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2,2019

우리는 모두 ‘기막힌 행운’의 주인공

과학서평 /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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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이란 단어가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즈음, 정통 과학지식을 융합한 대표적인 분야를 꼽으라면 아마도 빅 히스토리(big history)가 아닐까 싶다.

빅 히스토리는 우주, 역사, 인간, 과학을 한데 묶어서 통합적으로 논하는 학문이다. 여러 과학분야를 아우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흥미롭고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는 것이 큰 특징이다.

그런데 빅 히스토리를 주장하는 과학자라고 해도, 그 과정을 통해 원래 자기 전공의 특징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 모든 것을 만든 기막힌 우연들’(A Most Improbable Journey)을 쓴 월터 앨버레즈(Walter Alvarez)는 지질학에서 출발했다.

그가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경력은 아버지가 1968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인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Luis Walter Alvarez 1911~1988)였다는 점이다. 그보다 더 자랑스러운 경력은 아버지와 함께 공룡의 멸종원인인 충돌이론을 발표했다는 점이다.

앨버레즈는 그 충돌이론의 현장을 방문해서 증명함으로써 우주와 지구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이정표를 세웠다.

멕시코 칙술루브 크레이터(Chicxulub Crater)에 약 6,600만 년 전 거대한 운석이 떨어졌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지름 180km의 거대한 충돌은 거대한 공룡의 지배를 끝내는 신호탄과 같았다.

이 신호탄을 시작으로 소수였던 포유류가 지구의 지배자로 등장하게 됐다. 그리고 포유류의 대표주자인 호모 사피엔스가 현재와 같은 문명을 건설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 이정은 옮김 / arte  18,000원 ⓒ ScienceTimes

월터 앨버레즈 지음, 이강환 이정은 옮김 / arte 18,000원

백악기 말 공룡의 멸종 직후 포유류들이 훨씬 커졌다. 과학자들이 화석크기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하니 북아메리카의 백악기 후기 포유류 평균 몸무게는 50g이었지만 몇 백 만년 사이에 500g으로 늘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몸무게는 이후 3000g까지 늘었다가, 이후 1,000만 년 동안은 약간 줄어들었다.

포유류의 종류도 늘었다. 화석으로 남은 포유류가 백악기 후기에는 20종이었다가 대멸종 이후 50종으로 늘었다. 최근에는 약 100종이 됐다. 이는 공룡이 사라졌기 때문에 포유류가 번성했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앨버레즈의 빅 히스토리는 비교적 따뜻하고 이해하기 쉬운 편이다. 따뜻한 빅 히스토리 학자가 알려주는 지식 중에는 지금 인류문명의 기초를 이룬 모래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현대 문명의 뿌리인 반도체, 컴퓨터, 스마트폰 등 온갖 전자제품에 들어가는 공통적인 재료가 바로 모래를 정제해서 만든 이산화규소이다.

지질학자의 예리한 관찰력으로 보면, 지구에 이렇게 많은 이산화규소(SiO2)가 널린 것은 인간에겐 엄청난 축복이다. 실리카, 석영으로도 불리는 이산화규소는 바로 모래의 주요 성분이기도 하다.

지구는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화학공장이 되어서 실리카를 생산한다. 판구조론에서 이야기하는 대로 대륙판과 해양판이 육중하게 부딪히면서 마찰을 일으킬 때, 그 마찰력에 의해 판 경계에서 암석이 데워져 마그마라는 용융암석이 생긴다.

이 마그마가 식어서 굳을 때 생기는 광물은 밀도가 높아 침강하고, 이산화규소가 풍부해진 마그마가 남았다가 늦게 고형화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이산화규소가 많은 화강암이 지구 위로 생성된다. 그 뒤 지구 판의 역할은 끝나고 오랜 시간에 걸친 풍화작용으로 석영이 정제된다.

화강암 속에 있는 다른 광물은 화학적으로 안정하지 않으므로 썩어 진흙으로 바뀌지만, 석영 입자는 지극히 안정적이어서 모래언덕이나 강, 해변에 쌓여 남는다. 반짝이는 모래입자 그리고 모래입자가 굳어 생긴 사암은 바로 현대문명의 기본을 이룬 반도체의 기본 재료로 이용된다.

