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2019

기업 간 담합 촉진하는 AI

가격 최적화 알고리즘, 소비자에겐 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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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공정 거래법 전면 개편을 위해 ‘공정거래 법제 개선 특별 위원회(이하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는 공정 거래법 도입 38년 만에 처음으로 전면 개편을 추진하는 것이다. 위원회는 3월 16일 첫 회의를 진행해 17개 논의 과제를 선정했다.

공정위는 논의된 결과를 토대로 공정 거래법 개정안을 작성,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38년 만에 공정 거래법을 전면 개편하는 이유는 4차 산업혁명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지난 5월 공정위는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경쟁법 현대화 방안’의 연구 용역을 발주했다.

과연 4차 산업혁명은 공정 거래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것일까?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가격 담합’이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인 인공지능(AI)이 기업 간 담합을 촉진해 산업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AI의 알고리즘이 가격 담합을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시스템 스스로 지능을 가지는 AI. ⓒ Devian Art

시스템 스스로 지능을 가지는 AI. ⓒ Devian Art

자중손실 줄이는 똑똑한 알고리즘

AI는 스스로 지능을 가지고 이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AI의 이러한 지능은 알고리즘에서 온다고 할 수 있다.

알고리즘은 특정 규칙을 정의하는 프로세스를 뜻한다. 현재 AI는 복잡한 환경을 분석할 수 있는 기계학습(machine learning) 알고리즘에 힘입어 여러 분야에 활용되고 있다.

그중에서도 AI의 활약이 돋보이는 분야가 가격 산정이다.

대표 사례로 아마존에서 제공하는 ‘앨고 셀러 (Algo Seller)’가 있다. 해당 서비스는 소비자의 구매 행위를 분석해 탄력적이고 효율적인 상품 가격을 판매자에게 제공하는 것이다.

이처럼 특정 환경에 따라 실시간으로 변하는 가격 산정 기술을 ‘다이내믹 프라이싱 (Dynamic Pricing)’이라고 부른다.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고정 가격으로 인해서 나타나는 ‘자중손실(Deadweight Loss)’을 줄이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예로 비행기 요금을 들 수 있다. 비행기 내 빈 좌석이 많다면 항공사 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요금을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옳은 것일까?

요금을 유지하는 경우 항공사는 손실을 입게 된다. 비행기를 이용하고 싶지만 높은 가격으로 인해 이용하지 못한 잠재 고객을 잃는다.

그런데 앨고 셀러처럼 가격을 변화시키면 어떻게 될까? 자중손실을 낮출 수 있다.

결국 다이내믹 프라이싱은 자중손실을 낮춤으로써 경제 복지를 향상시킨다.

그런데 한 가지 고려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러한 알고리즘이 가격 담합에도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판매 정보 공유는 담합의 기본

디지털 시대의 핵심 가치 중 하나가 정보 공유다. 제품 가격은 당연히 중요한 정보다.

소비자는 제품 가격을 공유해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최저가로 원하는 제품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보는 소비자에게만 유용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다른 판매자의 가격 정보는 판매자에게도 유용하다. 자신의 판매가를 책정하는 데 중요한 참고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때 알고리즘이 의도치 않게 작동해 가격 담합을 형성할 수 있다.

기업 담합을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업 간 정보 공유를 차단하는 것이다. 이는 게임 이론을 통해서 입증된 바 있다.

한국과 북한의 국방을 예로 들어보자. 양국의 안보를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군대를 두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서로의 정보 공유에 대한 신뢰 문제가 있다. 한국 정부가 군대를 두지 않고 북한이 두었을 경우에, 한국 정부는 큰 위험에 빠진다.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이다.

참고로 이런 게임 이론을 통해 형성된 기준을 ‘내쉬 균형(Nash Equilibrium)’이라고 한다.

기업 가격 결정에도 이러한 이론을 적용할 수 있다. 서로의 가격 전략을 모르는 상태에서는 판매자가 본인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가격을 매길 수 없다. 상대방이 더 낮은 가격 전략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로가 높은 가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은밀하게 만나 계약을 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법률상 불법이다. 다시 말해 가격 담합을 위한 정보 공유는 법으로 막혀 있다.

그런데 디지털 네트워크가 기업 간 가격 정보 공유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알고리즘은 이를 기반으로 가격을 실시간으로 선정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

더욱이 알고리즘으로 형성된 가격 담합은 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공정 거래법 제19조 제1항은 ‘기업이 직접 만나서 가격 담합에 관한 합의가 있는 행위’에 대해서만 담합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에 의한 담합은 ‘기업자 간에 직접 만나서 형성된 것’이 아니며, ‘합의가 이뤄져서 형성된 것’도 아니다.

AI의 핵심 ‘알고리즘’.합리적인 가격 책정을 통해 자중손실을 줄여준다. 문제는 가격 담합에도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 Pixabay

AI의 핵심 ‘알고리즘’.합리적인 가격 책정을 통해 자중손실을 줄여준다. 문제는 가격 담합에도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 Pixabay

알고리즘 담합 모델, 법률 규제 벗어나

작년 경제협력개발기구는(OECD)는 ‘알고리즘과 담합 (Algorithm and Collusion)’이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해당 보고서에는 네 가지 알고리즘 담합 모델이 기술돼 있다.

모니터링 알고리즘(Monitoring Algorithm)은 경쟁 기업의 가격 정보를 수집하고, 담합 가격을 묵시적으로 유지하게 하는 알고리즘이다.

병행 알고리즘(Parallel Algorithm)은 동일 알고리즘을 공동으로 이용함으로써 가격 담합을 만들어 내는 알고리즘이다.

신호 알고리즘(Signaling Algorithm)은 서로가 실시간으로 신호를 주고받음으로써 자연스럽게 담합을 추진시키는 알고리즘이다.

자기학습 알고리즘(Self-learning Algorithm)은 경쟁 기업에 대응해 이윤을 최대화하는 과정에서 자동으로 가격 담합을 이루게 하는 알고리즘이다.

네 가지 담합 모델의 특징은 기존 법률에 정의하고 있는 담합 기준에 벗어난다는 것이다. 아울러 찾아내기도 힘들다.

따라서 단순 법적 규제를 마련하는 것만으로는 이러한 담합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알고리즘 규제도 함께 마련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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