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9,2019

어려서 병 앓으면 세포가 빨리 노화

염색체 끝부분 '텔로미어' 짧아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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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 질병에 많이 감염된 어린이들은 성인이 됐을 때 세포가 좀더 빨리 노화되는 표지가 나타난다는 연구가 나왔다.

염색체 끝을 싸서 보호하는 캡인 텔로미어가 어렸을 때 건강했던 사람들보다 짧게 보인다는 것이다. 텔로미어는 수명이나 노화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염색체의 끝부분이다.

이번 연구 결과는 유전과 환경 사이의 복잡한 상호작용이 인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 연구는 ‘미국 인체 생물학 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Human Biology) 25일자에 게재됐다.

논문 제1저자인 댄 아이젠버그(Dan Eisenberg) 미국 워싱턴대 조교수(인류학)는 “일반적으로 염색체 캡이 짧으면 나이 들어서 병에 잘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이번 연구는 중요하고 놀라운 발견”이라고 말했다.

염색체(푸른 색) 끝에 있는 텔로미어(흰색) 전자현미경 사진. 자료 : Hesed Padilla-Nash and Thomas Ried, National Cancer Institut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염색체(푸른 색) 끝에 있는 텔로미어(흰색) 전자현미경 사진. 자료 : Hesed Padilla-Nash and Thomas Ried, National Cancer Institute, National Institutes of Health

생애 초기 감염이 텔로미어 길이에 영향

연구팀이 염색체 캡이라고 부른 텔로미어는 유전자가 손상되거나 부적절한 규제를 받지 않도록 보호한다. 텔로미어를 연구하는 한 노벨상 수상 과학자는 이 텔로미어를 구두끈 끝부분을 덮고 있는 금속이나 플라스틱 덮개에 비유했다. 덮개가 닳아 없어지면 구두끈은 주변 환경에 노출돼 닳아 해어질 수 있다.

모든 인체 세포에서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조금씩 짧아지며, 너무 짧아지게 되면 세포는 분열을 멈추거나 죽게 된다.

텔로미어의 길이는 인체의 면역세포 특히 혈류를 타고 순환하는 백혈구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병원체가 우리 몸에 침입해 면역체계가 활성화되면 백혈구는 침입자에 대항해 방어력을 키우기 위해 세포 분열을 가속화한다. 그러나 백혈구에 있는 텔로미어가 너무 짧으면 우리 몸이 효과적인 면역반응을 일으키기가 힘겨워진다.

아이젠버그 교수는 “동물과 인체에 대한 많은 실험실 연구에 따르면 텔로미어가 짧을수록 특히 성인들에게서 건강이 좋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생애 초기에 있었던 일들이 텔로미어의 길이에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를 밝힌 연구는 거의 없었다.

세포는 죽기 전에 평균 50 ~ 70번 분열한다. 세포가 분열함에 따라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는 더 작아진다. 출처 : Wikipedia / Azmistowski17

세포는 죽기 전에 평균 50 ~ 70번 분열한다. 세포가 분열함에 따라 염색체 끝에 있는 텔로미어는 더 작아진다. 출처 : Wikipedia / Azmistowski17

어린이 3000명 20년 이상 추적 조사

아이젠버그 교수는 이 같은 의문을 풀기 위해 필리핀 세부(Cebu)에서 실시된 ‘건강과 영양 장기 조사’에 주목했다. 이 연구는 세부시에서 1983~84년 사이에 태어난 어린이 3000명 이상을 추적 조사한 결과로, 아기가 태어나서 두 살이 될 때까지 아기 엄마로부터 두 달마다 아기의 건강과 양육 습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을 수집한 것이다. 아기 엄마들은 얼마나 자주 아기에게 젖을 먹였는지 등을 비롯해 아기들이 감염의 표지인 설사를 얼마나 자주 했는지 등에 대해 답변했다.

