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0,2019

‘메르스 보도’에서 배워야 할 것들

‘과학기술 위험 소통과 언론보도’ 세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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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5월 이후 우리 사회는 반년 넘게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곤욕을 치렸다. 생소한 외래 유입 감염병을 맞아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정부와 의료기관, 일반인 모두 당황하고 혼란에 휩싸였다.

메르스 사태는 우리 사회가 위기상황에 직면해 이를 조기에 신속 정확하게 대처하지 못한 원인은 무엇인가, 앞으로 여러 형태의 유사한 위기가 닥칠 때 똑 같은 혼란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과제를 던져주었다.

지난 17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과학기술 위험 소통과 언론보도’ 세미나는 메르스 사태를 중심으로 ‘위기 소통’ 실패의 원인을 짚어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이 이어져 관계자들의 깊은 관심을 모았다. 이 세미나는 한국과학창의재단 후원으로 한국과학언론인회와 과학기술문화협동조합이 공동 주최했다.

17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 305호에서 열린 '과학기술 위험 소통과 언론보도' 세미나

17일 서울 역삼동 과학기술회관 305호에서 열린 ‘과학기술 위험 소통과 언론보도’ 세미나. 사진 과학언론인회 / 이순재

감염병 발생시 가이드라인 안 지켜

첫번째 주제발표자로 나선 안종주 박사(한국사회정책연구원 사회안전소통센터장)는 “당시 질병관리본부가 트위터 계정을 폐쇄한 것은 전쟁에서 스스로 무기를 버린 격”이라며, “쓴 소리에 귀를 닫겠다는 것은 기본적인 소통 전략의 부재를 드러낸다”고 지적했다.

안박사는 “위험 소통 전문 민간회사에 메르스 위기 대응 용역자문을 주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 과연 감염병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회사가 있는지, 능력 있는 회사라면 왜 실패했는가” 묻고, 자문을 해도 정부기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거나 활용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고 비판했다. 우리 나라는 위기대응 경험이 부족해 먼저 관련 전문가들의 집단지성을 활용하는 것이 적절하다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감염병 발생시 가이드라인으로 △신뢰(Trust) △조기에 알리기(Announcing Early) △투명성(Transparency) △청취(Listening) △계획 세우기(Planning)를 제시하고 있다. 메르스 사태 때 우리 나라는 이런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아 위기를 인식하는데 실패하고 위기 소통에도 실패했다는 게 안박사의 진단이다.

발제자로 나선 안종주 박사(왼쪽)와 전형준 교수(오른쪽) ⓒ 과학언론인회 / 이순재

발제자로 나선 안종주 박사(왼쪽)와 전형준 교수(오른쪽) ⓒ 과학언론인회 / 이순재

최선의 상황만 상정하는 등 위기소통에 문제”

위기(위험)는 전문가와 일반인이 인지(인식)하는 것이 다르다. 메르스는 특히 일반인이 그게 위험하다는 걸 잘 알지 못하고(비자발성), 통제가 어려우며, 정확한 지식이 부족하고, 치명성이 있는 새로운 위험이어서 일반인이 위험을 실제보다 크게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 메르스 사태때 위기관리 부처는 이를 소홀히 했다는 것.

안박사는 이런 위기 인식의 실패에 이어 “사태 관리의 투명성이 부족하고 정보가 신속하게 공개되지 않은 점, 잘못된 점을 사과하고 직접 피해 가족을 보듬지 못하는 등 신뢰도 떨어져 ‘위기 소통’에 실패하게 됐다”며, “최악의 상황과 최선의 상황을 모두 포함하는 설정을 해야 하는데 ‘3차 감염은 없다’와 같이 최선의 상황만 강조하고 메르스 관련 괴담을 처벌하겠다는 등 일방적 소통으로 인해 전체적인 위기관리 소통에 문제가 생겼다”고 말했다.

메르스 대응 실패의 결정적 단면은 복지부에서는 ‘학교 휴업 필요없다’고 하고 교육부에서는 ‘학교 휴업이 필요하다’고 말해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컨트롤 타워의 부재’에서 여실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초기 역학조사 부실, 병원명 비공개 등 파헤쳤어야”

그러면 언론은 어떠했는가.

