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y 26,2019

갈라파고스 거북, 장수의 비밀은…

2012년 죽은 '외로운 조지' 게놈 해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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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 다니다가 두 마리의 큰 거북을 만났는데, 각각 적어도 200파운드(약 90kg)는 나갔을 것이다. 한 마리는 선인장 조각을 먹다가 내가 가까이 가자, 나를 응시하면서 천천히 다른 곳으로 갔다. 다른 한 마리는 깊게 쉿! 소리를 내며 머리를 집어넣었다. 이 거대한 파충류는, 검은 용암과 잎 없는 관목과 큰 선인장으로 둘러싸여서, 내 상상 속에서는 마치 대홍수 이전의 동물처럼 보였다.

- 찰스 다윈, ‘비글호 항해기’에서

1831년 22세의 영국 청년 찰스 다윈은 우여곡절 끝에 남아메리카 해양을 조사하는 비글호와 함께 하는 행운을 얻었다. 5년 136일에 걸친 여행은 그의 일생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고, 1859년 ‘종의 기원’이 탄생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여행 직후라고 할 수 있는 1839년 출간한 ‘비글호 항해기’는 여정에 따른 일지 형식을 띠고 있다. 그중 1835년 9월 중순에서 10월 중순까지 한 달여 동안 진행된 갈라파고스 제도 탐사 이야기를 담은 17장은 (오늘날의 관점에서) 이 책의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처음 내린 채텀 섬(오늘날 이름은 산크리스토발 섬)에서 다윈은 커다란 거북 두 마리를 보고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는 그 뒤 갈라파고스 제도에 사는 주민들이 거북을 즐겨 먹는다는 사실을 알았다.

다윈은 섬에 따라 거북의 생김새가 다르다는 점도 발견했다. 갈라파고스 핀치와 함께 갈라파고스 거북은 다윈이 진화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영감을 줬다.

2012년 ‘외로운 조지’가 죽으면서 갈라파고스 제도에 살고 있는 갈라파고스거북은 10종이 됐다. 각 섬에 살고 있는 종과 추정 개체수를 보여주는 지도다(맨 위 핀타 섬에는 거북이 살지 않는다). 참고로 1835년 찰스 다윈이 채텀 섬(산크리스토발 섬. 오른쪽 끝)에서 마주친 거북은 외로운 조지(핀타섬코끼리거북)와 가까운 종(학명 C. chathamensis)으로 오늘날 1400~2000개체가 남아있다. ⓒ 네이처 제공

2012년 ‘외로운 조지’가 죽으면서 갈라파고스 제도에 살고 있는 갈라파고스거북은 10종이 됐다. 각 섬에 살고 있는 종과 추정 개체수를 보여주는 지도다(맨 위 핀타 섬에는 거북이 살지 않는다). 참고로 1835년 찰스 다윈이 채텀 섬(산크리스토발 섬. 오른쪽 끝)에서 마주친 거북은 외로운 조지(핀타섬코끼리거북)와 가까운 종(학명 C. chathamensis)으로 오늘날 1400~2000개체가 남아있다. ⓒ 네이처 제공

2012년 마지막 개체 죽으며 멸종

2012년 6월 24일, 갈라파고스 제도 산타크루즈 섬 찰스다윈연구소에서 살던 갈라파고스 거북 ‘외로운 조지(Lonesome George)’가 죽은 채 발견됐다.

이 거북이 이렇게 불린 까닭은 갈라파고스 제도에 살고 있는 갈라파고스 거북 11종 가운데 한 종인 핀타섬코끼리거북(학명 Chelonoidis abingdoni)의 생존해 있는 마지막 개체였기 때문이다.

1971년 갈라파고스 제도 북쪽 끝에 있는 핀타 섬에서 발견된 외로운 조지는 이듬해 찰스다윈연구소로 옮겨와 40년을 살다 세상을 떠났다.

외로운 조지의 죽음으로 핀타섬코끼리거북은 공식적으로 멸종했고 갈라파고스 제도에 살고 있는 갈라파고스 거북도 10종으로 줄었다. 외로운 조지의 죽음 직후 연구자들은 신체조직을 액체질소에 보관해 먼 훗날 시도될지도 모를 체세포 복제를 비롯한 다양한 연구에 대비했다.

학술지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12월 3일자에는 외로운 조지의 게놈을 해독해 거대 거북의 장수 비결을 유전자 차원에서 밝힌 연구결과가 실렸다.

