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2,2019

기억상실증 환자가 뇌과학에 기여

카오스재단 ‘뇌과학 강의’ (3) 강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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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강봉균 교수가 카오스재단의 뇌과학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 황정은/ ScienceTimes

30일 저녁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강봉균 교수가 카오스재단의 뇌과학 강연을 하고 있다. ⓒ 황정은/ ScienceTimes

헨리 구스타브 몰레이슨. 지난 55년 동안 ‘H.M’ 으로만 알려진 그는 현대 뇌 과학에 큰 기여를 한 인물이다. 뇌 과학의 발전을 이끌었다고 하면 의사일 것 같지만, 사실 그는 의사도, 뇌과학자도 아닌 기억상실증 환자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몰레이슨은 27세의 나이에 뇌전증 발작 치료를 위해 뇌 절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그는 단 몇 분 안에 일어난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증세를 보여 많은 이를 안타깝게 했다. 하지만 장기기억은 고스란히 갖고 있어 과학계는 그의 증세를 유심히 살폈다. 몰레이슨의 기억상실증이 개인에게는 비극이었지만 과학계에는 엄청난 기회를 제공한 셈이다.

당시 그의 증세를 보며 많은 과학자들은 기억이 과연 우리 뇌에 어떻게 저장되고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 것인지, ‘뇌’와 ‘기억’, 그리고 ‘기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이처럼 기억은 과학자, 그리고 일반 대중들에게 언제나 궁금증의 대상이었다.

카오스재단에서 진행하는 ‘뇌과학 강의’의 세 번째 주제는 ‘기억’이었다. 30일 강연은 강봉균 서울대 생명과학부 교수의 설명으로 이어졌다. 강봉균 교수는 기억이 우리에게 갖는 의미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금방 지워지는 기억과 오래 지속되는 기억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정보 저장되면 시냅스 효율 ↑

우리 뇌에는 수천조에 이르는 막대한 양의 시냅스가 존재한다. 시냅스는 뉴런이라 부르는 신경세포 간 신호전달을 매개하는 구조로, 기억정보를 저장하는 장소기도 하다. 강봉균 교수는 “뇌는 기본적으로 전기와 화학의 기관”이라며 “뇌가 어떠한 정보를 받아들일 때 신경전달물질이 발생하면서 시냅스가 활성화 된다”고 이야기 했다.

이 때 시냅스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은 ‘글루탐산’이다. 강봉균 교수는 글루탐산에 대해 “일종의 화학조미료” 라고 설명하며 “뇌는 화학기관이자 전기기관이다. 우리가 ‘생각’ 이라는 것을 할 때마다 뇌에서 조미료가 흘러나오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쉽게 설명했다.

“눈여겨 볼 것은 수용체라는 단백질입니다. 수용체는 건전지의 배터리에 해당한다고 생각하면 돼요. 그 건전지를 켜기 위해서는 글루탐산이 붙어줘야 합니다. 글루탐산이 수용체에 결합하면 전기가 만들어지는 원리죠. 그래서 뇌는 ‘전기화학기관’ 인 것입니다.”

반짝반짝, 뇌의 전기작용이 활발할수록 우리의 두뇌가 더 깨어있다는 의미다. 더불어 기억 능력도 발달할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했듯 뇌 작용에는 시냅스의 활동이 중요한데 학습정보가 저장되면 시냅스의 연결효율이 증가하는 현상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강 교수는 “학습으로 시냅스 연결이 달라질 수 있다”며 “오늘 강연에서 이야기 하고 싶은 부분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학자들의 연구 결과, 학습에 의해 시냅스의 연결에 변형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게 밝혀졌다. 즉, 학습을 많이 할수록 시냅스가 더 많이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래 기억하려면 ‘경화과정’ 필요

우리의 기억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서술 기억’과 ‘비서술 기억’으로, 쉽게 말하면 ‘의식’과 ‘무의식’이다. 서술기억은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기억이고 비서술 기억은 무의식중에 일어날 수 있는 말이 필요 없는 기억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운동 습관, 정서 반응 등이다.

내측두엽에 있는 해마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서술 기억은 한 번의 경험만으로도 학습이 가능하지만, 소뇌와 기저핵 등의 영역에서 처리되는 비서술기억은 반복적 학습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수술로 해마가 제거된 환자들이 서술기억은 제대로 저장을 못하지만 비서술 기억을 저장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을 봐도 뇌 영역의 기능이 뚜렷하게 구분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위의 분류 외에도 기억은 기간에 따라 ‘작동기억(수초)’, ‘단기기억(수분, 시간)’, ‘장기기억(하루 이상)’ 으로 구분되기도 한다. 강 교수는 “단기기억이 장기기억으로 가려면 기억이 파괴되지 않고 단단하게 굳는 ‘경화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더 오랫동안 기억하기 위해서는 한 번의 경화가 아니라 ‘재경화’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장기기억도 특정 과정에서 소거가 될 수 있다는 의미였다.

강의 도중 여러 동물실험 사례를 든 강봉균 교수는 생쥐를 대상으로 공포조건을 학습시켰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등에 대해 이야기하며 우리 뇌가 학습하는 과정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려줬다. 더불어 뇌 기능 장애로 일어나는 기억장애 증상에 대해서도 설명, 최근 분자생물학 혹은 광유전학 기술을 활용한 기억관련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강 교수는 “우리 일상생활에서 어느 한 순간도 기억이 필요하지 않을 때는 없다”며 “우리가 자신을 자각할 수 있는 이유는 자신에 대해 기억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기억은 자아를 지켜주는 중요한 뇌 기능이자 자아를 형성하는 자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며 철학적 이야기로 강의를 끝마쳤다.

확실히 ‘기억’ 이라는 주제는 많은 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이날 강연에 참석한 청중의 집중도가 매우 높았다. 많은 참서자들이 진행되는 강의에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고 다른 날에 비해 질문도 더욱 많이 제기됐다.

김상정 서울대 의과대 교수와 최준식 고려대 심리학과 교수가 함께 한 패널 토론에서는 ‘선택된 기억만 망각할 수 있는지’, ‘왜 시험이 끝나면 나의 모든 기억도 끝이 나는지’, ‘슈퍼 메모리의 세계; 초기억력과 기억력의 증가’ 등에 대한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고갔다. 청중들은 과학적이면서도 재치 있는 토론 주제에 시종일관 웃으며 공감을 표했다. 한편 다음 강연은 ‘뇌를 읽다, 그리고 마음을 읽다’ 라는 주제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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