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3,2019

세상을 밝히려다 실명한 발명가

노벨상 오디세이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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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9년 12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 플럼 섬의 등대지기는 장을 보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육지로 향했다. 하지만 육지에 거의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심한 바람을 동반한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등대지기는 필사적인 노력을 했으나 등대가 있는 섬으로 되돌아가지 못했고, 결국 그가 우려했던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그날 밤 2척의 선박이 불이 꺼진 등대를 찾지 못하고 연이어 배가 부서지는 사고를 당한 것이다. 원거리의 바다를 항해하는 선박의 경우 가장 조심해야 할 구간은 바로 육지와 근접한 마지막 구간이며, 등대는 그런 사고를 막아주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나무에 불을 붙이는 횃불로 시작된 등대의 역사는 기름, 양초, 석탄 등을 거쳐 19세기 무렵부터는 석유램프를 사용했다. 그러다 압축 석유가스를 구동력으로 점멸하는 등대 시스템이 구축되기도 했는데, 이 장치로는 1리터의 석유가스로 50회 이상 섬광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말년에 아내와 함께 산책하고 있는 구스타프 달렌(오른쪽). 그는 실험 도중 실명했음에도 발명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 Public Domain

말년에 아내와 함께 산책하고 있는 구스타프 달렌(오른쪽). 그는 실험 도중 실명했음에도 발명과 연구를 멈추지 않았다. ⓒ Public Domain

따라서 등대지기가 곁을 지키면서 지속적으로 연료를 공급해야 플럼 섬과 같은 사고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었다. 이런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자동조명을 사용하는 무인등대 시대를 열게 해준 이가 스웨덴의 발명가 닐스 구스타프 달렌이다.

1869년 11월 30일 스웨덴 스카라보르그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낙농을 연구하기 위해 농업학교로 진학했다. 평범한 농부가 될 뻔했던 그는 23세가 되던 해 삶의 진로를 바꾸는 발명품을 하나 만들었다. 배달된 우유의 품질을 확인할 수 있는 우유 지방 검사기를 직접 발명했던 것이다.

자신의 발명품을 유명한 발명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스톡홀름으로 간 그는 거기서 구스타프 드 라발을 만난다. 독학으로 이룬 달렌의 발명품에 감동한 드 라발은 그에게 기술 교육을 받도록 권유했고, 달렌은 바로 그해 예테보리의 공업학교에 입학해 4년 후 기사 자격을 취득했다.

무인등대 시대를 연 과학자

다시 스위스 취리히공과대학에서 1년간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예테보리에서 컨설팅 엔지니어로 일했다. 그러다 1901년에 아세틸렌을 취급하는 스웨덴의 한 회사에 기술 수석으로 입사했다.

탄화수소가스의 일종인 아세틸렌은 당시 등대의 새로운 연료로 주목받고 있었다. 빛이 매우 밝아서 석유가스보다 훨씬 짧은 시간만 점등해도 등대의 불빛으로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세틸렌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미세한 충격에도 쉽게 폭발한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1896년에 프랑스의 화학자들이 아세톤으로 폭발하지 않는 아세틸렌을 만들었지만, 오랫동안 저장해서 사용할 수는 없었다. 가스의 사용 등으로 저장소에 빈 공간이 생기게 되면 폭발성 아세틸렌이 거기에 가득 차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세틸렌을 오랫동안 안전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안전한 저장 방법이 필요했다.

입사 이후 이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달렌은 ‘aga’라는 이름의 다공성 물질을 개발했다. 이 물질을 철제 컨테이너에 넣은 후 아세틸렌을 넣으면 컨테이너 부피의 약 100배에 달하는 양을 채울 수 있을 정도였다. 또한 빈 공간이 생기지 않아 아세틸렌이 폭발할 염려도 없었다.

‘aga’ 등대를 실용화하기 위한 그의 연구는 계속되었다. 그는 가스 파이프 개폐 방법을 개선하기로 했다. 기존의 장치로는 1리터로 50회 이상 섬광을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는 완전히 새로운 방법으로 가스 파이프 개폐 장치를 고안해 1리터의 가스로 수천 번의 섬광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실명으로 노벨상 시상식에 참석 못해

1907년에는 해가 뜨면 닫히고 해가 지면 열리는 ‘태양 밸브’를 개발했다. 이 장치는 햇빛이 온도를 올려서 팽창시키면 닫히고, 햇빛이 없어지면 수축하여 밸브가 다시 열린다. 안개나 구름이 태양빛을 가려도 바로 작동할 만큼 민감한 이 장치의 개발로 aga 등대는 기존에 비해 90% 이상 가스 소비량을 줄일 수 있게 되었다.

1년 이상 점검이나 고장의 염려 없이 불을 밝힐 수 있는 이 장치 덕분에 그때부터는 무인도나 위험한 암초처럼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장소에도 등대를 설치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이 기술은 철도 차량의 조명이나 신호장치, 납땜, 주조 등의 다른 영역에도 매우 유용했다.

노벨위원회는 항해술의 발전에 기여하고 인류에게 가장 큰 혜택을 안겨준 구스타프 달렌을 1912년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그런데 노벨상 시상식에는 캐롤라인 연구소의 교수이자 유명한 안과의사였던 그의 동생 알빈 달렌이 대신 참석했다.

구스타프 달렌은 노벨상을 받기 직전 옥외에 있는 아세틸렌 실린더의 안전장치를 시험하던 중 갑작스러운 폭발로 심하게 부상당하고 시력까지 잃었기 때문이었다. 노벨위원회는 시상식에서 노벨상의 창시자인 알프레드 노벨이 특별히 호의를 가진 물리, 화학, 의학 분야에서는 때때로 연구자 개인의 안전이 희생당한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구스타프 달렌의 업적을 치하했다.

실명한 후에도 발명에 대한 달렌의 열의는 식지 않았다. 대표적인 것이 그를 병간호하느라 애쓰던 아내를 위해 발명한 ‘아가 쿠커(Aga Cooker)’다. 1922년 스웨덴에서 특허로 등록된 이 주방용품은 한번 가열하면 5시간 이상 열이 유지되며 직화가 아닌 복사열을 이용해 음식을 조리해 맛까지 뛰어나게 만드는 획기적인 발명품이었다. 다양한 모델 개선이 이어진 아가 쿠커는 지금도 21개국에서 판매되고 있을 정도다.

달렌은 1937년 12월 9일 별장에서 사망할 때까지 일생 동안 100건 이상의 특허를 받았다. 세상이 환하게 보였을 때나 실명 이후 모든 세상이 캄캄해진 후에나 발명은 그에게 삶의 의지를 불태우게 해준 준 하나의 등대 같은 존재였던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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