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1,2019

80년대 이후 일본의 퇴행

대재앙 이후 이야기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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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부터 일본의 대재앙 이후 소설 및 여기서 파생된 여타 미디어 컨텐츠 중 상당수는 현실과의 접점을 점차 멀리 하며 아예 허구의 시공간으로 진입하는 현실도피 성향을 띠게 된다. 역설적이지만 이러한 퇴행적 정서를 담은 작품들은 상업적으로 연이어 성공을 거두었다. 그 결과 이러한 코드들을 의도적으로 답습하는 플롯이 유행하게 되었으니, 이들을 이른바 세카이계(セカイ系)라 지칭한다.

이러한 패턴을 따르는 작품들은 하나같이 역사와 정치사회적 맥락을 도외시한 채 붕괴하는 세상의 혼돈 속에서 한 소년과 한 소녀의 비현실적인 러브스토리를 최음제처럼 뿌려대느라 정신이 없다. 남녀 주인공 캐릭터는 지극히 천편일률적이다. 여주인공은 세상을 좌지우지할 권능을 지녔거나 최소한 강력하게 저항할 강인한 의지를 품고 있는 반면 남자 주인공은 어찌나 나약하고 무기력한 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도 때도 없이 무조건 여주인공에게 기대는 뻔뻔함뿐이다.

이보다 더욱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여주인공이 자생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울보 소년에게 때로는 다정다감한 여자친구처럼, 때로는 헌신적인 엄마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고 내어준다는 비현실적인 설정이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궁합은 대재앙 이후 이야기의 일본 독자층 연령을 대폭 낮추는 결과를 낳았다. 다시 말해 세카이계 작품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십대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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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SF에서 현실도피적인 성향의 세카이계 작품들이 유행하는 기폭제가 된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일부러 스토리에 잔뜩 미스터리를 넣어 놓고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어 컬트팬들을 양산했다. 원래는 TV애니메이션으로 시작했으나 여러 편의 극장판이 계속 제작되고 있다. (그림: ガイナックス)

■ 1980년대 이후 일본에서의 대재앙 이후 이야기의 향방: 퇴행적 세카이계(セカイ系)를 지향할 것인가, 아니면 삶의 질곡을 정면으로 파고들 것인가?

특히 이러한 플롯에 따라 전개되는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널리 유행하게 된 기폭제가 컬트열풍을 일으킬 만치 상업적 인기를 누린 애니메이션 <신세기 에반게리온 新世紀エヴァンゲリオン; 1995~2012년>라는 점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평론가들과 독자들 사이에 이론이 없다. 묵시론적인 인류 종말의 위기를 14세 소년의 내면과 이어놓은 이 작품에서 소년 이카리 신지는 지금 자신이 누구를 상대로 싸우는지, 네르프 방어기지 안에서 대체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더 정확히 말해 그런 고민을 할 마음의 준비조차 되어 있지 않다. 객관화된 타자(他者)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적(사도)들이 공격해오는 이유는 고사하고 소년이 본의 아니게 속하게 된 폐쇄적인 비밀조직의 실상 또한 안개에 싸여 있다. 여주인공과의 관계에서도 소년은 변변한 소통은커녕 자신을 가리기에 바쁘다. 그는 적절한 대인관계를 맺지 못하고 영원한 겉도는 청소년으로 남을 운명이다.

그나마 <에반게리온>은 남자주인공이 여주인공에게 거부당하는 절망적이되 현실적인 결말을 그렸지만 세카이계 작품들은 ‘묻지 마 식’으로 집요하리만치 남녀 주인공의 찰떡궁합에 집착한다. 후자에서 이러한 무제한적 로맨스가 가능한 까닭은 무엇보다 여주인공이 여자친구와 엄마라는 복합적이고 혼란스런 역할을 둘 다 완벽하게 소화해내기 때문이다. 세카이계 내러티브에서 진짜 심각하게 상대해야 할 위기나 상대는 좀처럼 구체화되지 않으며 오직 칠칠맞은 소년을 시종일관 싸고도는 여주인공의 절절한 사랑만 압도적으로 부각될 따름이다.