안박사는 먼저 기존의 감염병 보도준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은 언론사도 있었다고 말했다. 감염병 보도준칙으로는 △사실 보도의 정확성 △새로운 관련 연구 결과 보도의 정확성 △감염 가능성에 대한 근거 기반 보도 △감염인에 대한 신상 보도 유의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일부 언론에서는 ‘의사 출신 메르스 환자 사망’, ‘중국 연구진 메르스 억제물질 개발’ 등 부정확한 보도를 내보냈고, ‘슈퍼 전파자’ 혹은 ‘최대 전파자는 거구의 뚱뚱한 남성’이라는 표현으로 해당 환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주제 발표 후 위기소통의 문제에 대해 참석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세미나 모습 ⓒ 과학언론인회 / 이순재

주제 발표 후 위기소통의 문제에 대해 참석자들 사이에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세미나 모습 ⓒ 과학언론인회 / 이순재

언론의 과장 보도도 문제로 지적된다. ‘전국이 메르스 대란’, ‘바이러스 대확산…한국은 패닉상태’ 같은 제목은 독자들의 이목을 끌지만 사회적으로는 공포를 확대재생산하는 부작용이 따른다. 안박사는 “기사 제목에 패닉, 대혼란, 공포, 창궐 등의 단어와 자극적인 수식어 사용은 삼가야 하고 ‘낙타 독감’과 같은 독자가 오인할 수 있는 다른 감염병과의 비교 표현도 적절치 못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언론 본연의 역할이 미흡했다는 평가도 내렸다. 안박사는 “초기 메르스 확산 때 정부의 병원이름 비공개에 대해 기존 언론은 무엇을 했는가” 묻고, “초기의 역학 조사 부실이 역학조사관 거의 모두 공중보건의란 사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파헤치지 못 했다”고 말했다.

메르스 현장취재 기자 설문조사 분석  

두번 째 발제자인 전형준 교수(단국대 분쟁해결연구센터 교수)는 ‘메르스 사태 보도와 기자 전문성의 비교 분석’을 주제로 기자의 전문성이 취재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 발표했다.

전교수는 메르스 사태 때 취재일선에서 보도를 담당했던 기자 19명에 대해 기자 경력과 전문성, 문제인식과 태도 등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해 연구에 활용했다.

전교수는 설문 대상 기자를 △전문기자 경력이 총 기자 경력의 90% 이상 △전문기자 경력이 총 기자 경력의 50~90% 이상 △전문기자 경력이 총 기자 경력의 50% 미만 등 세 기준으로 나누고 이를 총 기자 경력 10년 이상과 10년 미만으로 분류해 모두 다섯 그룹으로 세분했다.

대상 기자들에 대해 메르스 환자를 최초로 인지한 채널과 취재 대상을 물은 결과 전문기자 중에서 경력 30년 이상인 두 명만이 다른 기자들과 달리 감염내과 교수로부터 최초로 메르스 환자 발생 사실을 알게 됐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기자 경력이 10년 이상이면서 전문기자 경력이 50~90%인 기자들은 초기에 WHO 관계자와 외국 전문가를 취재했고, 관련 논문을 직접 찾아보는 등 적극적인 직업 전문성을 나타냈다.

기자들의 경력보다 태도가 취재 더 큰 영향”

기자들이 메르스 사태 때 문제의식을 가졌던 계기로는 기자 경력이 10년 이상이면서 전문기자 경력이 90% 이상인 그룹의 경우 ‘보건 당국이 세웠던 접촉자 판단 기준 밖에서 확진자가 발생한 것’을 꼽았고, 나머지 기자들은 ‘병원명 비공개’를 들었다.

또 정부의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한 원인으로, 전문기자 경력이 50% 이상인 기자들은 시스템 오작동, 인간적인 한계와 안이함, 당혹감 등 구조적인 원인을 지목했고, 전문기자 경력이 50% 미만인 기자들은 책임 회피와 병원의 이익 우선시, 권위자 1~2명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등의 관련자 개개인의 문제점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전교수는 “전반적으로 취재에 대한 인식이나 적극성은 기자 경력보다는 기자 개인의 태도가 더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주제발표 후 이어진 토론에서는 위기 상황에서소통의 문제점이 많이 거론됐다. 장재열 전 과학언론인회 회장은 ” 메르스 사태 때 혼란스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 지나친 ‘윗선 바라보기’나 윗선 개입이 문제의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긴급한 위기상황에서는 매뉴얼과 합리적 판단에 따라 일선 담당자의 소신 있는  ’선조치 후보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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