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16,2019

신을 부정한 유대인 천재 과학자

경매품을 통해본 아인슈타인의 새 단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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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4년 독일 뮌헨에서 귀엽고 평범한 5살짜리 꼬마가 사진을 찍었다. 어느 날 그의 부친은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이 꼬마에게 나침반을 보여주었다. 나침반 바늘의 기민한 움직임에 매료된 꼬마는 보이지 않는 힘이 나침반을 제어한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게 됐다.

당시 바이올린 레슨을 받고 모차르트 바이올린 협주곡을 접하며 음악에 빠져들기도 했던 꼬마의 사진은 그로부터 134년 후인 지난 5월 영국 크리스티 경매장에 출품돼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사람들이 그 사진에 주목한 까닭은 최초로 공개된 아인슈타인의 어릴 적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아인슈타인은 15살 무렵 독일 학교에서 낙제점을 받아 졸업장도 받지 못했다. 스위스로 옮겨가 다시 공부를 시작한 그는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입학해 가장 자신 있는 과목인 물리학을 선택했다. 하지만 대학 졸업 후 그는 다시 어두운 시기를 보내야 했다.

첫 번째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와 젊은 아인슈타인(오른쪽)의 모습. ⓒ Public Domain

첫 번째 부인인 밀레바 마리치와 젊은 아인슈타인(오른쪽)의 모습. ⓒ Public Domain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절망에 빠져 있던 그를 구해준 건 학교 친구 그로스먼이었다. 그의 소개로 스위스 베른의 특허청에서 일할 수 있었던 그는 2년 후인 1905년에 독일의 학술지 ‘물리학연보’에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이라는 논문을 게재했다. 이듬해인 1906년 그는 이 논문으로 취리히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받은 박사학위 증서 역시 지난 2009년 경매에 나와 30만960 스위스프랑(약 3억4300만원)에 팔렸다.

천재이면서도 가장 대중적인 과학자였던 아인슈타인의 생전 물품이라면 무조건 관심이 대상이 된다. 가장 유명한 그의 얼굴인 ‘혀를 내밀고 있는 사진’은 지난해 경매에서 약 1억4000만원의 고가에 낙찰됐으며, 심지어 1945년에 촬영된 그의 두개골 엑스레이 사진도 경매에 붙여졌다.

숱한 여성들과의 염문설에 대한 변명

지난 3월에는 그가 20세 연하의 한 여성에게 보낸 러브레터가 약 650만원의 가격에 경매장에서 팔렸다. 1921년 10월에 작성된 이 편지는 당시 42세로 노벨상 수상을 앞두고 있던 그가 이탈리아 피렌체의 여동생 집에 갔다가 그 윗집에 사는 젊은 여성 화학도에게 호감을 느끼고 건넨 것이다.

물론 그 당시 아인슈타인은 유부남이었다. 그가 1903년에 처음 결혼한 상대는 취리히 공과대학의 물리학과 동기인 네 살 연상의 여성 밀레바 마리치였다. 천재 물리학도이자 아인슈타인보다 수학에 더 뛰어났던 밀레바는 신혼 시절 아인슈타인을 유명하게 만든 논문 작성에 큰 도움을 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는 점차 멀어졌고, 밀레바가 임신을 했을 때도 다른 여자에게 연애편지를 보낼 만큼 아인슈타인은 여성 편력이 심했다. 결혼 16년 만에 두 사람은 끝내 파경을 맞이했고, 그로부터 4개월 후 아인슈타인은 사촌이었던 엘자와 재혼했다.

그 후로도 아인슈타인은 비서 베티 노이만과 비밀스런 관계를 유지하는 등 숱한 여성들과 염문을 남겼다. 그럼에도 아인슈타인은 아내 엘자에게 변명을 늘어놓는 데 급급했다. 자신이 원하지 않는데도 여자들이 애정공세를 퍼붓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이런 사실은 지난 2006년 이스라엘 헤브루대학이 공개한 그의 생전 편지에 의해 드러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에디슨 같은 천재들은 메모광으로도 유명하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탄생시키는 데 메모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이다. 메모는 아인슈타인을 세계적인 과학자로 만드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틈나는 대로 자신의 생각을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메모 중 하나가 지난해 10월 예루살렘의 경매장에 등장해 약 17억 5000만원에 팔렸다. 이스라엘에서 경매된 문서 중 최고가였다. 그 메모는 노벨 물리학상 수상 직후인 1922년에 순회 강연차 일본을 방문했다가 호텔방 안에서 무심코 떠오른 행복에 대한 단상을 적은 것이다.

메모의 내용은 매우 간단하다. “조용하고 소박한 삶은 끊임없는 불만에 묶인 성공을 좇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준다.” 이렇게 적은 메모지를 아인슈타인은 마침 자신의 호텔방으로 전보를 전해주러 온 일본 배달원에게 팁 대신으로 건네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당신에게 운이 따른다면 아마 이 메모가 평범한 팁보다 훨씬 가치가 더 크게 될 것이오.”

성경은 고대의 유치한 전설에 불과해

그런데 아인슈타인이 직접 쓴 편지 하나가 또 다시 뉴욕 경매장에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독일의 철학자 에릭 구트킨드가 쓴 ‘삶을 선택하라 : 저항을 위한 성경 속 부름’이란 제목의 책을 읽은 후인 1954년 1월 3일 구트킨드에게 그 편지를 썼다.

이 편지는 2008년에도 경매에 나와 약 4억5000만원에 팔린 적이 있다. 외신을 통해 알려진 편지 내용 중 일부는 다음과 같다. “신이라는 단어는 내게 인간의 나약함을 나타내는 표현일 뿐이다. 성경은 신성한 내용을 모아놓은 것이지만 유치한 고대의 전설에 불과하다. 성경을 아무리 명석하게 해석한다 해도 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평소 아인슈타인은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장님’이라며 종교와 과학 간의 정당성에 대해 역설했다. 그런데 이 편지에는 그의 평소 주장과는 정반대되는 내용이 담겨 있는 셈이다.

사실 그는 여느 유대인들과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유대인이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며, 다른 민족보다 우월한 집단이라는 주장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았다. 또한 그는 이스라엘의 2대 대통령직을 맡아달라는 제안도 일언지하에 거절한 바 있다.

천재 과학자의 종교관을 엿볼 수 있으며, 또한 그가 작고하기 불과 1년 전에 쓴 편지여서 올 12월에 나올 이 경매품은 더욱 화제가 되고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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