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2,2019

자전거 타는 것을 잊지 않는 이유

동적 행위를 기억하는 '절차적 기억'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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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정년 은퇴를 해서 시간이 많아진 조 모(59) 씨는 그동안 바쁜 업무로 인해 제대로 하지 못했던 주요 관심사에 대해 다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는 스마트폰을 젊은이 못지 않게 능숙하게 다루는 것, 그리고 어린 시절 탔던 자전거를 다시 타보는 것이다.

현역시절 스마트폰으로 전화를 받고 인터넷 서핑을 할 정도는 되었지만, 설정을 바꾼다거나 새로운 앱을 이용하는 것 같은 조작방법에 대해서는 좀처럼 익숙해지지 못했던 그였다. 지금도 유치원에 다니는 손녀에게 스마트폰 사용 방법을 배우고 있지만, 며칠 전 배운 설정 방법을 금방 잊어버려 망신을 당하곤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전거타는 방법을 잊지 않는 이유는 동적 기억을 저장하는 절차적 기억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 free image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자전거 타는 방법을 잊지 않는 이유는 동적 기억을 저장하는 절차적 기억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 free image

반면에 자전거를 타는 것은 전혀 달랐다. 고등학교 시절을 끝으로 자전거를 탄 적이 없던 조 씨는 다시 배워야 하는 것이 아닌가 걱정도 했지만, 안장에 앉자마자 몸이 바로 반응하는 것을 느꼈다. 그는 덕분에 40년이 넘는 공백기간이 무색하게 요즘 들어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다.

조 씨는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며 뇌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엊그제 배운 스마트폰 사용법은 금방 잊어버리는데 반해, 수십 년 전 배웠던 자전거는 잊지 않고 기억하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

결국 기억력 검사를 위해 병원을 찾은 조 씨는 의사로부터 기억력의 종류에 대한 답변을 듣고는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그러면서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이 기억력과 관계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기 기억은 선언적 기억과 절차적 기억으로 구분

오래 전에 배웠던 자전거 타기나 수영은 ‘장기(長期) 기억’에 속한다. 장기 기억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나뉘는데, 의료계는 이를 ‘선언적 기억(declarative memory)’과 ‘절차적 기억(procedural memory)’으로 구분하고 있다.

이 같은 구분 기준은 미 카네기멜론대의 저명한 심리학자인 존 앤더슨(John Anderson) 박사에 의해 정립되었다. 앤더슨 박사는 선언적 기억에 대해 ‘지식의 차원을 명제의 형태로 표현한 것’이라 정의했다.

그가 발표한 논문을 살펴보면 선언적 기억은 다시 ‘에피소드(episode) 기억’과 ‘시맨틱(semantic) 기억’으로 나뉘어진다.

장기 기억은 선언적 기억과 절차적 기억으로 구분된다

장기 기억은 선언적 기억과 절차적 기억으로 구분된다 ⓒ brain-basedlearning

에피소드 기억은 주로 경험에 의해 얻어지는 기억으로서, 어릴 때 친구들과 갔던 소풍의 추억이 이에 해당된다.

시맨틱 기억은 ‘영국의 수도는 런던’ 같이, 책이나 교육을 통해서 배운 지식이 기억으로 남는 경우다.

앤더슨 박사는 “선언적 기억에 포함되는 기억들의 공통점은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 수 있다’는 점과 ‘그 사실을 남과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히며 “다시 말해 선언적 기억은 정적 형태의 기억으로서 ‘무엇을 아는지(knowing what)’에 대한 기억이라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반면에 절차적 기억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knowing how)’에 대한 기억이다. 악기를 연주하거나 자전거를 타는 것과 같은 일종의 동적인 기억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대해 앤더슨 박사는 “같은 뇌라도 절차적 기억은 선언적 기억과 서로 다른 부위에 저장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라고 전하며 “이런 형태의 절차적 기억은 인간의 행위(performance)를 관장하는 동적 기억으로 존재하게 된다”라고 강조했다.

간질병 환자의 뇌 절제 수술로 촉발된 기억에 대한 연구

선언적 기억과 절차적 기억에 관한 연구로는 간질병 환자였던 ‘헨리 구스타프 몰레이슨(Henry Gustav Molaison)’의 사례가 유명하다.

그는 뇌과학사에 있어서 가장 유명한 인물이지만, 그 존재는 오랫동안 베일에 가려 있었다. 어릴 때부터 심한 간질병을 앓고 있었던 헨리는 27세가 되던 1953년에 측두엽 절제수술을 받았다.

당시만 해도 뇌 절제술은 새로운 정신질환 치료법의 하나로 각광을 받고 있었다. 정신질환에 대한 치료법이 제대로 정립이 되지 않았던 시절이라, 뇌의 일부를 자르는 무모한 방법으로 치료를 한다는 논리였다.

이 같은 방법이 처음부터 실패를 했다면 다른 방법을 고려했겠지만, 의외로 몇 명의 환자들에게는 효과가 나타나면서 당시 뇌 절제술은 근본적인 정신질환 치료방법으로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기억에 대한 뇌 연구를 촉발시킨 H.M. 그는 심한 간질병을 앓고 있었다 ⓒ wikipedia

기억에 대한 뇌 연구를 촉발시킨 H.M. 그는 심한 간질병을 앓고 있었다 ⓒ wikipedia

헨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뇌에 있는 해마의 대부분을 제거하자 발작은 없어졌지만,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나타났다. 더 이상 새로운 기억을 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방금 전에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이나 조금 전에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기억이 30초 정도만 지나면 그의 머릿속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그 어떤 것도 30초 이상 기억할 수 없게 된 그는 사망할 때까지 오직 ‘순간’만을 산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무모한 뇌 절제술이 개인에게는 지극히 불행한 사건이 되었지만, 과학자들에게는 잠겨있던 뇌 비밀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이후 헨리를 상대로 수백 건의 연구가 이뤄졌고 이를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억에 대한 재정립이 이루어졌다.

문제는 어째서 절차적 기억이 선언적 기억보다 오래 가는지를 아직도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의료계의 오랜 숙제로 남아있는 상황이다.

이 부분에 대해 의료계 일각에서는 ‘동적 기억을 지배하는 뇌 부위의 경우 나이를 먹어도 새로운 신경 세포가 거의 형성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새로운 신경이 생성되지 않는다면 이미 심어진 기억이 지워질 가능성도 상대적으로 작다는 논리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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