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019

중동, 정말 근동-극동 중간일까?

해 뜨는 문명의 고향, 아시아가 동쪽이 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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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만에 환자가 생긴 메르스(MERS)로 국민들의 근심과 불안이 크다. 잘 아는 것처럼 ‘메르스(MERS)’는 ‘Middle East Respiratory Syndrome’의 줄임말로 ‘중동 호흡기 증후군’으로 번역한다.

메르스는 2012년에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첫 환자가 발견됐다. 이후 인근의 요르단, UAE, 쿠웨이트, 터키, 오만 등 중동(서아시아) 지역에서 잇달아 유행했기에 ‘중동에 도는 호흡기 질환’이라는 뜻의 병명이 붙었다.

우리에게 중동은 낙타와 사막, 오아시스와 카라반, 아라비안 나이트와 모스크 그리고 우리 건설사들의 해외 현장으로 기억되는 곳이다.

‘중동’하면 떠오르는 아라비아반도와 페르시아만. ⓒ 박지욱 / ScienceTimes

‘중동’하면 떠오르는 아라비아반도와 페르시아만. ⓒ 박지욱 / ScienceTimes

그런데 중동이라는 이름을 잘 살펴보면 ‘中(가운데)+東(동녘)’으로 이뤄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동쪽 지방 중에서 가운데’ 정도로 해석된다.

그러고 보니 근동(近東), 극동(極東)이란 지명도 있다. 그러면 중동은 정말 가까운(近) 동쪽지방과 먼(極) 동쪽 지방의 ‘중간’ 쯤 된다는 뜻일까? 이번 원고에서는 그 이름의 숨은 뜻을 알아보자.

영국이 ‘대영제국’이란 이름으로 ‘해가 지지 않는 나라’를 건설했을 때 세계의 중심은 영국이었다.

동경(東經), 서경(西經)으로 나누는 경도(longitude)의 기준선인 본초자오선(the Prime Meridian)도 제국의 수도에 가까운 그리니치의 영국 왕립 천문대(the Royal Observatory, Greenwich)로 잡을 정도로 말이다(1884년).

19세기에 세계의 4분의 1을 지배하던 대영제국. 배를 타고 그 땅을 출발해 서쪽으로 가면 막막한 대서양이 있고, 한동안은 육지를 만날 수가 없다.

하지만 동쪽으로 간다면 아주 많은 나라를 만날 수 있다. 특히 중요한 식민지였던 인도로 가는 길에는 여러 땅과 민족들이 있다.   당시 대영제국의 관리들은 동쪽 지역을 세분하여 가까운 곳과 먼 곳 그리고 그 가운데로 나누어 생각했다. 그래서 나온 명칭이 the Near East, the Far East, the Middle East인데 우리는 각각 근동(近東), 원동(遠東) 혹은 극동(極東), 중동(中東)으로 번역했다. 이때 the East는 대체로 아시아(Asia)로 보면 된다.

 

the Near East 근동(近東)

the Middle East 중동 (中東)

the middle-near east 중+근동(中近東)

the Far East 극동(極東)

 

가장 가까운 아시아, 즉 근동은 지중해로 항해했을 때 유럽 땅을 벗어나면 바로 만나는 동쪽 지역이다. 동(東)지중해 연안인 터키, 이스라엘, 시리아, 이집트 등지로 볼 수 있다.

가장 먼 아시아, 즉 극동은 우리나라, 중국, 일본을 말한다. 그럼 정말 근동과 극동의 중간이 중동일까? 아니다. 수에즈 운하와 페르시아만 사이의 지역이 중동으로 사우디 아라비아와 주변국들, 이라크, 이란 정도에 해당한다.

근동과 중동은 이웃하는 곳인데 극동과 중동은 왜 그렇게 떨어져 있을까? 바로 인도 때문이다. 서양인들이 그렇게도 가고 싶어하던 땅 인도가 중동과 극동사이에 있다.

