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NASA도 미터법을 사용한다

권영일의 사이언스 프리즘

모처럼 호쾌한 드라이버 티샷으로 경쾌한 소리를 내며 날아간 백구가 필드 한가운데 떨어졌다.



“핀까지 남은 거리가 얼마나 되죠?”

“150야드 정도 남았어요. 어떤 채를 드릴까요?”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약 135m. 필자는 보통 130m 거리엔 7번 채, 140m면 6번 채를 잡는다. 따라서 7번 채로 재대로 맞으면 남은 거리는 5m에 불과해 퍼트 두 번으로 끝낼 수 있다. 잘하면 버디까지 노릴 수 있다. 하지만 거리가 모자랄 때는 힘이 들어가 뒤땅을 치거나 토핑이 나는 수가 많다. 6번 채를 잡고 풀 샷을 하면 남은 거리는 역시 5m. 길게 칠 때는 항상 그린을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힘을 빼고 치자니 오히려 정확도가 떨어진다.



이래저래 고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필자는 아예 일률적으로 야드에서 10을 뺀 숫자를 미터로 계산한다. 예를 들어 100야드면 90m, 150야드면 140m… 야드와 미터법의 거리 계산에서 오는 작은 혼선이라고 할 수 있다.



골프장에선 대부분 거리를 야드로 환산한다. 표시목도 야드로 되어 있다. 골퍼들도 대부분 야드에 익숙하다. 하지만 필자는 무슨 까닭인지 처음부터 미터로 거리를 환산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야드식 거리계산은 감이 오지 않는다. 초보시절에는 미터나 야드나 크게 중요하지 않았으나 구력이 붙어갈수록 미터와 야드의 차는 크게 느낀다. 특히 그린 주변에 장애물이나 벙커가 있을 때는 더욱 그렇다.



도량형은 경제 언어

경제활동에서 언어에 해당하는 것이 표준 단위다. 진시황이 중국 통일 후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이 도량형 제도 정비였다. 당초 길이의 모든 측정 단위는 신체와 관련이 있다. 측량기사나 농부들이 땅을 잴 때 주로 이용하던 보폭은 약 90cm에 해당한다. 걸음걸이를 각자의 표준 보폭에 맞춤으로서 어느 정도 정확하게 거리를 잴 수 있었다. 한 길은 몸을 이용한 또 하나의 길이 단위다. 양팔을 좌우로 쭉 폈을 때 한쪽 팔의 가운데 손가락에서 다른 팔의 가운데 손가락까지의 길이를 뜻한다.



그렇지만 측정 단위는 지역별로 다르게 발전했다. 동양은 척관법이, 미국이나 영국은 야드·파운드법이 발전했다. 한국과 중국, 일본에서 척관법의 기본 개념은 같지만 단위의 크기는 달랐다. 야드·파운드법의 단위도 영국과 미국이 서로 다르다.



이런 가운데 산업혁명 이후 국가 간 거래가 활발해지면서 유럽을 중심으로 거래 단위의 통일이 필요해졌다. 영국에서 프랑스에 공산품을 수출하려면 미터법으로 표시하고, 프랑스에서 영국으로 포도주를 팔려면 야드·파운드 단위로 바꿔야 했다. 이러한 불편을 해소하기 위해 1875년 17개국이 모여 미터협약을 체결했다. 우리나라는 1959년 미터협약에 가입하고 1961년 미터법을 법정단위로 정했다.



단위 혼란은 소비자에게 피해

우리가 길이나 무게에 대해 얘기할 때 1.5m 또는 500g에 대한 감을 느낀다. 아파트 25.7평이라고 하면 크기를 짐작하지만 85m²라고 하면 크기를 정확히 인식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평수를 기본으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등기부를 보면 평이라는 단위는 보이지 않는다. 아파트 면적을 구하기 위한 가로와 세로 길이를 미터법으로 측정한 후 평으로 환산하는 것이다.



게다가 평, 근 등 비(非)법정단위는 같은 단위가 대상에 따라 크기가 달라 혼란을 야기한다. 한 평의 넓이가 땅은 3.3m²이고, 유리는 0.09m²이다. 1근의 무게도 육류는 600g, 채소와 과일은 400g이다. 인삼 1근은 300g에서 600g까지 다양하다. 음식점에서 고기 1인분은 100∼300g. 집마다, 또 고기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음식점에서 가족 수대로 고기를 주문했다가 1인분이 다른 집의 2인분에 해당할 정도로 많아 절반 이상 남긴 적이 있다. 단위의 혼란은 대부분의 경우 소비자에게 피해를 준다.



