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4,2018

일류 기업이 초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려면

과학서평 / 초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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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의 고위급 인사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권오현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이 책을 썼다.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낸 권 회장은 부회장 재임 시절, 매출액 기준으로 반도체 산업의 절대 강자였던 인텔을 눌러 세계를 놀라게 했던 사람이다.

당시 인텔은 반도체 산업의 절대 강자로 군림하고 있었다. 그런 인텔을 삼성전자가 눌렀다는 사실이 세계 반도체 산업에 끼친 충격은 매우 컸다.

때문에 삼성전자가 인텔을 꺾은 비결에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보였다.

권오현 지음, 김상근 지음 / 샘 앤 파커스 값 18,000원 ⓒ ScienceTimes

권오현 지음, 김상근 지음 / 샘 앤 파커스 값 18,000원

권 회장은 최근 집필한 ‘초격차’를 통해 그 비결을 살며시 꺼내놓았다. 그 자신이 전자공학 박사이기도 한 권 회장은 과학기술 및 연구개발을 강조했다.

그가 현재 재임하고 있는 삼성종합기술원은 1987년 설립돼 삼성전자의 미래 먹거리를 연구개발하는 곳이다.

그런데 권 회장이 삼성종합기술원에 취임해 살펴보니 기업 연구소에 맞지 않는 관행이 매우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전문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면 고과의 10%를 반영한다는 원칙이었다. 때문에 기업 연구원들이 대학교수처럼 논문 발표 숫자에 매달리는 경향이 나타났다.

연구 프로젝트 3분의 2를 한 달 만에 중단 

그래서 권 회장이 첫 번째로 내건 원칙이 “우수한 논문을 발표하면 칭찬은 받겠지만, 고과에 가산점은 받지 못한다”이다.

그는 이후 모든 연구프로젝트를 전수 조사, 1/3만 남기고 모두 중단시켰다. 그리고 중단된 프로젝트 연구원들은 모두 현장으로 배치했다. 기업 연구소이기에 가능했던 혁신적인 조치다.

그렇지만 아무리 기업이라고 해도 몇 달 만에 이렇게 프로젝트들을 박살내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권 회장은 의사결정의 대원칙을 하나 내걸었다. 현재 수행하는 연구가 결실을 맺었을 때, 삼성그룹의 어느 회사가 서업을 할 수 있는지, 혹은 창업할 수 있는지를 따졌다.

이 원칙을 들이대면 기업에 꼭 필요한 연구인지, 연구를 위한 연구인지 혹은 논문발표를 위한 연구인지 쉽게 드러난다.

이런 대원칙을 바탕으로 권 회장은 세 가지 세부원칙을 다시 제시했다.

첫 번째 세부원칙은 세상에서 유일무이하고 어느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연구라면 지원한다는 것이다. 아직 존재하지 않고 누구도 가지지 않은 그런 기술에 대한 연구이다.

두 번째 세부원칙은 이미 존재하고 있지만 확보하지 못한 기술에 대한 연구이다. 이는 어떤 한 회사가 독점하는 기술로써, 삼성전자의 운명이 그 회사의 결정에 휘둘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원칙은 지금 존재하고 있고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기술을 더욱 월등하게 발전시키는 그런 연구이다.

권 회장은 “이런 대원칙과 소원칙을 제시하고 나서, 한 달 만에 불필요했던 연구들을 모두 중단시킬 수 있었다”고 밝히며 “특히 바이오나 화학 쪽 연구는 전공자가 아니면 이해하기 조차 힘든 분야여서 회사에 필요하지 않은 연구를 해도 아무도 손을 대지 못하고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를 위해 삼성전자가 실행했던 전략이 단계적인 개선을 버리고, 동시다발적으로 신속하게 개발 및 생산공정을 크게 바꾸는 것이었다. 이런 혁신을 통해 반도체 산업의 절대자를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 권 회장의 분석이다.

한편 한 분야에 매몰되지 않도록 왕(사업책임자) 마저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보내버리는 역동적인 인사 역시 오늘날 삼성전자가 있게 한 원동력이다.

권 회장은 책을 통해 리더의 덕목을 설파하기도 했다.

그가 특히 강조하는 리더의 덕목이 바로 ‘미래예측’이다. 권 회장은 “한 회사의 최고 경영자라면 자신의 업무 중 최소한 절반은 변화를 분석하고 불확실한 미래를 준비하는데 바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보기에 미래를 망친 리더는 실패한 리더이다. 때문에 그 자신이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권 회장은 연간 약 100권을 책을 읽으면서 실력을 키웠다.

미래준비의 기본 개념은 초보자 수준 

하지만 권 회장이 보기에도 미래예측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그는 미래의 불확실성을 생각하면 10년 이상의 장기계획 수립 자체가 불가능해졌다고 본다.

그는 “용감한 미래학자들은 자기 생각대로 미래를 예측하지만, 내가 보기에 10년 후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간접적으로 미래학자들을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특히 돌발적인 퀀텀점프(Quantum Jump)를 예상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는 기업이 사업구조나 사업방식 등의 혁신을 통해 실적이 단기간에 비약적으로 뛰어오르는 현상을 말한다.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시절의 권오현 박사 ⓒ 삼성전자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시절의 권오현 박사 ⓒ 삼성전자

하지만 권 회장의 이런 주장은 미래학에 대한 부족에서 오는 것으로, 약간의 편견과 선입견으로 물들어있다고 할 수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분야에서 갑자기 급성장한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권 회장은 휴대폰용 CPU인 AP를 개발하고 노키아에 판매를 하려했지만, 거절당한 적이 있다. 이때 갑자기 퍼스널 컴퓨터 제조회사인 애플에서 삼성전자의 AP에 큰 관심을 보이더니 결국 삼성전자 AP를 채택한 아이폰을 개발해서 전세계의 전자산업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

권 회장 스스로도 아이폰 발표현장에서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프리젠테이션 하는 장면을 보면서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삼성전자와 애플의 차이 그리고 미국의 다른 IT기업과의 가장 큰 차이는 ‘새로운 게임의 장을 만드느냐, 남이 만들어 놓은 운동장에서 노느냐’에서 생긴다.

삼성전자는 치킨게임에서는 승자가 되었지만, 전혀 새로운 운동장을 만들지는 못했다.

권 회장이 이제라도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이라는 미래학의 가장 기초적인 대원칙을 깨우친다면,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으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삼성전자는 일본 대만 그리고 미국의 반도체 업체들을 상대로 하는 경쟁에서는 승리를 거머쥐었다. 하지만 중국과의 진짜 거대한 반도체 전쟁이 아직 남아있다.

그렇다면 이제 삼성전자가 가야 할 기술개발의 방향은 비교적 분명하다. 남들이 가지 않은 길, 새 문명의 대문을 열어 제치는 그런 창의적인 모험의 길을 뚫는 일이다.

그것이야말로 권 회장이 쓴 책 제목처럼 ‘초격차’(超格差)를 이루는 나침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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