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2,2019

차를 마시면 정신건강에 도움 될까

과학에세이 302

인쇄하기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스크랩
FacebookTwitter

수년 전 TV의 한 프로그램에서 ‘커피를 내려주는’ 스님이 소개된 적이 있다. 템플스테이를 가면 스님과 담소를 나누는 시간이 있는데, 스님이 직접 차를 우려내 대접하는 게 보통이다(이하 차는 차나무의 잎을 우려낸 음료로 한정한다). 그런데 이 스님은 커피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절을 찾은 사람들에게도 차 대신 커피를 내놓았고 이게 화제가 된 것이다.

사찰에서는 커피가 아니라 차를 마셔야 한다는 건 편견이겠지만 그래도 필자 눈에 차가 더 어울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수천 년을 함께 한 과거가 드리운 그림자가 그만큼 긴가 보다.

그런데 ‘기능’ 면에서도 커피보다는 차가 사찰에 더 어울리는 음료 같다. 스님들은 명상을 통해 ‘성성적적(惺惺寂寂)’의 경지, 즉 의식이 맑게 깨어있으면서도 마음이 고요한 상태를 추구하는데, 차를 마시면 그런 효과를 볼 수 있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반면 커피를 마시면 ‘성성(惺惺)’의 상태가 되는 데 도움이 될 뿐이다. 그러나 이런 얘기는 속설일 뿐 과학은 아니다.

학술지 ‘네이처’ 2월 7일자는 ‘차’를 주제로 특별부록을 실었다.  ⓒSusan Burghart/‘네이처’

학술지 ‘네이처’ 2월 7일자는 ‘차’를 주제로 특별부록을 실었다. ⓒSusan Burghart/‘네이처’

피와 차이 없다?

학술지 ‘네이처’ 2월 7일자에는 ‘차(tea)’를 주제로 특별부록이 실렸다. 모두 일곱 편의 글이 있는데 첫 번째가 차나무 게놈 얘기다. 필자는 이 가운데 네 번째 글이 눈에 들어왔다. 프리랜서 작가 나타샤 길버트가 쓴 글로, 차가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최근 연구결과를 소개했다.

먼저 차를 마시면 우울증 발생의 위험성이 줄어든다는 내용이 나오는데 흥미롭게도 우리나라 사람들 얘기다.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 김지혜 교수팀은 식단 설문지를 바탕으로 일주일에 녹차를 석 잔 이상 마시는 그룹이 전혀 마시지 않는 그룹에 비해 우울증을 경험한 비율이 21% 낮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런데 이 결과를 두고 녹차의 효과라고 말하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 하루에 커피를 두 잔 이상 마시는 그룹도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는 그룹에 비해 우울증 발생 비율이 32%나 낮기 때문이다. 즉 녹차가 아니라 카페인 음료가 우울증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정신건강에 미치는 효과에 있어서 녹차와 커피는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다는 말인가.

2007년 영국 런던대의 심리학자 앤드류 스텝토에 교수는 차가 커피보다 높게 평가되는 건(‘적적(寂寂)’의 효과까지 있다고 하므로) 사회적 맥락의 결과가 아닐까 의심했다. 보통 커피는 시끌벅적한 카페에서 마시는 반면 차는 ‘다도(茶道)’라는 문화가 있을 정도로 마시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이 차분해지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스텝토 교수는 이를 확인하기 위해 한 그룹은 진짜 홍차를, 다른 그룹은 카페인을 탄 물에 색과 향을 넣어 홍차와 구분하기 어려운 가짜 홍차를 하루 네 잔씩 6주 동안 마시게 한 뒤 스트레스 과제(멀티테스킹)를 수행하게 했다.

진짜 홍차를 마신 그룹은 과제를 끝내고 50분 뒤 스트레스호르몬인 코르티솔의 수치가 47%나 줄어든 반면 가짜 홍차를 마신 그룹은 27% 주는 데 그쳤다. 확실히 차에는 ‘적적(寂寂)’의 효과를 주는 뭔가가 들어있다는 말이다(물론 카페인은 아니다).

카페인으로 설명 안 되는 효과

카페인은 몇몇 식물이 만드는 이차대사물질이다. 이차대사물질(secondary metabolite)은 광합성이나 성장 등 기본 기능 외에 식물이 방어 등의 목적으로 생산하는 물질이다. 그런데 차에는 카페인뿐 아니라 카테킨과 테아닌이라는 이차대사물질도 들어있다.

말린 찻잎에는 폴리페놀인 카테킨(catechin)의 함량이 최대 42%에 이르는데 차의 떫은 맛을 낸다. 카테킨으로 불리는 화합물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차에는 EGCG가 가장 많다. 차나무가 카테킨을 많이 만드는 이유는 해충을 쫓고 미생물에 저항하기 위해서다. 카페인(최대 함량 5%)과 비슷한 기능을 하는 셈이다.

한편 건조무게의 3% 내외를 차지하는 테아닌(theanine)은 아미노산으로 글루탐산과 에틸아민이 결합해 만들어진다. 단백질을 이루는 20가지 아미노산에는 포함되지 않지만 녹차의 감칠맛을 부여하고(글루탐산나트륨(MSG)과 구조를 공유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사람에게는 진정효과와 신경보호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차나무는 몸 안에 질소를 저장하기 위해 테아닌을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한 분자에 질소원자 두 개를 지니고 있다).

최근 연구자들은 뇌자도 측정을 통해 차를 마시면 정신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Swinburne Neuroimaging

최근 연구자들은 뇌자도 측정을 통해 차를 마시면 정신건강에 유익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 Swinburne Neuroimaging

2016년 스텝토 교수는 2007년 실험에서 홍차의 스트레스 해소 작용에 테아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추정하고 뇌자도를 측정해 이를 알아보기로 했다. 뇌자도(magnetoencephalography. 줄여서 MEG)는 뇌의 전기신호에서 유도된 자기신호를 측정하는 장치다.

테아닌 200㎎이 들어있는 영양음료(차 여덟 잔에 해당)를 마신 그룹은 테아닌이 없는 영양음료를 마신 그룹에 비해 스트레스호르몬 코르티솔의 수치가 낮았고 스트레스 과제를 수행한 뒤에도 좀 더 편하게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 뇌자도 측정 결과 후두엽의 알파파 활성이 높았다. 알파파는 이완 상태에서 많이 발생한다.

한편 차 카테킨의 주성분인 EGCG도 정신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내는 것으로 보인다. 뇌자도 측정 결과 EGCG가 포함된 음료를 마신 그룹은 뇌파 전 영역에서 신호가 강했다. 즉 주의집중을 할 때 증가하는 베타파가 늘어났을 뿐 아니라 이완 정도와 비례하는 알파파와 세타파도 늘어났다. 한마디로 ‘성성적적(惺惺寂寂)’의 상태인 셈이다.

기사에 따르면 커피 덕분에 많은 사실이 밝혀진 카페인과는 달리 테아닌과 카테킨은 생화학 및 생리학 측면의 연구가 아직 부족하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만으로도 차를 꾸준히 마신다면 커피 이상으로 정신건강에 유익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의견달기(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