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0,2019

태블릿 PC, 이제 감아서 휴대한다?

[인터뷰] 기계연 김재현 나노역학연구실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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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영화를 보면 주인공들이 익숙하게 손목시계에서 투명 디스플레이를 뽑아내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신문처럼 돌돌 말려있는 PC를 자유자재로 펴고 감으며 하루 일과를 정리하고 계획하는 장면도 많은 영화에서 보여진 바 있다.

그 동안 수많은 영화감독에 의해 상상된 ‘감을 수 있는 태블릿 PC’가 코 앞의 현실로 다가왔다. 국내 연구진에 의해 휘었다 감았다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유연한 태블릿 PC에 적용될 수 있는 생산 기술이 개발된 것이다. 한국기계연구원 나노역학연구실의 김재현 박사팀은 ‘고성능 유연 전자소자 연속 생산기술’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김 박사팀이 개발한 기술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flexible display)에 사용되는 핵심부품인 휘어지는 전자소자를 양산하는 기술로서, 연구팀은 실리콘 기판 위에 형성된 딱딱한 반도체 소자를 유연성이 뛰어난 폴리머 기판 위에 전사(轉寫)해 고성능의 유연 전자소자를 만들었다.

유연 전자소자 대량생산 가능

개발된 기술의 핵심은 롤 스탬프 설계 기술과 박막-롤러 사이의 하중제어 기술을 이용해 무기물 반도체 소자를 빠른 속도로 대면적 유연기판에 전사함으로써 유연 전자소자를 대량생산 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이다. 기존에는 평면형 스탬프를 이용했기 때문에 대량생산은 다소 어려웠지만, 롤 스탬프를 이용함으로써 대면적으로 연속적으로 전사하여 대량 생산이 가능하게 되었다. 이는 작은 면적을 도장으로 여러 번 찍어내는 것과 넓은 면적을 롤 형태로 한 번에 찍어 내는 것 사이의 생산성 차이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 김재현 기계연 나노역학연구실 박사 ⓒ기계연


김 박사는 “기존에는 평면형 스탬프를 이용해 무기물 반도체 소자를 전사하는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평면형 스탬프로는 대면적의 소자를 제조하기 어렵다. 이번 롤 스탬프와 하중제어를 이용한 전사기술에서는 대면적의 소자를 연속적으로 제조함으로써 고성능 유연전자소자를 대량생산할 수 있는 핵심 기술을 확보한 것에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롤 스탬프 기반 전사 기술은 두께 0.05~10 마이크론 두께의 반도체 박막을 ‘반데르발스 힘’을 이용해 롤 스탬프 위에 부착시키고, 이것을 다시 유연 모재 위에 옮기는 기술이다. 여기서 반데르발스 힘이란 나노스케일에서 작용하는 전자기적 힘의 일종으로, 서로 다른 두 개의 표면이 나노스케일의 간극으로 근접하는 경우에 발생하는 인력을 의미한다.

현재 4인치 영역의 100nm와 200nm의 단결정 실리콘 박막을 분당 1m의 속도로 유연 모재 위로 전사하는 것이 가능하며, 기술의 양산성을 가늠할 수 있는 공정의 수율은 전사 공정 변수 제어를 통해 100%에 가깝도록 구현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박막과 롤러 사이의 하중은 어떤 원리로 제어하는 것일까. 김 박사는 “무기물 반도체 소자는 두께가 매우 얇고 파손 변형률이 작기 때문에 대면적으로 유연기판에 전사하는 과정 중 심하게 파손될 수 있다. 무기물 반도체 박막이 파손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파손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운을 땠다. 나노박막이 전사공정 중에 파손되는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것은 이번 기술을 개발하면서 난관에 부딪힌 부분이기도 했다.

그는 “본 기술개발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박막에 가해지는 하중 또는 변형률을 일정 크기 이하로 제어하는 것과 하중의 균일성을 유지하는 기술, 더불어 롤러에 발생하는 변형률을 최소화하는 기술 등이 요구 됐다”고 설명했다.

