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5,2019

현대 추상화에 숨은 뇌과학의 원리

과학서평 /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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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은 어렵다. 그림이란 기본적으로 무슨 형태가 있어야 하는데, 도대체 현대미술은 어떤 사물이나 형태를 그리지 않는다.

때문에 사람들은 이에 대해 ‘어떻게 이해를 하란 말이냐?’ 라는 불평을 털어놓곤 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제대로 된 대답이 나왔다.

‘어쩐지 미술에서 뇌과학이 보인다’(Reductionism in Art and Brain Science)를 보면 현대과학이 추상으로 흐른 것은 너무나 당연한 논리적 타당성과 과학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화가들은 2차 대전을 겪으면서 큰 충격과 혼란을 겪었다. 핵폭탄이 떨어져서 수십 만 명이 사망하고, 수 백 만명의 유대인들이 가스실에서 희생됐으며, 총탄에 사라진 젊은이들의 숫자는 수천 만 명이 넘었다.

화가들은 이 비극을 겪고 난 다음에 ‘과연 있는 대로 그리는 그림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의문을 품었다. 이들은 서유럽 문화의 전통인 기억, 연상, 향수, 전설, 신화 등을 해체해야 했다.

인상파 화가에서 바실리 칸딘스키와 피에트 몬드리안으로 이어지는 추상화의 태동은 뇌과학의 전문지식으로 보면 아주 쉽게 이해가 된다.

에릭 캔델 지음, 이한음 옮김 / 프시케의 숲 값 18,800 ⓒ ScienceTimes

에릭 캔델 지음, 이한음 옮김 / 프시케의 숲 값 18,800

칸딘스키가 구상화를 포기한 결정적인 계기는 음악가가 제공했다. 1911년 1월 1일 뮌헨에서 열린 신년음악회에서 칸딘스키는 쇤베르크의 ‘피아노 사중주 2번’과 ‘피아노를 위한 세개의 소품’을 들었다.

이 곡은 중심이 되는 음이 아예 없고 음색과 음조의 변화만을 가진 새로운 개념의 화성을 보여줬다. 무조성이라는 이 새로운 음악의 개념은 칸딘스키에세 형태가 없어도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확신을 줬다.

이후 그의 손에서는 자연에 있는 그 어떤 형태와도 관계가 없는 그림이 나오기 시작했다.

뇌과학으로 해석한 칸딘스키의 그림

그렇다면 과연 칸딘스키의 그림과 뇌과학이 무슨 연관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을 쓴 에릭 캔델(Eric R. Kandel)이 설명하는 뇌의 특징을 알면 쉽게 연결이 된다.

인간이 감각기관을 통해서 인지한 사물을 뇌에서 가공하는 과정을 보면, 미술과 뇌 과학 사이의 연관성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뇌에는 일명 ‘얼굴 담당’이 있다. 사람의 얼굴을 분별하는 일을 처리하는 부분이다.

이 부분이 손상되면, 사람 얼굴을 못 알아본다. 그냥 이 사람과 저 사람 얼굴이 비슷해서 혼동하는 정도가 아니다.

올리버 색스가 쓴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이러한 얼굴맹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 준다. 여기서 나오는 한 남자는 아내 얼굴이 모자라고 생각해서 잡아 끌어 머리에 쓰려고 한다.

뇌에는 얼굴 담당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형태를 담당하는 부분, 색을 처리하는 부분 등이 있다.

추상화가들이 사물의 형태 대신 점과 선과 면으로만 그림을 그리는 것은 뇌가 형태를 처리하는 그 방법과 과정을 적용한 것이다.

칸딘스키와 함께 세계 추상화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화가는 네덜란드의 피에트 몬드리안이다.

몬드리안 역시 완전한 선, 면, 색만을 바탕으로 한 유명한 추상화를 그렸다.

