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ne 19,2019

불멸 세포를 만든 우생학 맹신자

노벨상 오디세이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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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장기이식 수술은 1905년에 이루어진 각막 이식이었다. 하지만 피부나 각막이 아닌 체내 장기 기관의 이식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가 있었다. 이식된 장기에 피를 통하게 하는 혈관의 정밀한 연결이 바로 그것이다. 혈관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을 경우 이식된 장기는 괴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 무렵 새로운 혈관 봉합법을 개발해 장기이식의 전환점을 만든 이가 프랑스 의학자 알렉시 카렐이다. 1873년 6월 28일 프랑스 리옹 부근에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어릴 적부터 공부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리옹대학교 의학부에서 공부해 1900년에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곧바로 리옹병원에서 근무하면서 모교의 해부학 강의를 맡았다. 1902년부터 그는 실험외과학의 연구를 시작했는데, 그가 관심을 가진 것은 혈관 봉합과 장기 이식이었다.

혈관 봉합법과 장기이식을 개발한 공로로 19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알렉시 카렐이 군의관 시절 연구하고 있는 모습. ⓒ Public Domain

혈관 봉합법과 장기이식을 개발한 공로로 19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알렉시 카렐이 군의관 시절 연구하고 있는 모습. ⓒ Public Domain

바로 그해 ‘리옹 의학’에 발표한 자신의 첫 논문에서 그는 봉합술을 이용한 혈관 손상 치료법과 동물의 장기를 성공적으로 이식하는 방법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그의 의사 생활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았다. 자신의 목소리를 너무 앞세운 탓에 동료 의사들에게 배척을 당한 것이다.

프랑스 의료계가 너무 고리타분하고 기존 관습에만 얽매여 있다고 생각한 그는 의사를 그만둔 후 미국행을 택했다. 1904년에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시카고대학 생리학과에서 연구하다 1906년 뉴욕의 록펠러 의학연구소에 준사원으로 입사했다.

새로운 환경에서 연구에만 매진한 그는 그곳에서 마침내 새로운 혈관 봉합술인 ‘삼각봉합법’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가느다란 바늘에 실크 실을 꿰어 단 세 바늘땀만으로 혈관 연결 부위의 둥근 단면을 삼각형으로 만들어 연결하는 방식이었다.

죽지 않는 닭의 심장 만들어

삼각봉합법은 수술 후의 출혈이나 색전증 같은 부작용을 방지하는 데 매우 효과적일 뿐만 아니라 봉합 부위에 어떠한 협착도 생기지 않는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또한 이 방법은 매우 가느다란 미세혈관에도 적용할 수 있으며 동맥을 같은 길이의 정맥으로 대체하는 것도 가능하게 했다. 그리고 다른 혈관에서 떼어낸 조각으로 혈관 벽의 구멍을 막을 수도 있었다.

카렐은 자신의 혈관 봉합법을 이용해 동물을 대상으로 장기이식 실험에 착수했다. 우선 그는 개의 신장을 절제한 다음 다시 제자리에 이식하는 실험을 진행해 약 65%의 성공률을 달성했다.

심지어 개의 양쪽 신장을 모두 제거한 다음 하나만 다시 이식한 실험도 성공했다. 그는 동일한 방법으로 동물의 발을 다른 동물의 발로 이식하는 실험을 실시해 발이 정상적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노벨위원회는 혈관 봉합술과 장기이식술을 개발한 연구 업적을 인정해 191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그에게 수여했다. 그런데 그는 노벨상을 받은 바로 그해 또 하나의 중요한 실험 결과를 내놓았다. 시험관 접시에서 닭의 심장 근육 세포를 배양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언론에서 ‘죽지 않는 닭의 심장’이라고 소개된 이 세포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세포가 되었다. 특히 뉴욕의 언론들은 매년 이 세포가 태어난 생일을 기념해 카렐의 실험실에서 배양되고 있는 모습을 특별 취재해 보도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카렐은 프랑스로 돌아가 육군 의료부대에서 소령으로 근무했다. 이때도 새로운 연구에 대한 그의 도전은 계속되었다. 다킨과 함께 감염된 상처의 표면을 여러 번 씻어내는 새로운 치료법인 ‘캐럴-다킨 치료법’을 개발한 것이다. 이 치료법은 1차 세계대전의 전쟁터에서 상처가 도지거나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많은 군인들을 살려내는 데 크게 공헌했다.

1930년대에는 단독 비행으로 대서양을 횡단해 미국의 영웅으로 떠오른 찰스 린드버그와의 융합 연구로 또 한 번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린드버그의 처형이 당시로서는 불치병이었던 심장판막증에 걸렸는데, 이 분야의 최고 전문가인 카렐과 함께 심장 수술 시  체외에서 피를 순환시켜주는 펌프, 즉 인공 심장의 개발에 나선 것이다.

린드버그와 함께 인공 심장 펌프 개발

비행기 전문가로서 펌프에 대한 지식이 많았던 린드버그와 약 5년간의 공동 연구 끝에 카렐은 마침내 자석으로 작동하는 인공 심장 펌프를 개발했다. 최초의 모델로 평가받은 이 인공 심폐기의 개발로 두 사람은 함께 ‘타임’지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했다.

하지만 린드버그의 처형은 이 장치가 개발된 1934년에 사망했으며, 이 장치 역시 당장 임상에서 사용할 만큼 실용적이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장치는 적출한 장기를 20여 일 동안 살려 놓을 수 있었고, 덕분에 카렐은 여러 가지 장기이식 실험을 계속할 수 있었다.

끊임없는 연구와 수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그는 말년의 행적 때문에 존경 받는 인물로 남지 못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카렐은 다시 조국인 프랑스로 돌아갔다. 당시 프랑스는 독일과의 전쟁에 패해 나치와 프랑스 괴뢰정부인 비시 정부가 들어서 있었다.

문제는 그가 비시 정부에서 설립한 인간문제연구소의 책임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평소 우생학을 지지했던 그는 유대인 수용소에 혈통생물학 연구팀을 보내 이민 가정의 생물학적 특질을 연구하는가 하면 유전병 검사 후 이상이 없다는 증명서를 받아야 결혼할 수 있다는 법을 만드는 데도 앞장섰다.

이로 인해 그는 프랑스를 비롯한 여러 국가에서 비난을 받았으며, 1944년 프랑스에서 독일이 철수한 후에는 철저히 배척당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인 1944년 11월 5일 그는 파리에서 사망했다.

신기한 것은 카렐이 배양한 닭의 심장이 그가 죽고도 2년간이나 살아 있었다는 점이다. 무려 34년간이나 시험관 접시에서 생존한 이 심장세포는 결국 아무도 돌보지 않은 탓에 죽은 채 버려졌다. 그래도 카렐이 만든 이 심장세포 덕분에 살아 있는 세포는 본질적으로 죽지 않고 영원히 분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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