연필 지름 수준으로 감을 수 있어

본 기술은 기존의 유기물 소자보다 전하이동도가 최소 열 배에서 최대 백 배 이상 빠른 무기물의 반도체 소자를 이용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김재현 박사는 “기존의 유연 전자소자를 만드는 기술의 경우, 잉크를 이용한 롤 프린팅이나 잉크젯 프링팅 기술을 이용하기 때문에 여기서 사용되는 유기물 반도체는 전기적 특성이 매우 낮아 고성능의 유연 전자소자를 만들 수 없었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기존 유기물을 활용한 유연 전자소자는 전하이동도가 낮아 전자책(e-book)이나 일회용 RFID(무선인식) 등 저성능의 소자 구현에 적합했다.

▲ 김재현 박사가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기계연


“기존의 경우 저성능 유연전자소자나 한 번 쓰고 버리는 저가의 전자소자 제작에 적용이 가능했다. 참고로 소재의 전기적인 특성을 나타내는 전하이동도는 유기물 반도체가 가장 낮고 그 다음 산화물 반도체, 단결정 실리콘, 그래핀 등의 순으로 큰 값을 가지게 되는데, 전하이동도가 클수록 동영상 구동과 고속데이터 처리 등 고성능 구현이 가능해진다.”

개발된 기술은 기존의 것보다 기능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렸다. HD급의 동영상 구동이 가능할 뿐 아니라 고속의 데이터도 처리할 수 있어 실생활에서 사용될 수 있는 현실성을 높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해당 디스플레이는 과연 얼마나 유연할까. 김 박사에 의하면 본 기술을 이용할 경우 대략 연필 지름 수준으로 디스플레이를 감을 수 있다. “유연성은, 디스플레이를 구성하는 각각의 소재의 종류와 두께, 제조공정에 따라 매우 다를 수 있으므로 정량적으로 이야기하기 어렵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연필 정도의 지름 수준까지 감는 것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김 박사는 언급했다.

그는 “기존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서 생산된 무기물 기반 전자 소자들은 특성과 신뢰성이 유기물 소재보다 우수하지만 쉽게 부러져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반면 이번에 개발된 롤 스탬프 전사 기술을 이용할 경우 무기물 기반 전자 소자들을 매우 얇은 박막 형태로 분리해 폴리머 기판 등의 유연 재료 위에 대면적으로 연속 전사할 수 있어 유연성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김 박사팀의 기술이 무엇보다 두각을 나타내는 것은 이를 생산하기 위한 인프라를 새로 구축할 필요가 없다는 점 때문이다. 국내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 인프라를 그대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초기 투자비용을 획기적으로 절감할 수 있다.

앞으로 본 기술이 상용화 되면 그 사용처는 매우 다양할 것으로 예상된다. 휘어지는 고집적 실리콘 메모리와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패널, 더 나아가 휘어지는 CPU와 배터리 등을 대량생산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는 게 김 박사의 설명이었다.

그는 “PC를 구성하는 다양한 부품들이 휘어질 수 있다면 휘어지거나 감을 수 있는 태블릿 PC의 생산도 가능할 것이다. 현재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제조하려는 기업들은 유연기판 위에 직접 진공 증착하는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고, 이에는 몇 가지 기술적 난제가 있는 상태다. 이번에 개발된 기술은 진공증착에 의존하지 않으므로, 기존 기술과 좋은 경쟁관계에 있으며 이러한 경쟁관계를 통해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나 유연한 태블릿 PC의 양산이 2~3년은 가속화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개발된 생산 기술은, 고속 데이터 처리가 가능하고 연필 두께에 감을 수 있을 정도로 유연한 차세대 유연 전자 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데 필수적인 공정과 장비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한편 고성능 유연 전자시장은 현재 실리콘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산업에 이은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주목받는 분야로 오는 2021년 442억달러 규모로 성장, 지금의 메모리 반도체 세계 시장과 비견될 정도로 큰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현재 본 기술은 롤 스탬프 기반의 연속 전사 장비기술과 관련된 15개의 특허가 국내외에 출원 또는 등록된 상태에 있으며, 일부 특허는 기업에 이전돼 양산용 장비의 상용화가 진행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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