하지만 인도를 지나도 바로 극동은 아니다. 인도차이나가 있고 서태평양의 많은 섬들이 있다. 그곳을 지나 북쪽으로 가면 비로소 동쪽 맨 끝인 극동에 다다를 수 있다.

영국 중심의 세계지도를 보면 우리가 극동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위키백과 자료

영국 중심의 세계지도를 보면 우리가 극동으로 불리는 이유를 알 수 있다. ⓒ 위키백과 자료

그럼 비슷한 의미로 쓰는 오리엔트 지방은 어디일까?

영국이 아시아를 근동, 극동, 중동으로 나누기 훨씬 오래 전 유럽인들은 늘상 동쪽을 기웃거렸다.

가장 먼저 동쪽에 관심을 가진 이들은 그리스인들이다.

그리스는 서양인들이 문명의 고향으로 삼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유럽 중 그리스에서 가장 먼저 문명이 꽃피운 가장 중요한 요인이 바로 아시아다.

그리스 문명은 에게해 문명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아 발전했다. 그런데 에게해 문명은 바로 오리엔트라 불리는 서아시아의 문명에서 태어난 것이다.

지금 우리가 최신 과학 기술 정보를 얻기 위해 미국이나 유럽의 학술서적이나 언론 기사를 뒤적이는 것처럼, 고대 그리스인들은 언제나 해가 떠오르는 동쪽지방에서 선진 문물을 수입했다.

그리스인들은 그곳을 바로 ‘오리엔트(Orient)’라 불렀다. ‘해 뜨는 곳’이란 뜻이다.

 

Orient 오리엔트; 해 뜨는 곳, 즉 동쪽 지방.

Occident 옥시덴트; 해지는 곳, 즉 서쪽 지방.

 

오리엔트는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문명이 발생한 곳이다. 특히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을 끼고 있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문명으로 본다.

이 지역에서는 수메르, 아카드, 아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같은 나라들이 명멸을 거듭했다. 그리고 그들이 남긴 문명의 빛은 그리스를 비추었다.

그리스 문자에 영향을 준 페니키아 문자.  ⓒ 위키백과 자료

그리스 문자에 영향을 준 페니키아 문자. ⓒ 위키백과 자료

단적인 예로 그리스 문자는 오리엔트에 있던 페니키아 문자에서 시작되었다. 해 뜨는 동쪽에서 아침햇살이 비치듯, 그 시대에는 문명의 빛도 오리엔트에서부터 비쳤다.

오리엔트란 말은 일상 생활 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다. ‘신입생 오티’의 오티(O/T)는 오리엔테이션(orientation)의 줄임말로 ‘방향을 잡는다’는 뜻이다.

오래 전 사막이나 바다의 여행자들은 항상 해 뜨는 방향을 기억했다. 해가 올라오는 쪽이 동쪽이므로, 동쪽을 알면 동서남북을 알게 된다.

그래서 대학이나 직장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앞으로 적응 잘 하도록 이것저것 ‘방향을 잡아준다’고 하여 오리엔테이션이라 부르는 것이다.

해 뜨는 곳이 모든 방위의 기준이었다. 제주 섭지코지에서.   ⓒ 박지욱 / ScienceTimes

해 뜨는 곳이 모든 방위의 기준이었다. 제주 섭지코지에서. ⓒ 박지욱 / ScienceTimes

중세 유럽의 성당(교회)에서도 오리엔테이션은 중요했다. 성당을 지을 때 언제나 기독교 성지인 예루살렘이 있는 동쪽으로 바라보도록 설계를 했다.

그리고 전 세계 곳곳을 여행 중인 무슬림을 위해서도 일부 호텔이나 공항에서는 기도할 방향을 알리는 표식을 마련해 두었다. 이슬람의 경우에는 성지 메카를 가르킨다.

런던 히드로공항의 무슬림 기도실에는 메카 방향 화살표가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인천공항의 기도실에는 아무런 표시가 없다. 인천공항의 기도실은 모든 종교가 함께 사용하는 공용 공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기도 방향이 중요한 무슬림들을 위해 오리엔테이션(!)을 살짝 해주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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