스페인 오비에도대가 주축이 된 다국적 연구팀은 또 다른 거대 거북인 알다브라코끼리거북의 게놈도 함께 해독해 비교했다. 알다브라코끼리거북은 인도양 알다브라제도에 서식한다.

수명이 100년이 넘는 거대 거북은 육상 척추동물 가운데 가장 오래 산다. 수명이 200년으로 추정되는 개체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외로운 조지, 즉 갈라파고스거북의 게놈 크기는 23억 염기쌍으로 30억 염기쌍인 사람의 게놈보다 약간 작다. 그러나 유전자는 2만7208개로 추정돼 더 많았다.

게놈 서열을 비교한 결과 거대 거북과 사람이 공통조상에서 갈라진 시기는 3억 년이 넘고 두 거대 거북이 갈라진 건 약 4000만 년 전으로 밝혀졌다.

연구자들은 유전자 돌연변이와 복제수변이, 발현량 데이터를 분석해 거대 거북의 큰 덩치와 장수의 비결을 찾았다.

이번에 염기가 해독된 거대 거북 두 종류다. 위는 갈라파고스 거북의 한 종인 핀타섬코끼리거북(외로운 조지)이고 아래는 알다브라코끼리거북이다. 게놈 분석 결과 둘은 약 4000만 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졌지만 장수와 관련한 유전자 변이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이번에 염기가 해독된 거대 거북 두 종류다. 위는 갈라파고스 거북의 한 종인 핀타섬코끼리거북(외로운 조지)이고 아래는 알다브라코끼리거북이다. 게놈 분석 결과 둘은 약 4000만 년 전 공통조상에서 갈라졌지만 장수와 관련한 유전자 변이의 많은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네이처 생태학 및 진화

선천면역계 강화해 감염과 암 억제

먼저 덩치다. 이들 거대 거북은 몸무게가 500kg까지 나가 다윈이 ‘비글호 항해기’에서 최소치로 추정한 몸무게(약 90kg)보다 훨씬 더 크다.

게놈 분석 결과 성장호르몬인 인슐린유사성장인자(IGF) 관련 유전자들이 잘 보존돼 있었고 포도당 대사와 관련된 유전자들에 특이한 변이가 발견됐다.

단단한 껍질이 있는데다 덩치까지 커지면서 천적이 사라지자 수명이 길어지는 쪽으로 변이가 일어났다. 즉 감염이나 암에 대한 대응력이 높아졌다.

그런데 사람 역시 오래 사는 동물로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가 일어났는데, 그 방향은 좀 다른 것으로 밝혀졌다.

즉 파충류인 거대 거북은 포유류에서 발달한 적응면역계 대신 선천면역계를 더 확충해 면역력을 높이는 길을 택했다. 세포독성T세포나 자연살해세포 같은 면역세포의 활성을 더 높이는 방향으로 유전자의 변이가 일어났고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곰팡이, 기생충에 대한 방어를 맡는 유전자도 강화됐다.

거대 거북은 암에 잘 안 걸리는 것으로도 유명한데 게놈 분석 결과 그 이유가 드러났다. 즉 암을 억제하는 유전자 다수에서 복제수변이가 일어나 유전자 개수가 늘었다. 세포호흡을 담당하는 세포소기관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산화 스트레스에 대응하는 유전자들도 강화됐다.

한편 DNA 복제 과정이나 자외선 같은 외부요인으로 발생하는 DNA 손상을 수리하는 유전자들도 강화돼 있었다. 그리고 노화의 지표인 텔로미어(telomere) 손실을 억제하는 유전자의 수도 늘어났다.

이런 변이의 상당 부분은 수명이 80년으로 역시 오래 사는 육지 거북인 사막거북(학명 Gopherus agassizii)에서도 보였다. 사막거북과 거대 거북은 5000만 년 전에 공통조상에서 갈라졌다.

즉 거대 거북은 적어도 5000만 년 전 이미 꽤 장수하는 동물이었고 이는 천적이 거의 없었다는 생태환경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런데 불과 수백 년 사이 사람이라는 초강력 천적을 만나 잡아먹히고 서식지를 잃으면서 그 많던 거대 거북의 개체수가 급감했고 많은 종이 사라졌다.

이번 외로운 조지의 게놈 해독 결과는 수천 만 년에 걸쳐 게놈에 새긴 장수의 비결도 사람의 탐욕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서늘한 진실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로 갈라파고(galapágo)는 ‘거북’을 뜻하는 스페인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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