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4,2019

‘로봇 할머니 고물수레에 눈물이’

마린보이 작가 作, 고물수례 끄는 할머니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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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나 슬퍼요.”

장사익이 부르는 ‘찔레꽃’ 노래소리가 청계천 세운상가 실내광장에 울려 퍼졌다. 얼굴에 세상 주름을 다 가진 할머니가 구성진 노래 소리에 맞춰 힘겨운 걸음을 땅에서 떼어낸다. 할머니가 끌고 가는 고물수레에는 낡고 오래된 소형 텔레비전이, 라디오가, 두껍고 더러운 폐지박스가 켜켜이 쌓여있었다.

아티스트 마린보이가 만든 ‘고물수레를 끄는 할머니 로봇’은 인간보다 더 인간다움이 묻어있었다. 그는 기술이 예술로 전환되어 주는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

27일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등장한 할머니 로봇과 고물수레. 마린보이 작가는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인간애를 작품에 담아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김은영/ ScienceTimes

27일 서울 종로 세운상가에 등장한 할머니 로봇과 고물수레. 마린보이 작가는 기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고 인간애를 작품에 담아 뜨거운 호응을 이끌어냈다. ⓒ김은영/ ScienceTimes

할머니 로봇이 바라본 서울, ‘고물 수레’    

마린보이 작가는 27일 서울문화재단이 주최한 메이커스 행사 ‘인간은 누구나 메이커다(maker)’에 스토리 주인공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그가 만든 할머니 로봇이 등장하자 사람들은 술렁거렸다. 사람 모습과 흡사한 할머니의 주름진 얼굴과 미소에는 애잔함이, 고물이 가득 찬 무겁고 더러운 수레에는 슬픔이 느껴졌다.

전쟁 후 황폐해진 땅을 개간하고 척박했던 산업화 시절을 견디며 살아왔지만 지금 할머니에게 남은 것은 고물 수레 하나였다. 수많은 폐지노인들이 그리 살고 있는 것처럼 할머니 로봇은 우리 인간사의 어두운 명암을 상기시켰다.

마린보이 작가는 예술이 기술을 이끄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김은영/ ScienceTimes

마린보이 작가는 예술이 기술을 이끄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 김은영/ ScienceTimes

마린보이 작가는 고물수레를 끄는 할머니 로봇을 원격으로 조종한다. 멀리서 조종하면서 사람들이 할머니 로봇과 수레에서 느끼는 교감까지도 퍼포먼스의 일환으로 담아낸다. 그가 할머니 로봇과 함께 걸었던 지역은 서울 대학로와 강남역 부근. 많은 사람들이 로봇인줄 모르고 많은 연민을 담아 할머니 로봇에게 말을 걸어왔다.

“할머니가 움직이고 있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던 중년 여성이 인상에 깊이 남아요. 오랫동안 할머니를 지켜보더니 결국 다가와 손을 잡고는 할머니를 따스하게 껴안더라고요. 눈물을 쏟으면서요. 옆에서 지켜보던 친구도 눈물을 쏟아내고요.”

그는 혹시 누군가는 할머니의 손을 잡아주지 않을까 해서 할머니 손에 열선 작업을 했다. 그는 “다행히 잡아준 손은 로봇처럼 차지 않고 따스한 온기가 돌았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번은 서울로 긴 내리막에서 다리 구조물로 천천히 내려오던 길이었다. 모터에 과부하가 걸리면서 로봇이 움직이질 못했다. 용접부위가 파괴되면서 두 다리가 주저앉는 대형 사고였다. 이번에도 사람들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할머니 로봇에게 다가왔다.

등이 할머니 로봇만큼이나 굽은 할머니도 할머니 로봇에게 다가왔다. 할머니는 로봇에게 “할머니, 밀어드릴까요” 말을 걸며 힘껏 수레를 밀었다. 하지만 수레는 요지부동이었다. 할머니는 한참 지켜보다가 “안됐다” 하며 떼어지지 못하는 걸음을 옮겼다. 마린보이 작가는 “사람들이 할머니 로봇을 사람을 생각하고 나누었던 대화들이 많이 남는다”며 당시를 회상 했다.

인간과 교감할 수 있는 기술, 예술로 이끌고 싶어

폐지 줍는 노인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마린보이 작가는 사람들은 현대 도시에서 소외되어 고물을 주워 파는 노인들을 ‘나와는 상관 없는 사람’, ‘그저 도시 풍경의 하나’ 로 생각하는 것이 싫었다고 고백했다. 그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가는 폐지 할머니들을 풍경이 아닌, 사람들이 지켜보는 하나의 인격체로 만들고 싶었다”며 작품 개발 동기를 밝혔다.

고물수레2

마린보이 작가의 할머니 로봇과 고물수레. 할머니의 주름진 손과 느린 걸음에서 애잔함과 슬픔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로봇을 진짜 할머니라 생각하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김은영/ ScienceTimes

마린보이 작가의 할머니 로봇과 고물수레. 할머니의 주름진 손과 느린 걸음에서 애잔함과 슬픔이 느껴진다. 사람들은 로봇을 진짜 할머니라 생각하고 다가와 말을 걸었다. ⓒ김은영/ ScienceTimes

왜 하필이면 고물 수레를 끄는 할머니 로봇을 만들었을까. 작가는 인도에 낡고 녹슨 고물 수레로 보고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수레는 몇 날 며칠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사람은 없고 빈 수레 뿐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노인들은 자신이 젊은 날로 돌아갈 수 없다는 점을 알지만 젊은이들은 자신이 늙어간다는 것을 알지 못 한다”는 구절이 흘러나왔다. 그 또한 세월이 가며 스스로 늙어가고 있음을 느끼며 생각했던 바라 노인에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인형이 주는 매력도 한 몫 했다. 인형 서커스 공연을 했던 경험을 통해 ‘이렇게 작은 인형으로도 감동을 주는데 사람만한 인형이 움직이면 사람들이 얼마나 신기해하고 놀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물수레 끄는 할머니 로봇’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그는 로봇의 제작 과정을 캐드나 컴퓨터 3D 그래픽스 작업이 아니라 손 스케치 그림으로 완성했다. 할머니의 걸음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수레에는 모터를 달았다. 인간처럼 움직이게 하는 휴머노이드(humanoid) 로봇을 만드는 것은 너무 어렵고 힘든 작업이었다. 그는 “너무 어려워서 고치고, 뜯고, 고치고, 뜯고를 반복했다”며 웃었다.

하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었다. 기술은 속 안에 숨어 있으면 되었다. 그가 원하는 것은 밖에 보이는 ‘인간다움’, ‘인간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마린보이 작가는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나 방법을 제시하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이 예술가가 아닐까”하며 앞으로도 예술이 기술을 이끌어 내는 새로운 관점의 창작물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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