다시 빅 히스토리 이야기로 돌아가자. 빅 히스토리의 4가지 영역은 우주, 지구, 생명과 인간이다. 이중 우주와 지구는 무생물 영역이고, 생명과 인간은 조금 다르다.

그런데 우주와 지구 같은 무생물 영역이 마치 컴퓨터 프로그램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예측 가능하고, 한 번 입력하면 모든 일이 자동적으로 진행된다면 말이다.

그러나 우주와 지구 영역에서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어디서나 기막힌 우연은 존재한다.

이는 특정한 상황에서 미래를 전혀 예측 불가능하게 만드는 복잡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공룡의 멸종과 인간의 등장을 불러온 칙술루브 충돌같은 현상은 예측불가능할까?

물리법칙으로 완전하게 결정되는 태양계의 궤도운동 만큼 정확하게 계산되는 것도 없다. 천문학자들은 일식이나 월식이 지구에서 언제 어디에서 보이는지 수백년 전에 미리 정확하게 예측한다. 우주선이 몇 년에 걸쳐 수 억km를 날아가 다른 행성과 만나도록 계획도 세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면 얼마나 재미 없는 우주가 될까? 천문학에서는 결정론적 혼돈(deterministic chaos)이라는 예측 불확실한 상황이 발생한다. 행성의 초기 위치와 속도의 작은 변화가 수천만 년 후에 큰 변화로 이어진다.

긴 범위에서는 행성 운동도 예측이 불가능하다. 이렇게 예측이 불가능한 것 중에 암석과 같은 고체가 부서지는 현상이 있다. 유체의 난류도 불가능하다. 바람, 폭풍, 해류 등도 자세한 예측이 어렵다.

우주와 지구 같은 무생물의 영역조차 이렇게 예측불가능이 많으니, 생명의 영역인 생명과 인간에서 기막힌 우연은 일상생활처럼 벌어진다.

사람이 순간순간 생각하고, 결정하고, 움직이고, 먹고, 마시고, 선택하는 그 모든 것은 기막힌 우연의 연속이다. 그 기막힌 우연의 맨 꼭대기에 바로 나와 당신이 있다.

공룡의 멸종을 불러온 운석의 충돌 상상도 Credit: Donald E. Davis/NASA/JPL

공룡의 멸종을 불러온 운석의 충돌 상상도 Credit: Donald E. Davis/NASA/JPL

사람의 정자와 난자 숫자까지 고려해서 따지면 어떨까.

두 주먹으로 깨끗한 모래를 쥔다면 10의 9승(10억)이 된다. 오늘날 실제로 태어나 살아있는 사람들의 숫자와 비슷하다. 그런데 10의 25승의 모래면 그랜드 캐년 10개를 채울 수 있는 양이다. 이 숫자는 현재 태어날 수도 있었지만 태어나지 못한 모든 사람의 숫자이다.

4세대 전까지 고려하면 이 숫자는 10의 100승으로 늘어난다. 이는 얼마나 대단한 숫자일까? 관측가능한 우주에 있는 모든 기본 입자의 수(10의 80승) 보다 크다.

저자는 이에 대해 “당신과 나는 이 엄청난 경우의 수에서 실제로 태어난, 기막힌 우연과 행운으로 선택받은 사람”이라고 말한다.

138억 년의 우주역사, 45억년의 지구 역사, 수 백만 년의 인류역사는 무수한 우연성을 바탕으로 예측불가능하게 이뤄져 왔다. 그것이 지금의 인간현실을 만들었으며, 우리는 이 세계와 현실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행운의 존재들이다.

빅 히스토리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지점에서는 존재할 것 같지도 않은 사건들이 등장한다. 생명의 등장이 그렇고, 인간의 등장이 그렇다. 인간의 모든 역사는 다 존재할 것 같지 않은 사건들의 연속이다.

저자가 보기에 생명과 인류의 탄생은 ‘자연법칙이 존재하지 않는’ 빅 히스토리의 시작이다.

그러므로 이 과학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생명 역사나 인류사를 지배하는 결정적인 법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

현재까지 저자가 발견한 법칙은 연속성(continuities)과 우연성(contingencies)라는 두 가지 축이다. 비록 우연성을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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