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7,2019

말라리아로 매독을 치료하다

노벨상 오디세이 (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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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샤를 8세와 영국의 헨리 8세는 공통점이 있다. 매독으로 사망했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다. 샤를 8세가 이탈리아 침공했을 당시 프랑스군의 대규모 성범죄로 인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매독은 한때 인류를 위기에 빠뜨렸던 가장 무서운 질병 중 하나였다.

19세기 말 프랑스 파리 인구의 15%가 매독 환자였으며, 약 400년간 유럽에서만 1000만명 이상이 매독으로 사망했다. 유명인 중에서 니체, 베토벤, 슈베르트, 톨스토이, 고갱, 보들레르 등이 매독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세기 초에는 수은이 매독 치료의 특효약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수은 요법이 유행했다. 하지만 수은의 독성이 면역체계를 약화시키는 부작용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거나 치유되지 않는 장애를 안은 채 평생을 고통스럽게 살아가기도 했다.

말라리아의 고열을 이용한 기발한 발상으로 신경성 매독의 치료법을 개발한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  ⓒ www.nobelprize.org

말라리아의 고열을 이용한 기발한 발상으로 신경성 매독의 치료법을 개발한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 ⓒ www.nobelprize.org

매독의 원인은 1905년에서야 밝혀졌다. 독일의 세균학자 샤우딘과 호프만에 의해 매독의 병원균인 스피로헤타가 발견된 것. 1909년에는 파울 에를리히에 의해 마침내 ‘마법의 탄환’으로 알려진 살바르산이라는 매독 치료제가 개발됐다.

그런데 매독에 감염된 후 약 15년 후에 발병하는 이상한 질병이 있다. 신경계를 침범한 매독이 뇌를 손상시키게 되면 운동장애가 일어나거나 판단력 및 기억 저하 등의 증상과 함께 마비를 일으키고 마침내는 치매에 빠지게 된다.

진행성 마비 혹은 마비성 치매라고도 불리는 이 정신질환은 뇌매독의 한 종류로서, 전체 매독환자의 약 4~5%에서 발병한다. 발병 후 약 3년 만에 죽음에 이르게 될 만큼 치명적이었을뿐더러 마비가 나타나는 주연령대가 32~45세 사이의 남성들이라 가족 전체에 큰 고통을 주고 있었다.

말라리아 환자의 피를 주입하는 실험

하지만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인 율리우스 바그너 야우레크는 기발한 발상으로 신경성 매독의 치료법을 개발했다. 매독 병원균인 스피로헤타가 고열에 약하다는 사실에 착안해 환자들을 말라리아에 감염시킨 방법이 바로 그것. 말라리아의 주 증세가 고열이니 병으로 병을 치료하는 방법이었던 셈이다.

1857년 3월 7일 오스트리아 벨스에서 태어난 야우레크는 어렸을 때부터 죽은 동물들을 해부하고 놀았다. 그것을 본 부친의 권유대로 빈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해 1880년에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원래 전공은 일반 및 실험 병리학이었지만, 그는 1883년부터 정신과를 맡았으며 1889년에는 그라츠대학의 신경정신과 교수가 되었다.

그가 발열성 질병에 환자를 감염시켜서 만성 정신병 환자를 치료한다는 아이디어를 처음 제시한 건 빈대학의 강사 시절부터였다. 그는 맨 처음에 포도상구균이나 장티푸스 주사 등으로 고열을 유도해 정신병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다. 1887년에는 투베르쿨린을 사용해 그것이 정신병에 미치는 영향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당시 그의 연구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 역시 자신의 아이디어를 현실화시키지 못했다. 그러다 30년 후인 1917년 그는 드디어 자신의 오랜 아이디어로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삼일열 말라리아에 감염된 환자의 피를 진행성 마비에 걸린 사람 9명에게 주입한 것이다.

그는 진행성 마비 환자들이 말라리아에 의해 야기된 극심한 고열을 겪을 때까지 치료를 보류했다. 삼일열 말라리아는 퀴닌으로 언제든 치료할 수 있는 비교적 무해한 질병이었다. 그 후 말라리아를 치료하기 위해 마침내 약을 투여한 결과 9명의 환자 중 3명이 완치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같은 치료법으로 완치되는 환자들을 야우레크 박사가 통계를 낸 결과 평균 약 30%에 이르렀으며 최고 50%까지 완치되었다. 그의 성공적인 실험 이후 이 치료법은 유럽을 비롯한 여러 국가의 임상병원에서 행해져 수천 명의 환자들이 혜택을 받았다.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정신과 의사

또한 이 치료법으로 완치된 환자들은 2~10년 후에도 꾸준히 좋은 건강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192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노벨상을 수상한 최초의 정신과 의사이기도 하다.

발열을 이용한 정신질환의 치료법에 평생을 바친 야우레크는 환자를 학대한 혐의로 기소된 적도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포탄 등의 충격으로 실어증 등에 걸린 병사들을 그는 전기충격요법으로 치료했다.

그런데 수많은 병사들을 성공적으로 치료했음에도 불구하고, 뇌에 전기를 공급하는 것은 고문과 같다고 하여 기소된 것이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환자를 고문한 것은 아니라는 증언 덕분에 그는 무사할 수 있었다.

그가 거둔 또 다른 성공은 요오드 부족이 갑상선종을 포함한 갑상선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다. 그의 발견 이후 오스트리아 정부는 식탁에 올리는 소금에 소량의 요오드를 첨가해 판매하도록 했다.

야우레크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다소 내성적이며 냉담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그의 제자들은 모두 그의 밑에서 공부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1928년에 퇴임했는데, 1940년 9월 27일 빈에서 사망할 때까지 약 80편의 논문을 출판할 만큼 은퇴 후에도 활발한 연구활동을 이어갔다.

하지만 그가 사망한 바로 그해, 알렉산더 플레밍이 발견한 페니실린이 강력한 전염병 치료 효과를 갖고 있다는 연구결과가 미국의 플로리와 체인에 의해 발표됐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1년 인간에게 최초로 페니실린이 투여된 이후 야우레크의 말라리아 발열요법은 빛을 잃고 말았다.

페니실린이 매독에 대한 더 나은 치료법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대신 그의 치료법은 잘 듣지 않고 위험한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정부는 1950년에 발행된 500실링 지폐 도안에 야우레크의 초상화를 사용함으로써 그의 업적을 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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