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0,2018

고생물학자가 숲을 마련하면?

과학서평 / 나무에서 숲을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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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박물관에서 일하던 고생물학자가 땅을 샀다. 1.6헥타르(약 4800평) 정도 되는 숲이다.  영국 수도 런던에서 멀지 않은 템스 강변에 있는 곳이다. 지명 역시 헨리 온 템스(Henry-on-Thames)이다.

강변에 자리 잡은 숲은 수많은 이야깃거리를 담고 있다. 열대 우림 정도는 아니어도 강변 숲은 온갖 나무와 벌레와 식물과 이끼 그리고 버섯이 자라는 곳이다.

이런 숲에 사는 사람은 무슨 일을 할까? 집을 짓고, 밭을 일구고, 정원을 가꿀 것이다. 혹은 바비큐 파티 장소를 만들거나 식용 작물을 기르려고 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고생물학자는 이 땅 전체를 박물관 삼아 샅샅이 뒤졌다. 그동안 박물관에 갇혀 있던 오랜 시간을 보상이라도 하듯, 아주 세심하고 꼼꼼하게 숲의 아주 작은 부분까지 관찰하고 기록하고 응용하고 품고 사랑한다.

이 호기심 많은 과학자는 동식물이 협력해 풍요로운 생태계를 형성하는 과정을 탐구했다. 그러면서 과학자로서의 영혼이 되살아나는 경험을 한다. 연구자에게 이런 경험은 회춘과도 같다.  그는 인간의 잠재된 호기심을 마음껏 누린다.

런던 근교 숲 1년 동안 관찰한 기록

마침내 과학자는 “나는 호기심이야말로 가장 의미있는 인간의 본성이라고 생각한다”고 선포한다. 그는 이어 “만약 인간에게 딱 한 가지 지령을 내릴 수 있다면, ‘호기심을 가져라!’라고 하고 싶다”고 말했다.

‘나무에서 숲을 보다’(The Wood for the Trees)는 런던 자연사막물관의 선임 고생물학자 자리에서 은퇴한 리처드 포티(Richard Fortey)가 쓴 ‘1년 동안의 생태계 탐험 프로젝트’다. 텔레비전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 나온 수익금으로 목돈을 쥔 포티 박사는 2011년 그림다이크 숲을 구입했다. 그리고 일지를 쓰고 동식물을 기록하고 숲의 분위기와 계절에 따른 변화를 그렸다.

4월부터 시작해서 3월에 끝난 생태계 관찰 보고서에는 그 1년 동안 숲에서 벌어진 일들이 소상하게 기록됐다.  포티 박사는 자신의 작업에 ‘그림다이크 숲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리처드 포티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 책 값 25,000원 ⓒ ScienceTimes

리처드 포티 지음, 조은영 옮김 / 소소의 책 값 25,000원

이 책에는 온갖 진기한 경험담이 들어있다.

포티 박사는 스카이차를 타고 높은 나무 가지 위에 올라 하늘을 보면서 나무 생태계를 소상하게 밝혔다.

숲에서 나무 한 그루를 베어낸 다음, 이를 한 지역 나무만 가지고 가구를 만들기로 유명한 전문가에게 맡기는 이야기도 있다. 전문가가 제작한 가구는 숲에서 수집한 온갖 진귀한 것을 담아두는 보물창고가 됐다.

사람을 괴롭히는 잡초에 대한 소심한 복수는 웃음을 짓게 한다. 작은 텃밭을 가꿔본 사람이면 잡초가 얼마나 농부를 괴롭히는지 알 수 있다. 이 숲에는 포티 박사의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따가운 쐐기풀이 있었다. 지반이 손상된 곳에 잘 자라는 이 풀에 대한 복수로 그는 비료 만들기를 선택했다.

쐐기풀은 식물 생장에 필요한 영양소가 풍부하다. 먼저 쐐기풀을 뜯어내서 휴지통에 넣은 뒤 뚜껑을 꽉 닫고 물은 부은 뒤 한 달을 기다린다. 이렇게 만들어진 퇴비더미에서 줄기를 빼내고 남은 액체를 5배로 희석하면 토마토나 콩에 좋은 비료가 되는 것이다.

“나는 기억을 수집했다.”

이 책에는 생태계 이야기가 아닌 다른 흥미진진한 얘기도 있다.  포티 박사는 돋음 글자가 새겨진 버려진 맥주병을 발견하고는, 고물상을 찾아가 그 맥주병의 유래와 맥주 제조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탐문했다. 60년 전 버려진 백주병은 1750년 태어난 로버트 브랙스피어(Robert Brakespear)라는 사람이 만든 브랙스피어 양조장에서 나온 것이다.

책 곳곳에 숲에 대한 시인과 과학자와 작가의 주옥같은 글들도 들어가 있다. 농부이자 작가인 아서 G 스트리트(Arthur G. Street 1892~1966)는 중년에 느낀 실망감을 나열한 후, 이같이 썼다.

‘숲이 주는 평화와 늘 제자리를 지키는 나무에서 오는 평안은 영혼의 주름살까지 펴주었다.’

물론 역사도 호기심과 기억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 숲에는 슬픈 기억도 남아있다. 14세기에 여름과 참혹한 겨울이 이어지는 기상이변이 있었다. 1315~1317년에 대 기근이 일어나자, 사람들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옥수수 종자까지 먹어 치웠다.

이 때는 기아와 질병이 이어지면서 영국 인구의 20%가 줄어든 시기이다. 식인이 흔한 범죄가 됐다. 이 세계적인 기후변화는 뉴질랜드의 타라웨라 화산 분출로 대량의 화산재와 가스가 대기 중에 퍼지면서 일어났다.

그림다이크 숲 역시 이 3년 동안 빈약한 나이테만 남겼다.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에서 일어난 자연재해가 영국까지 퍼져나간 절망의 세월의 흔적이다.

영국의 슬픔은 여기에 멈추지 않았다. 1348~1349년에 흑사병이 이어지면서 숲이 자리잡은 헨리온템스도 인구의 3분의 2를 잃었다고 한다.

그림다이크 숲 프로젝트의 마지막 내용은 벚나무 목재로 만든 수집품 보관함 이야기로 끝난다. 포티 박사는 서랍 4개 짜리로 틀을 짜고 모든 열장이음을 손으로 직접 잘라 맞물리게 했다.

분류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전문가인 그는 속이나 종별로 수집품 목록을 만들지 않았다. 대신 소중한 수집품을 차곡차곡 보관할 뿐이다. 마치 아이가 해변에서 호기심으로 주워 모은 작은 경이(驚異)들을 보관하듯이. 물론 이 수집품 중에서 경제적 가치가 있는 것은 없다.

그리고 포티는 이렇게 말했다.

“무엇에 눈길이 가든 간에 그것을 발견한 순간이 떠오를 것이다. 이것은 사물이 아닌 기억의 수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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