억제인자(Leukemia inhibitory factor; LIF)로 불리는 신호 단백질을 분비해 이 단백질이 종양세포를 자극하는 신호를 전달함으로써 암 발생과 진행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따라서 이 LIF가 췌장암을 더욱 빠르고 효과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유용한 생체표지자(biomarker)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연구는 과학저널 ‘네이처’(Nature) 17일 자에 발표됐다.

활성화된 췌장 성상세포가 백혈병억제인자(LIF)로 불리는 신호 단백질을 분비해 종양세포를 자극함으로써 암 발생과 진행을 유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CREDIT: Salk Institute

활성화된 췌장 성상세포가 백혈병억제인자(LIF)로 불리는 신호 단백질을 분비해 종양세포를 자극함으로써 암 발생과 진행을 유도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동영상 캡처. ⓒSalk Institute

미세환경 내 세포들의 상호작용 연구 필요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지난해 미국에서 약 5만 5000명의 신규 췌장암 환자가 발생했고, 4만 4000명 이상이 췌장암으로 사망했다고 보고했다. NIH는 췌장암이 2030년까지 미국에서 암 관련 사망의 두 번째 원인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우리나라도 식생활 등이 서구화함에 따라 췌장암 발병과 사망률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소크 미국 암협회 토니 헌터(Tony Hunter) 교수는 “췌장암은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암이어서 그동안 치료에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라고 말하고, “암세포와 성상세포 사이의 통신 네트워크를 이해하면 조기 진단 도구와 함께 더욱 효과적인 치료법을 개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논문 제1저자인 유 쉬(Yu Shi) 소크 박사후 연구원은 “대부분의 고형암은 단일 세포에 이상이 생겨 발생하는 것이 아니고, 종양세포들이 조직 주변의 정상세포들과 어울려 살며 협력해서 작용한 결과”라며, “정상세포들은 불경한 동맹에 연루돼 함께 ‘타락함으로써(go bad)’ 암으로 이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종양 미세환경 안에서 서로 다른 유형의 세포들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는가를 이해한다면 궁극적으로 암을 치료할 수 좋은 표적을 발견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성상세포에서 분비된 LIF가 종양세포를 자극하는 것을 나타내는 그림. 동영상 캡처. CREDIT: Salk Institute

성상세포에서 분비된 LIF가 종양세포를 자극하는 것을 나타내는 그림. 동영상 캡처. ⓒSalk Institute

종양 진행 느려지고 약물반응 향상돼

연구팀은 췌장 성상세포와 암세포 간의 통신방법을 알기 위해 성상세포에서 나오는 단백질을 분석할 수 있는 세포 배양법을 처음으로 개발했다.

쉬 연구원은 “우리는 췌장암 종양세포에서 어떤 신호가 활성화되는지를 알고자 했는데, 활성화된 성상세포가 이웃한 암세포에 작용하는 LIF를 분비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라고 말했다.

LIF는 배아기에 줄기세포가 발달 잠재력을 유지하는 것을 돕는 중요 인자이나, 통상 성인이 되면 사라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팀은 LIF가 핵심 의사전달자라는 사실을 알아낸 뒤 이 단백질이 가능성 있는 치료 표적이 될 수 있는지를 평가하기 위해 췌장암을 일으킨 쥐 모델에서 LIF를 차단하거나 파괴해 LIF가 종양 발달에 미치는 영향과 치료에 대한 반응을 조사해 보았다.

그 결과, 차단과 파괴 모두 기능성 LIF 신호를 없앰으로써 종양 진행이 느려지고, 젬시타빈 같은 화학요법 약물에 대한 반응이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헌터 교수는 “이전의 연구들에서는 췌장 성상세포를 파괴하면 종양이 악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라며, “이는 성상세포를 파괴하는 것보다 여기에서 나오는 종양세포 자극 신호 전달을 막는 것이 낫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연구를 수행한 유 쉬 연구원(왼쪽)과 토니 헌터 교수 CREDIT: Salk Institute

연구를 수행한 유 쉬 연구원(왼쪽)과 토니 헌터 교수 ⓒSalk Institute

항-LIF 항체 임상 1상시험 시작

연구팀은 실험 쥐에서 LIF 차단 결과를 확인한 데 이어 췌장암 환자의 종양 조직과 혈액에서 LIF 수치를 조사했다. 환자의 종양과 혈액 모두에서 높은 수준의 LIF가 발견됐고, LIF 수치와 종양 진행 및 화학요법에 대한 반응 사이에 현저한 상관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이 같은 발견은 LIF가 췌장암의 진행 단계와 치료 반응을 알 수 있는 생체표지자로서의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현재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을 받은 유일한 췌장암 생체표지자는 CA19-9로 불리는 탄수화물이다. 이번 연구에서는 LIF가 췌장암의 정확하고 독립적인 척도이며, CA19-9보다 더 나은 치료 반응 지표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헌터 교수는 “질병의 상태와 반응을 더 잘 알기 위해 두 생체표지자를 조합해 사용하는 것도 가능한 일”이라며, “췌장암 치료에서 항-LIF 항체 치료를 다른 치료법과 조합해 사용하면 유용할 것”이라고 제안했다.

캐나다 회사인 노던 바이오로직스(Northern Biologics)사는 헌터 교수팀의 연구를 기초로 췌장암에 대한 임상 1상시험을 시작했다. 이 시험에서는 진행성 췌장암과 다른 형태의 암에서 LIF 신호를 차단하는 단일 클론(합성) 항체의 치료 효과를 테스트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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