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uly 20,2019

수다 떨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과학서평 / 인류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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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가? 하는 복잡하고 심오한 질문에 자신 있게 답변할 사람은 별로 없다. 철학자의 답변과 신학자의 답변 그리고 과학자의 답변이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단 호모~(Homo~)의 범주로 좁혀서 추적하면 그 순간부터 범인을 쫓아가는 탐정소설같이 흥미진진함을 던져준다.

‘인류의 기원’은 그런 책 중 하나이다. 과학에 큰 관심이 없는 독자들에게 손쉽게 읽히면서도 과학적인 기본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이 책이 더욱 반가운 것은 우리나라 고인류학자와 과학기자의 협력으로 탄생했다는 점이다. 이상희 교수는 서울대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와 미국 미시간 대학에서 인류학과 석박사를 마치고 지금은 캘리포니아 대학교 리버사이드 캠퍼스(University of California at Riverside, UCR) 인류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우리나라에서 문과 여학생이 인문대학인 고고미술사학과를 나온 다음, 미국 대학의 인류학과의 교수로 오르기까지 그 긴 세월과 도전의 발자취가 얼마나 지난할까를 떠오르게 한다. 이렇게 보이지 않게 빙산처럼 숨어있는 탐구의 열정과 연구의 섬세한 궤적이 책 곳곳에 숨어있기에 흡인력을 갖는 것이다.

이상희 윤신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값 17,500원 ⓒ ScienceTimes

이상희 윤신영 지음 / ⓒ사이언스북스

공저자인 윤신영은 과학 잡지인 동아사이언스 전문기자이다. 윤씨는 인류기원에 대한 궁금증을 탐구하기 위해 해외에 있는 한국 출신의 인류학자를 수소문하다가 이상희 교수와 연결돼 이 책을 같이 쓰게 됐다.

유럽인에게 네안데르탈인 콤플렉스란?    

저자가 학생들에게 강의하던 내용을 중심으로 22개 이야기를 담았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내용은 어째서 서구 과학계가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관심이 높은가 하는 심리적인 내용까지 다뤄 더더욱 쉽게 이해된다.

키가 크고 얼굴이 희고 세련된 모습의 유럽인들에게 유럽에서 유물이 발견된 네안데르탈인은 무슨 미개하고 야만적이고 창피한 친척 같은 느낌을 준다고 저자는 간파했다. 그러므로 현생인류의 조상이 네안데르탈인인지 아닌지를 놓고 유럽 학계가 티격태격하면서 연구와 발견의 과정을 되풀이했다.

이 분야의 세계적인 대가인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스반테 페보 박사 연구팀은 1990년대에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의 DNA가 섞이지 않았다고 발표해서 유럽인들의 자존심을 세워줬다. 미토콘드리아 DNA 1만 3000개의 염기서열을 분석하고, 핵 DNA 100만 개를 분석해서 내 놓은 매우 과학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2010년 더 혁신적인 방법으로 페보 박사는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을 추출해서 해독했다. 30억 쌍이 넘는 염기서열을 분석했더니 유럽인들은 4% 정도 네안데르탈인에서 유전자를 물려받았다. 게다가 이 물려받은 유전자가 후각 시각 세포분열 정자 건강성 등 핵심적인 유전자였다. 언어와 관련된 FOXP2 유전자가 현생인류와 똑같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출산에 대한 관찰은 새롭다. 사람의 두드러지는 특징은 직립보행을 하면서 두뇌가 크다는 점이다. 여성이 직립보행하려면 골반이 작아야 하지만, 태아의 머리가 크기 때문에 출산하려면 골반이 커야 한다. 이 모순은 여성의 극심한 출산의 고통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큰 머리를 가진 태아가 좁은 골반에 난 산도(産道)를 무사히 통과하기 위해 눈물겨운 해결책이 나왔다. 마치 나사못처럼 머리를 돌리면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태아는 자궁에서 나와 산도로 어느 정도 내려온 다음 어깨를 산도에 맞추기 위해 한 번 몸을 비튼다. 조금 더 내려오면 산도의 모양이 달라진다. 태아는 달라진 산도에 머리모양을 맞추기 위해 몸을 다시 한 번 더 비튼다. 결국 태아는 뱃속에 있을 때 얼굴을 산모와 마주 보고 있다가, 막상 세상에 나오면 원래 위치에서 180도 틀어진 방향으로 머리를 돌린 상태이다. 원숭이 태아가 태어나면 바로 어미와 얼굴을 맞보는 것과는 크게 다르다.

호모사피엔스(왼쪽)과 네안데르탈인의 얼굴 비교 ⓒ 위키피디아

호모사피엔스(왼쪽)과 네안데르탈인의 얼굴 비교 ⓒ 위키피디아

이 때문에 인간은 출산할 때 태아의 머리가 뒤로 꺾이지 않도록 도와주는 조산부나 간호사가 필요하다. 인간은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회적 존재로 규정된다.

이 지점에서 저자는 옥스퍼드 대학교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Robin Dunbar)교수가 주장한 사회두뇌이론(social brain theory)를 활용해서 22개 중 하나의 주제로 잡았다. 머리가 큰 것이 도구를 사용하고 발명하고 조직하고 생업을 이어가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던바 교수는 그 이상으로, 큰 두뇌는 사회적인 활동에 사용된다고 주장한다.

사람들이 하는 대화 내용을 수 년 동안 엿듣고 분석해보니 남녀 할 것 없이 종교나 철학 정치보다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발견했다. 남녀 모두 밤새워 수다 떨기가 생활의 중요한 활동이다. 사회두뇌이론은 요약하면 ‘사람들은 수다를 떨기 위해 머리를 쓴다’는 이론이다.

 

수다는 말로 하는 그루밍 활동    

많이 경험해봤지만, 수다 떠는 내용들은 먹고사는데 별지장이 없어 보이므로 쓸데없다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입을 막으면 그 조직이 마비될 만큼 수다는 사실 인간과 사회의 존재 이유에 큰 영향을 미친다.

직장에서 상사 및 동료 부하직원들 사이에 일어나는 매우 소소하고 쫀쫀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으면 사람들은 살아갈 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것이 험담일 수도 있고, 칭찬이나 격려의 말수도 있지만 핵심은 인간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산다는 점이다.

이것은 반려동물들이 하루 온종일 서로 물고 빨고 털을 다듬어주는 행동과 유사한 점이 있다. ‘수다는 입으로 하는 털 다듬기(grooming)’이라는 저자의 표현은 인간에게 진짜 중요한 생활의 요소가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일깨워준다.

저자는 인간에게 감사한 것으로 직립보행과 큰 두뇌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 살기를 꼽았다. 인간은 오래 살기 때문에 할머니가 손주를 돌보면서 지혜와 각별한 관심을 쏟아붓는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 인간의 오래 살기는 이제 시작이다. 평균수명이 약 백 년 전에 비해서 지금은 두 배로 늘었다. 인간의 평균수명은 계속 늘어날 것이다.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장수시대로 접어들면서 인류학자들의 관심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아마도 인류학자들이 지나온 과거의 기록을 뒤집어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역할에만 만족하지 말고, 그것을 바탕으로 미래 인류의 생활상을 예상해보는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다면, 인류학의 새로운 지평이 열리지 않을까.

‘인류의 기원’은 곳곳에 묻어있는 동양인의 정서에 여성의 세련된 섬세함이 어우러져 인문학의 향기로 가득하다. 연대기로 풀어쓰는 딱딱한 과학 서적의 틀을 많이 벗어난 역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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