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1,2019

고체의 패러다임을 바꾸다

노벨상 오디세이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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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3차원 공간이다. 따라서 각종 실험 연구도 3차원 공간에서만 가능하다. 그런데 최근 성균관대학교 물리학과 연구진이 4차원 공간에서의 실험 연구를 가능케 하는 방법을 최초로 개발했다.

지난 6월 28일 ‘사이언스’ 지에 게재된 이 연구결과의 비결은 바로 그래핀 준결정이다. 그래핀은 탄소원자가 벌집구조로 평면을 이룬 2차원적 물질이다. 연구진은 두 층으로 이뤄진 그래핀을 정확하게 30도 회전시켜 그래핀 준결정을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3차원 공간에만 제한됐던 각종 연구들을 4차원 공간에서도 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연구진이 4차원 공간을 구현하는 데 필수적인 역할을 한 준결정은 과연 어떤 물질일까. 그에 대해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선 지금으로부터 36년 전인 1982년 4월 8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미국국립표준국(현 미국국립표준기술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근무하고 있던 댄 셰흐트만 박사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전자현미경으로 합금의 결정구조를 관찰하고 있었다.

준결정의 원자구조를 설명하고 있는 셰흐트만 박사(맨 왼쪽에 서 있는 사람, 1985년 촬영). ⓒ Public Domain

준결정의 원자구조를 설명하고 있는 셰흐트만 박사(맨 왼쪽에 서 있는 사람, 1985년 촬영). ⓒ Public Domain

그날 그가 관찰하던 합금은 알루미늄에 20%의 망간을 녹여 1초 동안 100만℃의 냉각 속도로 급랭 응고시켜 만든 것이었다. 그런데 셰흐트만 박사는 합금의 원자 배열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5각형 구조의 대칭이면서 비규칙적인 구조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기존의 과학적 개념에 어긋나는 구조였다. 5각형으로는 2차원이나 3차원의 물질을 채우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정6각형, 정4각형, 정3각형은 대칭구조를 이루며 주기적으로 배열돼 공간을 꽉 채울 수 있다.

이처럼 원자나 원자군이 대칭구조를 이루며 주기적으로 배열돼 공간을 꽉 채운 모양을 나나내는 물질을 ‘결정질 물질’이라 한다. 그에 비해 원자가 규칙적인 배열 없이 무작위로 섞여 있으면 ‘비정질 물질’이라 부른다.

이단적 연구결과라며 퇴출 요구 받아

세상의 모든 고체는 결정질 물질이거나 아니면 비정질 물질이다. 하지만 그날 셰흐트만 박사가 발견한 고체는 두 물질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성질을 지니고 있었다. 결정질 물질처럼 대칭구조를 가지고 있었지만 주기적 반복을 나타내지 않는 구조였던 것. 더구나 그 물질은 결정질 물질처럼 단단하면서도 비정질 물질처럼 열이나 전기를 잘 전달하지 않는 등 두 물질의 성질을 모두 갖고 있었다.

셰흐트만 박사는 자신의 연구결과를 믿을 수 없어 몇 번이나 반복 실험을 거쳤다. 그럼에도 결과가 똑같이 나오자 연구실 동료들에게 자신의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연구 단체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며 탈퇴하라는 요구를 받은 것이다.

셰흐트만 박사는 이처럼 반복 구조가 결여된 준결정 물질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 Public Domain

셰흐트만 박사는 이처럼 반복 구조가 결여된 준결정 물질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다. ⓒ Public Domain

그때만 해도 결정성을 갖기 위한 선행 요건은 주기성이라고 믿었기에 그 같은 반응은 어쩌면 당연했다. 노벨상을 두 번 수상한 결정학계의 대가 라이너스 폴링마저 “준결정은 없고 가짜 과학자가 있을 뿐”이라며 그를 이단시할 정도였다.

결국 다른 연구실로 옮겨야 했지만 셰흐트만 박사는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1984년에 그 연구결과를 존 칸 박사 등과 함께 물리학 분야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발표했다.

그로부터 불과 한 달 뒤 셰흐트만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물리학자 폴 스타인하르트와 도브 레비네의 연구결과가 같은 학술지에 발표됐다. 타일이나 벽지 등의 도안으로 흔히 사용되는 ‘펜로즈 타일링’의 패턴 구조로 셰흐트만이 발견한 결정 구조를 설명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또 다른 종류의 준결정이 계속 발견됐다. 셰흐트만이 발견한 준결정은 고체의 결정 속 원자가 5회 대칭구조로 배열되어 있었는데, 다른 과학자들이 여러 금속 합금에서 8회, 10회, 12회 대칭구조로 배열된 준결정들을 찾아낸 것. 이로써 셰흐트만의 연구결과는 이단이나 오류가 아닌, 기존의 관념을 깬 새로운 패러다임 전환형 연구임이 입증됐다.

금속재료 분야 최초의 노벨상

셰흐트만 박사는 첫 발견을 한 지 29년 만인 2011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로 결정됐다. 금속재료 분야에서 최초로 탄생한 노벨상이었다. 그동안 셰흐트만이 과학계에서 당한 수모는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화학상위원회의 시상 연설에서도 언급될 정도였다.

지식의 성장을 진전시키기 위한 의심과 불신은 당연한 것이지만 그가 그동안 겪은 조롱은 공정하지 않다고 지적한 것이다. 노벨상 외에도 셰흐트만은 결정학에서 새로운 장을 개척한 공로로 1987년 미국물리학회 국제상, 1998년 이스라엘 상, 1999년 울프상 등을 수상했다.

준결정을 이용한 응용 분야는 무궁무진하다. 기존에 쓰던 금속합금이라도 준결정의 구조를 빌려 구조를 바꾸면 새로운 소재로 탄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준결정을 이용한 골프채, 면도날, 프라이팬의 코팅재, 엔진을 보호하는 단열재 등이 연이어 탄생하고 있다.

1941년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에서 태어난 셰흐트만 박사는 1975년부터 이스라엘 테크니온공과대학에서 강의를 시작해 1984년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이 대학에서 오랫동안 기술창업과 기업가정신에 대해 강의를 진행하며 창업전도사로 활동하고 있다.

이스라엘 스타트업 혁명의 선구자로 평가받는 그는 지난 2014년 이스라엘 대통령 선거에 ‘교육시스템의 혁신’을 내걸고 무소속 후보로 출마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셰흐트만 박사는 2014년 서울대 물리천문학부 석좌교수로 1년 동안 임용돼 국내에서도 많은 강연 활동을 했다.

당시 그는 강연에서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에게 이 말 한마디를 특히 강조했다. “Failure OK, Start Again(실패해도 괜찮아. 다시 시작하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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