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4,2019

네덜란드 출신의 유일한 형제 수상자

노벨상 오디세이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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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여름, 한 남자가 40℃를 넘나드는 뜨거운 모래언덕에서 오직 한 곳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주시하고 있는 것은 바로 유럽벌잡이벌이 둥지로 사용하고 있는 작은 굴이었다. 그는 암컷 벌이 먹잇감을 찾아 둥지를 떠나자 재빨리 모래로 둥지 입구를 덮어 버렸다.

잠시 후 집으로 돌아온 암컷 벌이 다시 그가 모래로 덮어 버린 둥지로 정확히 들어가자 그는 나지막이 환호성을 질렀다. 주변에 수백 개의 다른 벌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암컷 벌은 자신의 둥지를 곧바로 찾아갔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확인한 네덜란드 레이던대학의 대학원생 니콜라스 틴베르헌은 가설을 하나 세웠다. 벌은 주변 지형을 탐지해 자신의 집을 찾는다는 가설이었다. 그는 자신의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새로운 실험에 착수했다.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동물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 ⓒ Rob Mieremet (ANEFO)

1973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동물학자 니콜라스 틴베르헌. ⓒ Rob Mieremet (ANEFO)

벌이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 주위를 솔방울로 에워싼 것. 그리고 암컷 벌이 집 밖으로 나가자 그 솔방울들을 모두 다른 쪽으로 옮겨놓았다. 이틀 후 다시 돌아온 벌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옆의 솔방울이 둘러싸고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혹시 솔방울의 냄새가 후각적 신호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향수를 묻힌 다음 실험해도 결과는 똑같았다.

니콜라스는 자신의 가설대로 벌이 시각적 정보를 가지고 집을 찾는다는 사실을 확신했다. 그는 그 실험결과를 바탕으로 32쪽짜리 박사학위 논문을 작성해 제출했다. 그의 논문은 당시 레이던대학의 역대 박사학위 통과 논문 중 가장 짧은 논문이 되었다.

야외에서의 관찰을 중시한 동물학자

어렸을 때부터 자연에 관심이 많았던 니콜라스는 야외에서의 관찰과 실험을 중시하는 동물학자였다.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포로가 되었던 그는 종전 후 영국으로 귀화해 옥스퍼드대학 교수가 되었다.

그 때 그가 가르친 제자 중 한 명이 바로 과학책의 세계 3대 스테디셀러 중 하나로 꼽히는 ‘이기적 유전자’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다. 도킨스가 니콜라스에게서 영향을 받았던 증거는 그의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는 병아리들이 알을 깨고 나오자마자 본능적으로 주변에 보이는 작은 물체들을 닥치는 대로 쪼아대는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인자들을 찾아내는 연구를 논문 주제로 삼았다. 도킨스 외에도 ‘털없는 원숭이’의 저자로 유명한 데스몬드 모리스를 비롯해 토니 싱클레어, 이아인 더글러스 해밀턴 등이 니콜라스가 옥스퍼드대학에서 가르친 제자였다.

니콜라스의 실험 중 가장 유명한 것은 큰가시고기 수컷이 지닌 영역 방어와 공격성에 대한 연구였다. 큰가시고기 수컷은 번식기 때 아랫배가 빨갛게 되는데, 자기 영역에 다른 수컷이 침범하면 맹렬하게 공격하는 습성을 지닌다.

니콜라스는 여러 나무 모형의 물고기를 만들어 실험한 결과, 아랫배의 빨간색이 수컷의 공격 행동을 일으키는 자극임을 알아냈다. 즉, 큰가시고기 수컷은 나무로 만든 물고기 모형의 복부가 더 붉으면 진짜 수컷보다 그 모형 물고기를 더 강하게 공격한다는 사실이 관찰된 것이다.

또한 그는 검은머리물떼새의 어미에게 알을 품는 행동을 일으키는 자극이 알의 크기라는 사실도 밝혀냈다. 어미새에게 자신의 알과 타조의 거대한 알을 함께 주면 어미새는 자신의 알보다는 타조 알을 품으려고 애쓴다.

니콜라스는 동물들이 실제 자극보다 훨씬 더 과장된 자극에 강하게 끌리는 이런 현상들에 대해 ‘초정상 자극’이라고 명명했다. 초정상 자극은 그 과장됨을 이용해 동물의 특정 특징이 어떻게 본능적 반응을 유발하는지를 명확히 설명할 수 있다. 그는 이 같은 연구 업적들을 인정받아 1973년 콘라드 로렌츠, 카를 폰 프리슈와 함께 노벨 생리의학상 공동 수상자가 됐다.

계량경제학으로 노벨 경제학상 최초 수상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니콜라스는 당시까지만 해도 동물의 관찰자로만 간주되었을 뿐인 동물행동학자들에게 노벨상을 수여한 노벨위원회의 의외의 결정에 대해 감사를 표했다. 또한 그는 동물의 행동을 관찰하는 연구 방법이 인간의 고통 완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니콜라스 틴베르헌은 말년에 우울증과 더불어 자신도 동생처럼 자살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시달렸다. 통계학을 응용한 조류 생태학자로 이름을 날렸던 그의 친동생 룩 틴베르헌은 자살로 일찍 생을 마감했기 때문이다.

1969년에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얀 틴베르헌. ⓒ Nationaal Archief

1969년에 최초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얀 틴베르헌. ⓒ Nationaal Archief

한편, 그의 맏형인 얀 틴베르헌은 경제학계에서 니콜라스보다 훨씬 더 이름을 떨친 유명 경제학자였다. 물리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계량경제학을 연구해 거시적 동학이론에 의한 경기순환의 통계적 검정을 실시한 최초의 학자가 바로 얀이다. 계량경제학이란 경제학에 수학과 통계학을 접목해 각종 경제현상을 연구하고 전망하는 학문이다.

니콜라스보다 4살 위였던 얀은 레이던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전공한 후 네덜란드 중앙통계국에서 일하며 계량경제학의 이론적 토대를 쌓았다. 그는 유엔의 경제자문위원으로 일하며 주요국가의 거시경제에 대한 계량경제학적 분석 모델을 개발, 제시했다. 국가 단위의 경기순환을 정량적으로 해석한 건 당시 경제학계에서 그가 최초였다.

특히 그는 경제정책의 목표와 수단의 숫자가 같아야만 복수의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보유한 정책수단이 정책목표보다 많거나 같아야만 경제정책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는 그의 주장(틴베르헌의 법칙)은 지금도 여전히 효력을 인정받고 있다.

얀 틴베르헌은 계량경제학의 선구적 연구 업적을 인정받아 1969년에 노르웨이의 랑나르 프리슈와 공동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받았다. 스웨덴 중앙은행이 설립 300주년을 기념해 제정한 노벨 경제학상의 최초 수상자가 바로 얀 틴베르헨이다. 지금까지 부부나 부자 간에 노벨상을 함께 받은 적은 수차례 있었지만, 형제 수상자는 얀과 니콜라스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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