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uary 21,2020

만능 수혈 가능, ‘유니버셜 블러드’

ABO 불일치 따른 부작용 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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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으로 매년 약 1억 8백만 건의 헌혈이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수집한 피를 모든 사람에게 다 수혈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혈액형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자기의 혈액형과 맞지 않는 혈액을 수혈 받게 되면 큰 일이 생긴다. 기존에 있던 피와 수혈 중인 피가 엉겨 붙어 굳어버린다. 그래서 여러 가지 질병을 일으키거나 자칫 생명을 잃을 수도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과학자들이 놀라운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22일 ‘스미소니언’ 지에 따르면 지난 19일부터 23일까지 5일간 미국에서 열리고 있는 ACS(National Meeting & Exposition of the American Chemical Society)에서 수혈과 관련된 새로운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이 장내 유인균(gut microbiome)에서 채취한 세균 효소(bacterial enzymes)를 이용해 혈액형에 관계없이 누구나 수혈을 받을 수 있는 ‘유니버셜 블러드(universal blood)’를 만들고 있다는 내용이다.

수혈이 가능한 혈액부족으로 의료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어떤 혈액형에도 수혈이 가능한 '유니버셜 블러드' 개발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적혈구.

수혈이 가능한 혈액부족으로 의료계가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운데 어떤 혈액형에도 수혈이 가능한 ‘유니버셜 블러드’ 개발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어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적혈구 모습 ⓒfi.edu

O형처럼 A, B, AB형에 수혈 가능해

일반적으로 수혈을 할 때는 같은 혈액형끼리만 혈액을 주고받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피치못할 사정으로 다른 혈액형의 피를 수혈받아야 할 경우가 생길수 있다. 이 때는 반드시 안전을 위한 원칙을 지켜야 한다.

O형인 사람은 다른 어떤 혈액에도 수혈이 가능하다. 반대로 AB형인 사람은 AB형 외에는 어떤 혈액에도 수혈을 할 수가 없다.

문제는 활용성이 가장 높은 O형인 사람의 비율이 약 40%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혈액관리 기관에서는 환자들에게 긴급하게 수혈해야 할 피가 충분하지 못해 큰 고민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많은 과학자들이 O형처럼 누구에게나 수혈이 가능한 ‘유니버셜 블러드’를 만들고 있다. 그중에서도 브리티시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의 연구가 특히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는 중이다.

혈액형에 따라 수혈 기준이 까다로운 것은 적혈구 내에 들어 있는 응집원(agglutinogen) 때문이다. 항원 역할을 하고 있는 이 물질이 다른 혈액과 결합하면 적혈구 덩어리를 만들어 모세혈관을 막는 부작용을 유발한다.

그러나 O형인 혈액에는 적혈구 안에 응집원이 없기 때문에 모든 혈액에 수혈이 가능하다. 반면 A와 B형, 그리고 AB형 혈액에는 응집원이 들어 있어 부작용을 일으키고, 피해를 막기 위해 수혈 시 엄격한 제한이 가해지고 있다.

“안전성, 비용 측면에서 매우 유리해”

브리티스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은 최근 장내 유인균에서 채취한 효소 세균을 통해 A와 B형, 그리고 AB형 혈액의 적혈구 안에 있는 응집원을 제거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았다. 연구팀은 이를 통해 혈액형에 관계없이 수혈이 가능한 길을 열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가 성공을 거둘 경우 ‘유니버셜 블러드’를 통해 모든 혈액형 환자들에게 수혈이 가능해진다. 또한 O형과 A, B, AB형 헌혈자 간의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혈액부족 사태를 막을 수 있어 안정적인 혈액 수급을 이룰 수 있다.

오래 전부터 많은 과학자들이 ‘유니버셜 블러드’ 개발을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지난 1982년에는 과학자들이 일부 굽지 않은 커피콩에서 추출한 효소를 이용해 적혈구 안에 있는 응집원을 떼어내는데 성공한 바 있다.

그러나 실험에 성공을 거두기 위해 다양한 조건이 추가돼야 했고, 기술‧비용 등의 문제로 인해 실용화하는데 실패했다. 그러다 지난해 브리스톨 대학의 이언 프레인(Jan Frayne) 교수 연구팀이 새로운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인체 내에 주입해 무한정 적혈구를 만들어 내는 ‘적혈구 생성 줄기세포’를 만들겠다는 것. ‘Bristol Erythroid Line Adult’, 혹은 ‘BEL-A’로 명명된 이 인공 줄기세포는 암 유전자를 적용한 것이다.

프레인 교수가 만든 줄기세포는 실제 암세포가 증식하듯 끊임없이 적혈구를 생성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안전성 문제가 제기됐다. 과학자들 간에 이 방식이 과연 안전할 수 있는지 논란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후속 연구를 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 브리티스컬럼비아 대학의 연구 결과는 기술, 안전성, 비용 측면에서 큰 어려움이 없다는 점에서 세계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중이다.

연구팀이 주목한 것은 장벽(gut walls) 위를 덮고 있는 점액에서 발견한 무친(mucins)이란 단백질이다. 연구팀이 그 안에서 효소를 추출한 후 A형 혈액에 주입한 결과 O형의 특성을 지닌 ‘유니버셜 블러드’로 전환할 수 있었다.

연구를 이끌고 있는 브리티스컴럼비아 대학의 스티브 위더스(Steve Withers) 교수는 “이 방식을 실용화할 경우 이전보다 30배 빠른 속도로 혈액을 공급할 수 있으며, 비용 절감 측면에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과학계는 위더스 교수팀의 연구가 막대한 잠재력을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혈액 치료뿐만 아니라 인간과 장내 유인균 사이의 역학 관계를 살펴보는 연구에서도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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