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6,2018

과학의 아름다움은 모순에 있다

과학서평 / 뷰티풀 퀘스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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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윌첵(Frank Anthony Wilczek⋅1951~ )은 2004년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미국의 이론물리학자다.

그는 2015년에 낸 책 뷰티풀 퀘스천(A Beautiful Question)의 표지에 눈에 띄는 그림을 한 장 넣었다. 중국 전통 서예가 쉬파 헤(Shuifa He)의 그림이다. 윌첵은 태극 무늬를 글씨와 함께 그려 넣은 이 그림이 과학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뷰티풀 퀘스천에는 쉬파 헤의 작품 말고도 많은 그림이 들어가 있다.

아테네학당에서 계산에 몰두하는 피타고라스를 비롯해서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최후의 만찬, 프라 안젤리코의 예수의 변형, 윌리엄 블레이크의 연구하는 뉴턴, 고파쿠마르의 디지털 페인팅, 클로드 모네의 건초더미 등이다.

윌첵에게 과학의 본질은 아름다움이다.  이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선배과학자가 제임스 맥스웰(1831~1879)인 것에서도 드러난다.

전자기장을 발견한 맥스웰은 기타를 치면서 자작시를 부르고, 색 연구를 좋아해서 색팽이를 고안하는가 하면 컬러사진도 발명했다.

개인적인 취향이겠지만, 윌첵은 1864년 맥스웰이 ‘전기역학적 장에 대한 동역학이론’ 논문을 발표하면서 현대물리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평가한다.

프랭크 윌첵 지음, 박병철 옮김 / 흐름출판 값 25,000원 ⓒ ScienceTimes

프랭크 윌첵 지음, 박병철 옮김 / 흐름출판 값 25,000원

그렇다면 과학의 아름다움은 과연 무엇일까? 그것은 수학적인 질서정연한 것일 수도 있고, 흠이 없는 진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윌첵은 과학의 아름다움이 결국 모순에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모순을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 

그는  “무엇인가를 보지 않고 믿다가 나중에 그 믿음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더 말할 나위 없이 기쁠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에는 보지 않은 것을 믿어서 기쁨을 느끼고, 두 번째는 보지 않고 믿은 것이 증명됐다는 점에서 기쁨을 느낀다. 이 역시 모순이다.

나는 모순된 존재인가?
그렇다면, 좋다. 나는 모순을 받아들이겠다.
나는 크고 다양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월트 휘트먼의 시 ‘풀잎’처럼, 모순은 자연스러운 것이며 당연한 것이다. 닐스 보어는 양자이론에 몰입했다가 진실과 모순이 한 끗 차이임을 발견했다고 한다. 닐스 보어 역시 태극무늬를 응용해서 디자인한 음양도를 자기 집안의 문장으로 삼았다.

양자역학의 영향으로 과학자들이 모순된 현상을 과학으로 받아들이면서 과학과 인문학의 관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다. 양자역학은 모순을 수용하지 않으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윌첵은 양자역학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원리중 상보성(complementarity)을 매우 중요하게 꼽는다. 양자역학에서 하나의 객체는 두 가지 양자적 특성을 갖는다. 입자성과 파동성이다. 이들을 동시에 관측하는 것은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양자적 스케일에서 관측행위와 관측대상은 상호작용을 주고 받으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친다.

전자를 예로 들면, 전자의 위치를 확인하려면 빛이나 X선을 비춰야 한다. 그런데 빛은 전자에 에너지와 운동량을 전달하여 전자의 위치를 바꿔놓기 때문에 원래 위치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과학적 아름다움이 모순에 있다는 것은 뉴턴의 생애에서도 드러나는 것 같다.

아이작 뉴턴은 거의 25년 동안 정신질환에 시달렸는데, 중요한 과학적 업적은 모두 이 시기에 나왔다. 현대적으로 말하면 조울증 같은 정신병증세였을 것이다. 그는 당시 잠을 거의 자지 못했고, 친구들이 모함한다는 강박증에 시달렸으며 약간의 착란증세까지 보였다.

오히려 대학교에서 조폐국으로 자리를 옮겨 정상적인 생활패턴을 찾은 시기에는 특별한 과학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온전한 정신이 과학적 발견을 방해한다는 말인가? 이 역시 모순이다.

상보성을 이해하면 자연스럽게 다양성을 그대로 인정하게 된다. 과학은 엄밀한 관찰과 실험을 바탕으로 하지만, 상보성이라는 변종 개념이 보급된 탓인지 이론물리학자의 생각은 거침이 없다.

최근 들어 우주론 학자들은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우주는 여러 개의 우주 중 하나라는 다중우주론을 제안하고 있다. 상보성과 모순의 아름다움에 익숙한 윌첵은 이에 대해 ‘대담한 가설이지만, 그다지 새로운 생각도 아니다’라고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인다.

우주를 이야기하기 전에 ‘사실상 지구상에 있는 70억 명의 사람들은 모두 다 70억 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라는 말이다.

때문에 윌첵은 우리 주변에 존재하는 우주가 많다는 것에 위축되거나 당황하지 않는다. 오히려 주변에 무언가가 많으면 상상력도 그만큼 풍부해진다고 가볍게 받아들인다.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바꿔 준 양자역학

양자역학의 귀신같은 세계를 경험한 이론물리학자 윌첵은 생각에 거침이 없다. 빛보다 빠른 정보전달 수단이 발견된다면, 또는 과거에 일어난 빅뱅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관측가능한 우주의 개념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관련된 중요한 개념 중 하나가 우주지평선이다. 우주지평선은 관측가능한 우주의 경계를 말한다. 여기에서 관측가능하다는 것은 빛의 속도와 관련이 깊다. 관측가능한 영역에 한계가 있는 이유는 빛의 속도가 유한하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우주에서 빛보다 빠른 속도로 정보를 전달하는 방법이 존재하는지는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 역시 정말 그런지 알 수 없다. 상상하기를 좋아하는 이 이론물리학자는  “빛보다 빠른 정보 전달 수단이 발견된다면, 또는 과거에 일어난 빅뱅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관측가능한 우주의 개념은 수정되어야 한다”고 조심스럽게 말한다.

그렇다면 보통 사람들에게 과학적 모순이 일상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을까? 모든 모순은 인생을 아름답게 만들까?

물리학적으로 보면 사람은 물질로 이뤄졌으며, 과학적 법칙을 따른다. 남녀간 사랑의 감정도 알고 보니 성호르몬의 과학적 작용이었다고 해석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 스스로 내리는 선택과 그에 따른 행동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윌첵은 ‘과학적 법칙을 따라 만들어진’ 인간이 ‘무언가를 선택해서 그 결과에 책임을 지어야 한다’는 윤리 사이의 모순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쿼크와 글로온 전자 및 광자의 집합체인 인간이 ‘생각하는 존재’인 것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윌첵은 과학적 모순이 인생을 다양하고 풍요롭고 아름답게 만든다고 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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