아기들이 성장하면서 연구자들은 20년 이상의 추적 조사기간 동안의 건강 자료들을 추가로 수집했다. 2005년에 21~22세로 성장한 초기 참여 어린이 가운데 1776명이 혈액 표본을 기증했다. 아이젠버그 교수는 이 혈액 샘플 세포에서 텔로미어의 길이를 측정한 다음 이 자료를 대상자들이 어렸을 때의 건강 및 양육 자료와 결합시켰다.

그 결과 6~12개월 사이에 설사를 가장 많이 한 그룹에 속한 아기들이 성인이 돼서 가장 짧은 텔로미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 6개월 사이의 기간은 아기들의 활발하게 움직이고 탐구심이 높아지는 시기로 아기들이 전형적으로 젖을 떼는 기간이면서 동시에 소아 감염질환이 절정에 이르는 기간이다. 아이젠버그 교수는 당시의 세부시 환경과 공중보건 실태를 감안할 때 아기 설사는 대부분 감염에 의해 일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필리핀의 휴양도시인 세부(Cebu)시티. 1980년 초 도시의 보건환경은 열악한 측면도 있었다. 사진 : Wikipedia / Naplee12

필리핀의 휴양도시인 세부(Cebu)시티. 1980년대 초 도시의 보건환경은 열악한 측면도 있었다. 사진 : Wikipedia / Naplee12

텔로미어 길이 단축, 감염 때문인가

설사 감염은 매우 심각한 지구촌 건강문제로 5세 이하 어린이들이 사망하는 두 번째 원인이다. 아이젠버그가 발견한 감염과 텔로미어 길이 사이의 연관성은 노화에 영향을 미칠 만큼 중요한 요소로 받아들여진다. 예를 들어 유아 때 평균수준의 설사 감염을 경험한 사람들은 중장년 성인들의 텔로미어 길이를 감안했을 때 그런 설사 경험이 없는 사람들에 비해 텔로미어가 3년 정도 더 빨리 노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한 한 가지 설명은 어렸을 때 더 많이 감염이 됐기 때문에 성인이 돼서 더 짧아진 텔로미어를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감염은 세포 복제와 염증을 증가시키고 이 둘 모두 텔로미어를 단축시킬 수 있다. 이와 다른 설명도 가능하다.

아이젠버그 교수는 “태어날 때부터 텔로미어가 짦을 수 있고, 그 결과 생후 6~12개월 사이에 더 쉽게 감염이 되었고, 성인이 되어서도 짧은 텔로미어를 갖고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텔로미어는 전세계 어린이들이 설사 감염에 쉽게 걸릴 수 있는지의 여부를 결정하는 중요한 인자가 될 수 있다.

모유 수유를 하는 어머니 모습. 모유 수유와 텔로미어의 길이와 연관성 규명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사진 : Pixabay

모유 수유를 하는 어머니 모습. 모유 수유와 텔로미어의 길이와의 연관성 규명을 위해서는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사진 : Pixabay

모유 수유와 텔로미어 길이의 연관성

한편 놀랍게도 모유 수유와 자녀들의 텔로미어 길이와는 연관성이 발견되지 않았다. 아이젠버그 교수는 “어린이들은 면역체계가 발달하는 동안 모유 수유를 통해 병원균과 싸워 이길 수 있는 어머니의 항체를 물려받기 때문에 모유 수유와 텔로미어 길이가 상관성이 있을 것으로 기대했었다”고 말했다.

2016년에 나온 캘리포니아의 한 연구에 따르면 라틴계 어린이 121명에 대한 조사 결과 출생 후 첫 6주간 모유 수유만 한 어린이들은 4~5세가 되었을 때 좀더 긴 텔로미어를 갖게 되었다는 보고가 있다. 이에 대해 아이젠버그 교수는 이번 연구와 2016년의 캘리포니아 연구 사이에는 여러 가지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유 수유가 텔로미어 길이에 영향을 준다면 그 효과는 21세 정도까지 가는 것 같다”며, “이런 종류의 연구에서 대상이 되는 어린이들은 전세계의 여러 지역에 산재해 있어 노출되는 병원체가 다르고 모유 수유 방식도 다르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주제와 관련한 건강 자료가 더 많이 확보돼야 텔로미어의 길이와 환경과 관련된 논쟁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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