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4,2018

영화에서 커피향·레몬 맛이 난다

오감(五感)으로 진화하는 가상현실(V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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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가락의 잡아당기는 힘을 조절해 실제로 물건을 만지는 듯한 감각을 전달해주는 장갑형 햅틱 ‘덱스모’. ⓒ 덱스터 로보틱스 제공

손가락의 잡아당기는 힘을 조절해 실제로 물건을 만지는 듯한 감각을 전달해주는 장갑형 햅틱 ‘덱스모’. ⓒ 덱스터 로보틱스 제공

영화 주인공이 얻어맞으면 묵직한 충격이 전해진다. 커피 잔을 들면 은은한 커피향이 풍기고, 레몬사탕을 빨면 시큼하고 달콤한 맛이 느껴진다. 상상력이 부족한 이들이라면 떠올리기도 어려웠을 일들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게임 속 사물, 실제처럼 만진다

2016년 초 미국 오큘러스는 고글처럼 착용하면 시야 전체를 가상세계로 꽉 채워주는 VR(가상현실)기기를 상용화했다. 3년여가 흐른 현재, VR기기는 비디오 게임기의 부속장비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VR기기를 체험할 수 있는 VR방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제 VR은 촉각까지 더해 MR(혼합현실)로의 진화를 준비하고 있다. 게임 속에 나온 벽돌을 만지면 거친 질감이 느껴지고, 물병을 들면 그 무게가 체감되는 식이다.

지난해 1월 일본 익시가 장갑 형태의 촉각재현장치(햅틱) ‘엑소스’를 공개했다. 모터와 외골격이 피부 표면에 적당한 반발력을 줘, 물건을 만질 때 근육의 긴장감을 재현한다. 섬세한 힘 배분으로 이질감을 최소화한 게 특징으로, 앞서 3D프린터를 활용해 가격을 낮춘 전동 의수 ‘핸디’를 개발하면서 얻은 노하우가 바탕이 됐다.

게임사들이 엑소스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으며, 몇몇 자동차회사는 비숙련 작업자의 훈련장비로 도입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덱스터 로보틱스도 장갑형 햅틱 ‘덱스모’ 시제품을 선보였다. 외골격이 손가락의 잡아당기는 힘을 조절하는 게 핵심이다. 예컨대 VR 세계에서 나무막대를 쥐면 손가락이 막대의 굵기 이상으로 쥐어지지 않고, 고무공을 잡으면 손가락이 천천히 움직인다.

올해 4월 미국 디즈니, MIT(매사추세츠공대), 카네기멜런대가 공동 개발한 ‘포스재킷’ 시제품이 공개됐다. 긴 소매 상의 형태의 햅틱으로, 에어백의 수축·팽창과 고주파 진동을 통해 물리적 감각을 재현한다. VR 게임 속 타격감이 모두 전달되고, 포옹을 받거나 뱀이 몸을 휘감는 정도의 섬세한 자극도 느껴진다.

ETRI(한국전자통신연구원)는 별도의 기기를 착용하지 않아도 되는 초음파 원격 햅틱을 개발 중이다. 가청 주파수보다 두 배 높은 40kHz의 초음파를 허공에 발사해 인공 촉감을 느끼게 해주는 원리인데, 최근 가장 주목받는 햅틱 기술이다. 가령 허공에서 피아노를 쳐도 건반을 누르는 감각이 느껴지는 식이다.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은 원격 촉감 복원기술을 개발해 제품화 단계를 밟고 있다. 원격으로 작동되는 로봇이 물건을 만지면 그 느낌이 장갑형 기기를 착용한 사람에게 전달된다. 촉감이 전해지면 로봇을 조종할 때 더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전극과 LED를 이용해 맹물을 레모네이드로 바꿔주는 특수 컵. ⓒ 싱가포르 국립대 제공

전극과 LED를 이용해 맹물을 레모네이드로 바꿔주는 특수 컵. ⓒ 싱가포르 국립대 제공

전기 자극으로 맛·냄새도 재현

촉각은 단지 시작일 뿐이다. 이제는 미세한 전기 자극으로 뇌를 속여, 맛과 냄새까지 재현하는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그야말로 가상과 실제를 구분할 수 없는 경지다.

최근 말레이시아 이매지너링 연구소는 콧속 후각세포에 전기 자극을 줘 특정한 냄새가 실제로 나는 것처럼 느끼게 하는 데 성공했다. 냄새를 맡으려면 후각세포와 냄새를 유발하는 화학물질이 결합해야 하는데, 연구진은 그 과정을 전기 자극으로 대체했다. 냄새의 종류는 전기 강도를 조절해 바꿀 수 있다.

인터넷으로 맛집을 검색하며 음식 냄새를 맡고, 꽃을 고르면서 꽃향기를 즐기는 꿈같은 상상을 실현해줄 첫걸음으로 평가된다.

‘가짜 맛’을 만드는 기술은 이보다 앞서 나왔다. 2016년 일본 레키모토랩은 도쿄대와 공동으로 짠맛을 구현하는 ‘전기 포크’를 개발했다. 짠맛은 전기 강도에 따라 5단계로 조절된다. 현재 레키모토랩은 당뇨병 환자를 위한 ‘단맛 전기 사탕’을 연구 중이다.

작년 4월 싱가포르 국립대 산하 ‘게이오-NUS CUTE’ 연구소는 맹물을 레모네이드로 바꿔주는 마법 같은 장치를 만들었다. 센서가 부착된 막대를 레모네이드에 집어넣어 산도와 색깔 등을 파악한 뒤, 그 정보를 전극과 LED가 설치된 특수 컵에 전달해 맛과 색을 그대로 재현했다.

연구진은 근거리 무선통신 블루투스를 이용한 원격 맛 전달 실험에도 성공했다. 연구를 이끈 니메샤 라나싱게 박사는 “인터넷을 통해 음료의 맛을 전 세계에 공유할 수도 있다”며 “칼로리를 전혀 섭취하지 않고도 좋아하는 음료를 맘껏 마실 수 있어 다이어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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