이 같은 불편을 해소하고자 표준화한 측정단위가 미터법이다. 미터법의 기본인 1m는 적도에서 파리를 거쳐 북극까지의 거리를 100만으로 나눈 값이다. 현재 공식적으로 인정돼 사용되는 1미터는 1983년 국제도량형위원회에서 ‘진공 중에 빛이 2억9979만2458분의 1초 동안 진행하는 거리를 1m’로 정했다. 거꾸로 말하면 진공 중에서 빛은 1초에 2억9979만2458m를 간다는 말이다.



정부는 오는 7월부터 비법정단위 사용을 단속한다. 앞으로는 비법정 단위를 사용한 광고도 하지 못한다. 다시 말해 인치(inch), 평, 근 같은 단위들은 사용할 수 없다. 정부는 상거래를 포함한 경제생활에서 정확성과 공정성을 법적으로 확보할 책임이 있다. 물론 법정단위를 사용함에 따른 국민 불편은 따를 것이다.



오랜 세월 동안 전통적으로 통용해 온 관습을 느닷없이 바꾸면 우리의 일상생활에 불편과 혼란이 일어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또 기업들은 이런 단위를 바꾸면서 들어가는 제품의 생산비용도 크게 늘어날 것이다. TV의 경우 크기를 인치로 표시하고 있는데 대리점에서 ㎝로 말한다면 얼마나 혼동이 올까.



에어컨도 앞으로는 무조건 냉방 능력을 와트(W)나 킬로와트(㎾)로 한다는데 당장 이해하기 어려울 듯하다. 지금은 ‘34평형 에어컨’이라고 하면 ‘34평형 아파트에 적당한 성능을 가졌구나’라고 바로 이해하지만 W나 ㎾를 쓴다면 쉽게 와 닿을 것 같지 않다.



아파트 분양공고도 워낙 평형에 익숙해 있어서 ㎡단위만 쓸 경우 더 혼란스럽고 시세 정보를 이해하는 데도 힘들 것이다. 현재 자신이 살고 있는 집의 단위를 ㎡로 알고 있는 사람이 과연 몇 사람이나 될까?



그럼에도 국제화 시대를 맞아 도량형을 통일할 필요가 있다. 규격화하면 할수록 그만큼 국제경쟁력이 높아진다. 오늘날 대부분의 나라들이 미터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NASA, 드디어 미터법 쓰기로


고집이 세기로 유명한(?) 미국항공우주국(NASA)도 앞으로 실시할 달 유인 탐사 계획에서 미터법을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NASA는 최근 모든 달 표면 탐사작업에서 종전의 마일, 야드, 파운드 대신 킬로미터와 미터, 킬로그램 등 국제 표준단위를 사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NASA 탐사시스템 이사회의 전략개발 책임자 제프 볼로신은 NASA와 전 세계 13개 우주기구들의 협의 끝에 이런 결정이 내려졌으며 “국제 우주기구 대표들로부터 환영을 받았다”고 전했다.



NASA의 미터법 사용 결정에 따라 달 탐사 계획과 관련한 모든 부품과 장비들은 미터 단위로 규격화한다. 따라서 미국이 만든 우주인 거주지에서 공기가 샐 경우 러시아제 스패너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NASA는 1990년께부터 형식적으로 미터법을 사용해 왔지만 일부 사업에서는 아직도 영국식 구형 도량형이 사용되고 있다. 두 단위를 모두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국제우주정거장(ISS)이 좋은 예다.



그러나 지난 1999년 1억2천500만 달러가 투입된 NASA의 무인 화성기후궤도탐사선(MCO)이 화성에 도착한 직후 폭발해 버린 원인이 어이없게도 두 단위의 혼선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후 이 문제는 심각한 검토 대상이 됐다.



당시 사고는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사가 탐사선의 제원을 야드 단위로 작성했으나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 조종팀이 이를 미터법으로 착각, 탐사선을 훨씬 낮은 궤도에 진입시켰다. 그 결과 대기권과의 마찰을 견디지 못한 탐사선이 폭발한 것이다.



단위는 크기와 양에 대한 의사소통 도구이다. 따라서 서로 크기를 인식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위로 얘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일반 사람들이 공감한다면 금상첨화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계속 사용하다보면 금방 익숙해질 것이다. 나아가 간단하고 일관성 있는 단위 사용이 더 편리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법정단위 사용이 우리 사회의 국제화를 좀 더 가속화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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