그런데 그림을 선, 면, 색으로 ‘환원’시킨 몬드리안의 환원주의 그림을 뒷받침할 생물학적 토대가 발견됐다. 1959년 데이비드 허블과 토르스텐 비셀은 ‘뇌 1차시각피질의 각 신경세포가 특정한 방향(수직 수평 빗금 등) 으로 놓인 단순한 선과 모서리에 반응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선과 모서리는 형태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이다. 두뇌의 고등한 영역은 모서리와 선을 기하학적으로 조립하며, 이것이 뇌에서 표상되는 심상이 된다.

다시 말해, 몬드리안은 뇌에서 일어나는 정보처리과정을 압축해서 그림으로 표현한 셈이다.

미국의 추상화 역시 뇌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다. 미국 추상화의 선구자로 꼽히는 대표적인 화가로는 잭슨 폴록, 마크 로스코, 모리스 루이스 등이 있다.

색이 감동을 주는 까닭을 뇌과학으로 보면

이들은 칸딘스키나 몬드리안 등 선과 면을 중요하게 여겼던 추상화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선과 면을 뛰어 넘어 바로 색으로 들어갔다. 그림을 색으로 표현한 것이다.

마크 로스코는 뭉텅이 색의 덩어리들을 배치하면서도 선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색과 색의 경계만이 있을 뿐이다.

모리스 루이스는 여기에서 더 나아가서 남들이 보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여러가지 색을 캔버스에 교묘하게 흘려서 그리는 독창성을 발휘했다.

잭슨 폴록의 경우 약간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캔버스를 땅바닥에 깔아 놓고는 막대기로 페인트를 묻혀서 뿌리거나, 페인트통에서 직접 페인트를 쏟아버리는 ‘액션 페인팅’을 발전시켰다.

얼핏 보면 이 미국적 추상화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이 추구한 현대 추상화의 방향을 그냥 기술적으로 발전시켰을 뿐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뇌 과학자의 눈으로 보면 이러한 색 위주의 그림 역시 뇌과학과 깊은 관련이 있다.

형태가 없어도 색은 그 자체로 엄청난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색으로 평면을 채우는 이러한 ‘색면화’는 뇌에서 색채와 관련된 연상을 이끌어내서 예술적 감흥을 일으킨다. 뇌과학의 언어로 설명하면, 뇌에는 색깔을 처리하는 전담 영역이 있는 것이다.

에릭 캔델은 미술과 뇌과학의 공통점으로 ‘환원주의’를 거론한다. 과학에서의 환원주의는 가장 단순한 표현형태를 탐구해서 유달리 복잡한 문제를 푸는 것이다.

미술 역시 마찬가지다. 사진기가 나오기 전 가장 훌륭한 미술가는 보이는 대로 아름답게 재현하는 사람이었다. 여기에 원근법이라고 하는, 평면을 평면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하는 속임수가 들어갔다.

이어 나온 인상파는 단순한 사실 묘사를 넘어 빛의 작용과 사물에 대한 화가의 인상을 그리는데 집중했다. 그리고 현대 미술은 추상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미술사가들은 현대 추상화가 크게 2가지를 해방했다고 설명한다. 형태로부터의 해방과 색채로부터의 해방이다.

뇌과학자가 보기에 미술에서의 추상이란, 뇌가 사물을 파악하는 원리를 환원주의 입장으로 표현한 것이다.

에릭 캔델 ⓒ 위키피디아

에릭 캔델 ⓒ 위키피디아

과학은 수학-물리-화학-생물 사이의 통합과 융합과 대화를 통해서 더욱 발전해 왔다.

이제 다음 차례는 인문학과 예술이 될 것이다. 그림을 해석하기 시작한 뇌과학은 그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에릭 캔델은 이러한 인문학-예술-과학 융합의 선구자이자, 권위자다. 그는 기억의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밝힌 공로로 2000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다.

그의 저서로는 무의식의 세계를 과학, 예술, 인문학을 넘나들며 쓴 ‘통찰의 시대’, 신경과학의 교과서로 꼽히는 ‘신경과학의 원리’가 있다. 회고록 ‘기억을 찾아서’는 미국국립아카데미 ‘최고의 책’(2007)으로 선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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