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1,2019

그리스 경제위기는 공주의 복수 때문?

유로파 공주 납치된 서쪽 땅,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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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피파(FIFA) 월드컵이 프랑스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16강까지는 유럽 10개국, 아메리카 5개국, 아시아 1개국이 남았지만, 8강에는 유럽 6개국, 남미 2개국만 올랐다. 4강부터는 아예 유럽 국가만의 각축장이 되었다.

4년마다 우리 국민들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월드컵(World Cup)이지만 사실상 그 이름 값을 못하고 유럽인과 아메리카인들의 축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최근에는 유럽 강세가 뚜렷해 ‘유로컵(Euro Cup)’이라 불러도 될 정도다. 오늘은 축구 선진국들이 모여 사는 땅덩이 유럽, 그 이름의 내력을 알아보자.

그 시작은 그리스 신화다. 어느 날 제우스는 지중해의 동쪽 끝으로 행차를 한 적이 있다. 그러다 지금은 레바논 땅에 해당하는 페니키아(Phoenicia)의 티로스(Tyre) 왕국에서 어여쁜 소녀를 발견했다. 티로스의 왕 아게노르(Agenor)의 딸인 유로파(Εὐρώπη; Eurṓpē; 에우로페) 공주였다.

순진하고 사랑스러운 공주는 때마침 바닷가에서 꽃바구니를 옆에 끼고 시녀들과 놀고 있었다. 공주가 무척 마음에 든 제우스는 공주를 납치하기로 마음 먹고 하얀 소로 모습을 바꾸었다. 그리고 바다에서 해변으로 저벅저벅 걸어나왔다.

납치당하는 유로파(The Rape of Europa, 1562년), 티치아노(Titian).  ⓒ 위키백과 자료

납치당하는 유로파(The Rape of Europa, 1562년), 티치아노(Titian). ⓒ 위키백과 자료

갑자기 나타난 소에 일행은 당황했다. 하지만 공주는 놀라지 않고 오히려 소에게 다가갔다. 눈처럼 하얀 황소였고, 뿔은 보석으로 만들어졌으니 신기할 수 밖에. 소는 마치 공주에게 쓰다듬어 달라고, 잔등에 올라타라고 말하는 듯했다.

공주는 황소를 쓰다듬어 주었고, 급기야는 등에 올라 앉았다. 소는 기쁜 듯 슬슬 해변을 몇 바퀴 돌았다. 그리고는 자신이 걸어 나온 바다로 몸을 던졌다. 순식간에 공주는 소에게 ‘보쌈’을 당해버린 것이다. 공주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지만 누구도 도울 수가 없었다. 소는 단숨에 바다를 건너 크레타(Crete) 섬까지 헤엄쳐 갔다. 직선거리로 800~900km나 떨어진 곳이다.

크레타에 유폐된 공주는 제우스의 아들 삼형제를 낳았다. 그 중 맏아들이 미노스다. 제우스의 아들이기도 한 미노스는 크레타의 왕이 되어 강력한 해상왕국을 건설했다. 미노스는 사람과 소의 하이브리드 괴물인 미노타우루스(Minotaurus)의 이야기에도 등장한다.

제우스는 유로파에게 3개의 보물을 내려주었는데 모두 신통방통했다. 첫째는 표적에 백발백중하는 창(創), 둘째는 포악하면서도 날쌘 개, 셋째는 반역자를 색출하는 구리로 만든 노예였다. 일종의 로봇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현대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무기, 경호, 정보의 체계가 완벽하단 말이 아닌가? 하지만 미노스는 자신의 욕심 때문에 가족을 파멸시키고, 민생을 도탄에 빠트리는 폭군이 된다. 그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

공주는 죽을 때까지 고향인 페니키아로 돌아가지 못했다. 고향에서는 아버지가 공주를 찾기 위해 백방으로 사람을 보내고 수소문했지만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는 공주가 간 곳이 어디인지 알았을까? 사람들은 유로파 공주가 아마 바다 건너 서쪽에서 잘 지낸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확한 위치를 알 수는 없지만, 그 땅을 공주의 이름인 유로파로 불렀다. 그 이름이 지금의 유럽이 된 것이다.

 

페니키아 공주 유로파; 에우로페 Εὐρώπη; Eurṓpē → Europe 유럽

 

하지만 다른 주장도 있다. 메소포타미아어 중 하나인 아카드(Akkd) 어로 ‘해가 지는’ 이란 뜻으로 쓰는 erebu에서 유럽이란 말이 왔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해 뜨는’ 땅이란 뜻의 오리엔트(orient)의 반대말이 된다. 이와 조금 다른 주장으로는 페니키아어로 ‘저녁’을 뜻하는 ereb가 어원이라고도 한다.

 

서쪽, 저녁 erebu, erb → Europe 유럽

 

여하튼 유럽이 처음 지리적인 명칭으로 등장한 것은 기원전 6세기 무렵의 그리스 문헌이고 지금도 그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 물론 유럽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제우스에게 납치된 동방의 공주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다. 그래도 이 글을 읽은 독자들은 안 그럴 것으로 믿는다.

 

Europe 유럽 대륙; 자연적인 경계는 동쪽의 우랄 산맥, 우랄 강, 카스피 해, 코카서스 산맥이다.

 

유로파라는 이름은 하늘의 별에도 붙어 있다. 1610년 1월에 망원경으로 목성을 관측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는 목성 주변에서 반짝이는 4개의 별(위성)을 발견했다.

갈릴레오는 자신의 고용주인 메디치(Medicis) 가문의 4형제에게 ‘별 넷’을 헌정했다. 이것이 ‘메디치의 별(Medicea Sidera; Medicean stars)’이다. ‘갈릴레오 위성(Galilean moons)’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

목성의 위성 유로파.  ⓒ 위키백과 자료

목성의 위성 유로파. ⓒ 위키백과 자료

이 위성에 제우스의 연인 이름을 붙여준 것은 네덜란드 천문학자 마리우스(Simon Marius)다. 그는 목성과 가까운 순서대로 이오(Io; Jupiter I), 유로파(Europa; Jupiter II), 가니메데(Ganymede; Jupiter III), 칼리스토(Callisto; Jupiter IV)라 명명했다. 이 이름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

 

메디치의 별 → 갈릴레오 위성 → 이오, 유로파, 가니메데, 칼리스토.

 

안타까운 것은 ‘4개면 족해 보일’ 목성의 위성이 너무 많이 발견된 것이다. 갈릴레오의 발견 이후 282년이 지난 1892년에 새 위성이 발견되었고, 이후로 위성들이 연이어 발견되면서 현재는 79개가 확인되었다.

유럽중앙은행(CEB)과 유로화.  ⓒ 박여정

유럽중앙은행(CEB)과 유로화. ⓒ 박여정

사실 로마 제국 이후 유럽은 오랫동안 분열된 땅이었다. 많은 전쟁을 겪었고 20세기에는 유럽 한 가운데 철의 장막까지 쳐졌다. 하지만 20세기 말에 장막이 무너졌다. 유럽은 하나로 통합되기 시작했고, 2002년에는 통일된 화폐 ‘유로(€)’를 쓰는 유로존(eurozone)이 태어났다.

그런데 2009년 그리스에서 시작한 경제 위기가 유로화의 위상에 큰 상처를 남겼다. 혹시 그리스인들에게 원한이 서린 유로파 공주가 자신을 납치하고, 이름까지 도용한 그들에게 화풀이를 한 것은 아닐까? 필자가 하릴없이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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