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5,2018

영상편집 기술로 소설을 읽다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 ‘관계의 영역’전(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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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교류재단(KF, Korea Foundation)에서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 ‘관계의 영역’전(展)이 2월 26일까지 열리고 있다. 이탈리아 출신의 영 아티스트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는 ‘관계’라는 주제를 중심으로 공동체의 다양성을 다루고 있는 미디어 아티스트인데, 이번 전시회에서는 개인과 집단, 개인과 사회에서 일어나는 관계와 그 안에서 발생하는 작용, 정체성의 발현 등을 다루고 있다. 총 14점의 영상 작품을 선보이는 이번 전시회의 특징은  문학적 현란한 묘사 기법들을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소설에서 볼 수 있는 묘사력을 영상을 통해 구현하고 있는 셈이다.

주제를 극대화한 작업

전시실에 들어서면 반대편 벽면에 놓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네오사인이 눈에 강렬하게 들어온다. 작가가 한국에서 처음 사찰을 접하고 한 명의 스님을 만나면서 얻은 느낌을 그 스님의 글씨를 본 떠 만들었다. 이번 전시회의 주제와도 일맥상통하는 이 작품은 관객들에게 주제를 인식시킨 후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가이드를 제시하고 있다. 이 전시회의 시작을 알리는 알림이자 마지막 도착을 암시하는 글귀이기도 하다.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 ‘관계의 영역’전(展)이 2월 26일까지 열리고 있다. ⓒ 한국국제교류재단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 ‘관계의 영역’전(展)이 2월 26일까지 열리고 있다. ⓒ 한국국제교류재단

 

그 다음 관객들이 첫 번째로 마주하는 작품은 ‘더 리버스 그랜드 투어(The Reverse Grand Tour)’이다. ’그랜드 투어‘란 7-18세기에 영국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 유행했던 유럽여행이다. 문화 선진국을 체험하자라는 취지에서 이루어진 여행으로 특히 르네상스가 꽃피우던 이탈리아를 보고 오는 것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데, 이 작품은 영국 상류층 자제들의 문화적 교류를 현대적 맥락에서 재해석 하고 있다. 과거 로마로 향했던 것을  역으로 취해 만들어진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우선 이 작품은 거꾸로 이탈리아 작가인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가 로마에 위치한 외국계 레지던시 작가들을 인터뷰해서 재구성했다. 작가는 예술가들에게 ‘예술과 사회에 대한 관계’를 묻는데 의도적으로 작가 자신의 질문 부분을 편집해 버렸다. 그래서 화면에서 나오는 그들의 말들이 마치 그룹토론을 하며 소통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문학에서 독자와 소통하듯 그렇게 말이다.

연인과의 관계를 담은 ‘러버즈 디스코스(Lover’s SDiscourse) 영상도 있다. 사랑에 관한 대화가 마치 연애소설 읽는 듯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번 작품은 자신의 정체성을 구축하는 동시에 공동체에 관한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타인’과의 교류 및 상호성의 중요성에 관해 얘기를 하고 있다. 특징이라면 그 대상이 연인이라는 점이다. 우선 작가는 이 작품을 하기 위해 ‘커플’을 구한다는 전단지를 붙였다. 그리고 작가를 찾아온 커플들을 1년간 교류를 하고 나서 이 작품을 만들었다. 이 영상 역시 인터뷰 형식이다. 눈여겨 볼만한 부분은 이 사람들의 프로필이 전혀 공개되고 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심지어 누가 누구의 연인인지도 모른다. 작품의 주제를 극대화하기 위한 것으로 작품 속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의 사랑에 대해서만 이야기한다. 소설에서 주제 극대화를 위해 주인공에 이름 대신 ‘K’나 ’Y’ 등 이니셜로 부여하는 것과도 닮았다.

현란하고 치밀한 소설적 묘사, 영상으로 구현

‘니엔도르프(Niendorf)’에서는 드라마틱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는 두 개의 영상 작품이다. ‘니엔도르프’는 베를린 어느 창고에 버려진 독일 피아노이다. 1920년대 만들어진 이 피아노는 발견당시 파손되고 조율되지 않은 채 먼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왼쪽 영상에서는 색이 약간 바랜 피아노 건반색,  손톱이 깨진 듯 약간씩 깨진 하얀 건반, 조율되지 않은 피아노 선들의 움직임을 담고 있다. 피아노에 줌인 된 영상들이 디졸브 기법으로 넘어가면서 ‘니엔도르프’의 가치를 극대화 시키는 것은 물론 몽환적이면서 신비로운 느낌도 전달한다. 그런데 이런 영상 기법들이 현란한 문학적 묘사와도 닮아서 영상으로 문학적 표현들을 읽는 듯하다. 오른쪽에는 영국 작곡가 마이클 니만이 흑백 초상이다. ‘니엔도르프’가 대중 앞에서 단 한 번 연주되던 순간 그 피아노 건반을 치는 예술가의 소회를 담아내고 있는 영상으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음악가의 시각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비즈악(Bisiac)’은 순수하면서 맑은 영상이다. 그런데 슬픔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마치 우리나라 단편 소설인 황순원의 ‘소나기’를 연상시킨다. 다섯 살배기 두 어린 아이들이 강가에서 물 속 돌멩이를 갖고 노는 영상이지만 묘하게도 다양한 감정들이 중첩된다. 덧없이 흐르는 강물과 뭉게구름이 ‘줌인’과 ‘줌아웃’ 되면서 그런 아련함이 배가 되도록 하고 있다. 이탈리아 방언으로 망명자, 도망자라는 뜻을 가진 비즈악은 이탈리아 북동부 국경지역으로 현대화되지 않은 곳인데, 여러 문화들이 섞이면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가 형성된 지역이다. 옛 것과 관계에 대한 작가의 물음이 담긴 작품으로 문학에서 풍경과 일상의 객관적 묘사를 통해 작품의 주제를 전달하는 기법과도 흡사해 보인다.

성장소설을 담은 작품도 있다. ‘더 센티멘탈 글랜드(The Sentimental Glance)’가 그것이다. 총 7개 비디오들과 필름들로 구성된 설치미술이다. 화면이 한 벽면에 연속적으로 붙여져 영상들이 나오는데, 모두 여성이다. 소녀였던 여성이 설렘과 호기심이 보인다. 화장을 지우는 모습에서는 성년의 여성으로서의 발랄함이 느껴진다. 창문을 통해 도시를 바라보는 여성에서는 외로움과 고독이 엿보이고 뱃 속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는 모습에서는 모성성이 전달된다. 그러나 붉은 블라우스와 립스틱을 바르고 격렬하지 않은 음악에 절규하듯 노래를 부른 여성에게서는 열정과 더불어 회한이 보이고 끝없이 어딘가로 향하는 모습에서는 목적지를 잃어 방황하는 우리네를 느끼게 한다. 발레리오 로코 오를란도는 이 작품을 통해  여러 가지 감정을 묘사하며 ’감정이란 무엇인가‘를 무엇인지를 소개하면서도 또한 관람객들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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