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ch 24,2019

시와 과학은 연관성 높아

'과학실에서 읽은 시' 펴낸 하상만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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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꽃다발을 들고 한 여자 앞에 서 있다. 간절한 기원을 담아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한다.

“이 광활한 우주, 그리고 드넓은 지구에서, 그것도 한국이라는 땅 서울에서 수많은 사람 중에 당신을 만나 사랑하게 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닙니다. 우리 서로 사랑하면 안 될까요?”

닭살 돋는 사랑의 고백. 가끔 드라마에서조차 인용될 정도로 유명한 말이다. 그런데 이 언어가 시인이나 소설가 등 문학가가 아닌 과학자가 한 말이라면? 그렇다. 미국의 천문학자였던 칼 세이건에게서 이 말은 시작됐다.

시와 과학, 참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분야. 문학 장르 중에서도 시는 가장 과학과 극단의 대척점에 있어 보인다.

하지만 시인이자 청명고등학교 문학 선생인 하상만 씨는 “극과 극은 통한다는 말이 있듯이, 기름과 물같이 보이는 두 분야가 의외로 공통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한 뿌리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며 “시인들이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를 과학도서라기보다는 시집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시인과 과학자는 공통점 많아

▲ 하상만 씨는 “시인과 과학자는 발견을 통해 세상의 안목을 넓혀주고 키워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의 공통점을 언급했다. ⓒiini0318

그렇다면 어떤 점이 시인과 과학자를 하나로 엮는 것일까. 하상만 선생은 “시인과 과학자는 발견을 통해 세상의 안목을 넓혀주고 키워주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이라며 그들의 공통점을 언급했다.

갈릴레오는 목성의 위성들이 목성을 중심으로 도는 것을 보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은 아닐 것이라고 여겼다. 지구중심설을 흔들며 우주에 대한 안목을 변화시켰다. 시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예를 들어 시인들은 얼음을 옷이나 이불로 비유한다. 보통 상식으로는 생명체를 따뜻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이다.

그러나 물이 얼음이 되면 수면 위로 떠오른다. 만약 가라앉는다면 물의 온도를 낮추기 때문에 그 물속에 사는 생명체들을 죽게 만든다. 결국 얼음은 한겨울, 물속 생명체들의 이불이자 옷인 셈이다. 꽝꽝 얼수록 더 두꺼운 이불이자 코트가 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시인은 보통 사람들의 얼음에 대한 시각을 ‘시’를 통해 유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시인은 과학적 지식 없이 단순한 관찰과 직관으로 시를 썼다. 그런데 과학적으로도 이 표현은 틀리지 않았다. 물은 4℃가 되면 다른 어떤 온도의 물보다도 무거워지는 성질이 있기 때문에 강이나 호수의 표면이 이보다 차가워지면 그 물은 아래쪽으로 가라앉는다.

그래서 4℃ 이하의 물은 위로 올라온다. 물이 표면부터 어는 이유이다. 얼음이 열을 잘 전달하지 못하는 성질도 강이나 호수의 바닥이 4℃ 이하로는 내려가지 않도록 하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물고기가 한겨울에 전멸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라고 할 수 있다.
 
과학자와 시인의 또 다른 공통점으로는 상상력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과학자들은 가설을 상상에 의존해서 세운다. 그리고 증명은 바로 이 상상을 과학화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과학적 사실에 상징을 더하면 시가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보면 태양이 지구를 잡아당기기 때문에 지구는 공전한다. 그런데 태양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될까. 바로 우주 어딘가로 날아갈 거라고 생각하지만 17분간 그대로 공전궤도를 유지하다 이후 사라진다.

이 과학적 내용에 상징을 부여해볼 수 있다.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들어 생각해보면 이 과학적 내용이 한 편의 시가 된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자식들은 그 순간 부모를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다. 살다가 생각이 자주 난다. 이는 부모라는 태양을 지구라는 자식들이 공전하면서 살기 때문이다.

하 선생은 “과학자들은 스스로 시를 쓰고 있지만. 아쉽게도 본인들만 모르고 있다”며 “과학 연구논문이나 과학자들이 쓴 책의 한 부분을 떼어내어 행갈이를 하면 시가 된다”고 언급했다.

아인슈타인이 “과학자들은 사실을 많이 아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상상력이 더 중요하다”라는 말을 했던 것도 바로 이런 부분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재미’있어야 과학과 시가 사랑에 빠질 수 있어

▲ ‘과학실에서 읽은 시’라는 책에는 40여 편이 시에 과학적 내용들이 연결되어 있다. ⓒiini0318

그런데 하 선생은 어떻게 시와 과학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갖게 된 것일까. 사실 진정일 교수가 과학자 입장에서 시를 풀어보긴 했지만(‘詩에게 과학을 묻다’) 본격적으로 시를 과학으로 접근한 시도는 아직까지 그 예가 없었다. 하 선생은 “특별히 기획했기보다는 많은 분량의 과학 책을 읽으면서 그 안에서 시를 느낄 수 있었고, 반대로 시집 안에서 과학적 사실이 저절로 연상됐다”고 말했다.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읽으면서 ‘왜 시인은 별을 다 헤아리지 못할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시인은 ‘청춘이 남았고, 밤이 남았고, 내일이 남아서’라고 하지만 과연 ‘청춘이 끝날 때까지 세면 모두 다 셀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우주의 별을 1초에 하나씩 센다고 해도 천년이 걸린다고 하더라고요. 암울한 시기 그는 불가능한 꿈을 꾸고 있었던 셈이죠.”

이렇게 오랜 기간 다독을 통해 생각들을 정리한 것이 지난 5월에 출판된 ‘과학실에서 읽은 시’라는 책이다. 이 저서에는 40여 편의 시와 과학적 내용들이 연결되어 있다.

“문학을 분석할 때, 대부분 철학이나 비평이론을 가지고 하죠. 저는 과학을 가지고 시를 감상한 것뿐이에요. 눈을 마주쳐야 친해지는 것처럼 책 속에 많은 시를 수록하려고 했습니다. 그중 재미있고 공감하는 부분이 하나라도 있다면 시선이 머무를 것이고 그러다보면 흥미가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과학 혹은 시와 사랑에 빠질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재미’라고 강조하는 하 선생. 그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느낀 재미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며 “그러기 위해서 시와 과학을 연결하는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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