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0,2019

자연적 소재를 테크놀로지 예술로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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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25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에서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展)이 열리고 있다. 박현기는 국내에 비디오를 본격적으로 예술에 도입했던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이다. 58세라는 길지 않은 생애 동안 수많은 작품과 자료가 남겨졌지만, 이에 대한 정리가 국립현대미술관에 의해 이제야 이루어졌다. 1000 평 전시공간에서 1000여 점이 전시되고 있는 ‘박현기 1942-2000 만다라’ 전(展)은 회고전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박현기의 작품은 극단과 극단을 융합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무위자연 등을 소재로 가장 현대화된 비디오아트라는 테크놀로지를 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가장 성스러운 것과 가장 퇴폐적인 것도 하나로 엮는 작품도 선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세상의 온갖 극단들이 서로 갈등하고 공존하는 일종의 ‘에너지 장(場)’을 형성하고 있는 셈이다.

가상과 현실에 대한 질문

이번 전시는 3가지 소주제로 다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가상과 현실’이다. 전시실에 들어서면 첫 눈에 보이는 공간은 마치 도서관 같다. 책장에 각종 자료가 있고 컴퓨터가 설치되어 있다. 박현기 자료들이다. 각 연도별로 자료가 구성되어 있어 작품 이해를 돕고 있다. 컴퓨터 역시 작품 설명을 돕고 있다.

작가는 낙동강 안에 테두리가 없는 거울을 꽂아 ‘진짜와 가짜’, ‘가상과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작가는 낙동강 안에 테두리가 없는 거울을 꽂아 ‘진짜와 가짜’, ‘가상과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그런데 이 공간을 벗어나 안으로 다시 들어가면 5개의 텔레비전과 마주하게 된다. 아주 오래된 텔레비전 안에 낙동강 물이 흐르고 있는데, 그 영상 안에 또 다른 프레임이 보인다. 이 프레임 안에서도 강물이 흐르고 있다. 작가는 낙동강 안에 테두리가 없는 거울을 꽂아 ‘진짜와 가짜’, ‘가상과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영상 속 강물은 진짜이지만 거울 속 강물은 가상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 바로 뒤에 있는 또 다른 비디오 영상물은 이런 작가의 생각을 더 확고하게 알 수 있다. 텔레비전 안에 금붕어가 돌아다니고 있는 영상이다. 마치 텔레비전이라는 어항 안에 금붕어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자아낸다. ‘가상현실’이라는 단어가 거의 쓰이지 않았던 시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관람객들에게 그 개념을 정확히 설명하고 있다.

좀 더 복잡하고 철학적인 작품도 있다. 돌로 층이 쌓여있는 작품이 그것이다. 이 돌 층 사이에 텔레비전이 놓여있다. 그리고 그 영상에는 돌 층에 쓰인 돌과 크기와 모양이 비슷한 돌 영상이 흐르고 있다. 돌 층은 현실이고 진짜이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가짜 돌이다. 중요한 것은 그 안에 흐르는 돌 영상이다. 이 영상은 가짜이자 가상이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돌 층은 현재이지만 돌 영상은 또 과거의 모습이다. 장소도 그때 그곳이 아니다. 시간과 공간의 혼재된 작품인 셈이다.

1983년 대구 수화랑에 전시됐던 작품을 구현해 낸 작품은 박현기의 선구자적 특성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983년 대구 수화랑에 전시됐던 작품을 구현해 낸 작품은 박현기의 선구자적 특성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1983년 대구 수화랑에 전시됐던 작품을 구현해 낸 작품은 박현기의 선구자적 특성을 그대로 보이고 있다. 전시장 공간에 많은 돌들이 무질서하게 놓여있다. 그리고 천장에 줄로 매달은 마이크가 바닥 가까이에 설치되어 있다. 이는 관람객들이 전시장을 돌아다니는 소리를 전달하기 위한 것으로, 관람객들에게 자신들의 소리를 듣게 하고자 한 작가의 의도라고 할 수 있다. 요즘 많은 미디어아트에서 볼 수 있는 ‘인터랙티브’의 모습이 구현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숫자 ’5′의 철학적 해석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또 다른 주제는 숫자 ‘5’이다. 자연을 소재로 삼아 작품을 활동을 했을 만큼 동양사상에 심취했던 박현기는 주역 중 손금에도 관심을 갖는다. 물론 손금으로 보는 운명에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다섯’이라는 숫자의 특별함에 강박증을 가질 만큼 매료됐다. ‘오장육부, 미각․촉각 등 오감, 손가락과 발가락 5개’ 등이다. 작가는 바로 이 점에 관심을 가지며 자신의 해석을 덧붙인 작품을 발표했다.

박현기는 ‘다섯’이라는 숫자의 특별함에 강박증을 가질 만큼 매료됐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박현기는 ‘다섯’이라는 숫자의 특별함에 강박증을 가질 만큼 매료됐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이와 관련된 전시품은 손을 그려놓은 듯한 작품이다. 이번 전시회의 포스터이자 1991년 대구 인공화랑에서 열린 전시회에서 전시된 작품으로 사진이듯 그림 같은 모습이다. ‘포토미디어’라는 새로운 매체를 고안했는데, 사진을 찍은 후 이를 인화하는 과정에서 드로잉, 스크래치 등을 가하여 재가공한 것으로 여려 개의 층위가 하나의 화면에 겹쳐져 있는 효과를 주고 있다. 장승처럼 세워놓은 나무 작품들도 숫자 ‘5’와 관련 있다. 5개의 나무 아래에는 손가락을 펴듯이 5개로 갈라져 있고 그 사이에 돌이 끼워져 있다.

자연을 소재로 삼았던 작가는 1990년 중반에 들어서면서 현실을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한다. 이번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작품은 ‘우울한 식탁’이다. 식탁 위에 두 개의 큰 접시가 놓여져 있고 자신의 신체를 캐스팅한 조각을 올려놨다. 그리고 그 위로 프로젝트로 영상을 띄우고 있다. 이 영상은 삼풍백화점과 같은 인공적 재해와 자연재해의 모습이 담겨있다.

2000년 광주비엔날레서 출품된 박현기 유작인 ‘개인코드’는 작가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문 영상이 계속 되고 그 위로 붉은 글씨로 주민등록번호가 생겼다 사라진다. 지문은 자연적 운명이라면 주민등록번호는 사회가 인간에게 주는 운명이다.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인간들이 각자의 코드를 지닌 채 살고 있음을 확고하게 인지시키고 있다.

‘만다라’는 극단적 소재를 이용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가장 뚜렷이 보이는 작품이자 현실의 모습을 잘 보이는 유작 시리즈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만다라’는 극단적 소재를 이용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가장 뚜렷이 보이는 작품이자 현실의 모습을 잘 보이는 유작 시리즈이다. ⓒ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만다라’는 극단적 소재를 이용하는 작가의 작품 세계가 가장 뚜렷이 보이는 작품이자 현실의 모습을 잘 보이는 유작 시리즈이다. 만다라는 불교 등에서 볼 수 있는 성스러운 상징이다. 이번 전시회에는 여러 개의 스크린 영상이 빨래를 일정 간격으로 널어놓은 듯 걸려 있다. 이 작품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는 기본적으로 만다라 이미지이다. 다채로운 색깔과 이미지들이 빠르게 흘러간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포르노 영상 조각이 보인다. 성스러움을 바탕으로 현실의 적나라한 모습을 가장 극렬히 보여준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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