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6,2019

반도체, 제대로 알아보자

과학서평 / 규석기 시대의 반도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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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산업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이다.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세계시장에서 활동하는 뉴스를 보면 정말 놀랍기 짝이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살짝 착각에 빠져든다. 반도체와 관련된 용어는 수시로 자주 듣기 때문에 사람들은 반도체에 대해서 제법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들어가면 사실 제대로 아는 것이 별로 없다.  그저 익숙한 단어일 뿐이다.

‘규석기 시대의 반도체’는 반도체가 무엇인지를 알기 쉽게 알려주는 책이다. 약간의 과학적인 원리를 설명하면서 내용과 용어의 의미를 설명한다.

어느 분야나 아는 만큼 이해한다고,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은 고인이 된 정주영 회장의 무게가 다시 느껴졌다. 우리나라 반도체는 삼성전자가 혼자 우뚝 선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느 틈인가 슬그머니 SK하이닉스가 치고 올라오고 있다.

이 책에는 SK하이닉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이름이 한 줄 나온다. ‘한국 반도체 산업의 또 하나의 축인 SK하이닉스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배짱 하나로 일궈진 기업이다.’

우리나라 반도체는 삼성, 현대, LG가 모두 다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성장해왔다. 그러다가 LG반도체와 현대전자는 IMF 직후인 1999년 빅딜로 합쳐지면서 사라졌다가 2012년 SK그룹에 인수되면서 ‘SK하이닉스’로 새롭게 출발했다.

 

김태섭 지음 / 한국표준협회미디어 값 16,000원 ⓒ ScienceTimes

김태섭 지음 / 한국표준협회미디어 ⓒ한국표준협회미디어

독자 눈높이에서 친절하게 설명

‘규석기’라는 단어는 통찰력을 불러일으키는 말이다. 인류 문명의 역사는 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를 지나왔다. 재료를 바탕으로 문명의 발전을 구분한다면, 지금은 확실히 반도체의 원료가 되는 규소(硅素 Si)가 기본을 이루는 ‘규석기 시대 문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중견 반도체 회사를 경영하면서도 회사를 방문하는 학생들에게 직접 반도체에 대한 강의를 계속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학생들이 혹은 독자들이 무엇을 모르고 있는지, 무엇을 설명해야 하는지 골고루 꿰뚫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사실 반도체와 관련된 용어는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는 익숙할 뿐이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그 중 하나의 단어가 램(RAM)이라는 말이다. 네이버를 뒤져보면 램에 대한 설명이 안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왜 이 단어에 랜덤 액세스(Random Access Memory)라는 말이 들어갔는지 설명하는 내용은 이 책에서 처음 읽었다. 랜덤 액세스에는 ‘임의로 접근함’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어 단어의 이 같은 의미는 조금 더 헷갈리게 할 뿐이다. 무엇이 랜덤이라는 말인가?

저자의 친절한 설명은 마침내 오래된 이 궁금증을 해소한다. HDD는 디스크 형태의 원반에 자기(磁氣) 정보가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정보를 읽으려면 정보가 기록된 위치로 헤드가 찾아가서 읽어내야 한다. 헤드가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시간이 걸린다.

이에 비해서 아무렇게나 혹은 임의로 찾아간다는 ‘랜덤 액세스 메모리(램)’에는 정보의 위치가 가로와 세로의 좌표로 주어진다. 정보를 읽을 때 물리적으로 헤드가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좌표의 값이 즉시 읽히기 때문에 정보의 위치가 어디에 있든지 값을 읽는데 시간 차이가 나지 않는다.

어느 위치에 있든지 동일한 시간이 걸린다는 의미가 램이라는 단어에는 숨어있다. 학생을 대상으로 친절하게 설명하려는 저자의 세심한 마음씀씀이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램과 롬(ROM Read Only Memory), 다시 말해서 읽기만 하는 메모리가 실제 내용에서는 얼마나 다른지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두껍지 않는 책이지만, 규석기 시대의 반도체는 이렇게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지식이 곳곳에 들어있다.

아날로그 반도체 역시 그 중 하나이다. 반도체는 모든 것이 디지털 신호로 이뤄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아날로그 반도체의 지분은 점점 높아진다. 스마트 폰은 각종 신체의 감각을 측정하고 처리해야 하기 때문에 시각, 촉각, 청각 등을 다루는 아날로그 반도체가 많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반도체의 약 60%가 아날로그 반도체이며 2017년 출시한 삼성 S8의 경우 12개의 센서가 들어있다.

저자는 2013년부터 회사를 방문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반도체 강의를 시작했다. 그때 만든 18장의 슬라이드가 이 책의 시작이다. 4년 동안 강의한 노하우가 그대로 스며들었다. 반도체를 전혀 모르는 사람, 궁금하지만 어려워서 포기한 사람, 반도체를 공부해야 할 사람에게 든든한 징검다리가 될 것이라는 저자의 자평은 크게 과장되지 않아 보인다.

소제목 역시 ‘마법의 돌, 대한민국 5000만 반도체 지식도서’라고 한 대목에서 저자의 의도가 묻어난다.

한편 ‘규석기 시대의 반도체’는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지정한 ’2018년 우수과학도서’에 선정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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