신카이 마코토(新海誠)의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 ほしのこえ; 2002년>, 다카하시 신(高橋しん)의 만화 <최종병기 그녀 最終兵器彼女; 2000~2001년>, 아키야마 미즈히토(秋山瑞人)의 소설 <이리야의 하늘, UFO의 여름 イリヤの空、UFOの夏; 2001~2003년> 등이 전형적인 예들로 거론된다. 주인공들과 현실 사이를 다리 놓아줄 중간계(현실사회)의 빈약함은 <에반게리온>에서도 문제로 지적되지만 세카이계 작품군에 이르면 실로 더 심각한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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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가 연출, 작화를 맡은 애니메이션 <별의 목소리 ほしのこえ; 2002년>은 외계인과의 전쟁으로 생이별한 하이틴 남녀의 시공을 넘나드는 애틋한 러브스토리다. 중고생 감수성에 맞춘 이 작품에서 지구에 남은 남자가 성인이 되어 자위대 장교가 되는 사이 백조자리까지 날아가 외계인의 본거지와 맞붙는 여주인공은 광속여행에 따른 시간팽창효과 때문에 여전히 중학교를 갓 졸업한 청소년이다. 여중생의 남자친구에 대한 감정은 마치 엊그제 같은데 성인이 된 남자친구의 머리 속에 여중생은 그저 사춘기 기억의 한 편린에 불과할 뿐이라는 대비가 감수성이 예민한 관객의 가슴을 저민다. 여기서 외계종족과의 인류의 명운을 건 대전쟁은 어디까지나 이 여중생의 러브스토리를 위한 모호하고 윤곽이 잘 잡히지 않는 배경 역할을 할 뿐이다. (copyright: 新海誠)

후자에서는 사회공동체에 관한 언급이나 묘사가 거의 없으며 작품을 관통하는 묵시록적 재앙의 원인을 설명해줄 국제기구나 국가 내지 이러한 기구의 대표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한 마디로 세카이계 계열의 대재앙 러브스토리는 타자와의 현실적인 관계 설정 없이 홀로 감정적 마스터베이션에 만족하려는 성향이 짙어 인간과 사회 그리고 양자 간의 관계에 관한 성숙된 비전을 보여주지 못한다. 하지만 이러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카이계 컨텐츠는 라이트 노벨과 애니메이션, 만화 그리고 비디오게임 등으로 확대 재생산되며 2000년대 일본 하위문화에서 상업적으로 전도유망한 하위 장르 가운데 하나로 떠올랐다.

흥행성공과는 별개로 세카이계 세계관은 실질적인 발전이나 내적 성숙 없이 사춘기에 영원히 갇힌 소외된 자아의 나르시시즘을 반복한다는 점에서 일본대중문화의 미래에 그리 달가운 현상이라 보기 어렵다. 더구나 일본문화의 이러한 조류는 일본 밖에서는 더욱 혹독한 비판에 처할 소지가 다분하다. 역사와 현실에 대한 (무관심을 가장한) 외면은 패전을 빠른 시일 내 극복하고 21세기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일본의 과거사 부정과 관련이 없지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현실계에서 이탈한 환상적 시공간에 안주하며 이기적인 신화를 새로 쓰려는 세카이계 작품들의 정서는 아무리 그럴듯한 세기말의 분위기를 연출한들 일본 정부와 지배엘리트의 과거 책임을 방기하는 몰역사적 태도와 따로 떼어놓고 생각하기 어렵다. 일본의 기성세대가 젊은 세대들이 자국의 과거 허물에 아예 관심을 갖지 않길 바라는 가운데, 일본 청소년들은 세카이계에 열광하며 둥둥 떠다니고 있으니 말이다. 다시 말해 현재의 기득권은 한껏 누리되 과거에 저지른 책임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는 일본정계와 이를 묵인하는 일본국민들의 자세는 세카이계 작품들의 소년 주인공이 벌이는 이기적인 애정행각과 하등 다를 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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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하시 신의 만화 <최종병기 그녀 最終兵器彼女>는 근미래에 지구촌에 불어닥친 세계대전쟁을 배경으로 징집당한 여고생과 그녀를 지켜주기는커녕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오줌만 지리는 남자 주인공의 가슴이 미어지는 순애보다. 여기서 여고생 치에는 웬만한 전차군단이나 폭격편대보다도 더 가공할 위력을 지닌 사이보그 전쟁병기로 개조된다. 그 결과 그녀의 뇌조차 자꾸 전자두뇌 데이터베이스로 대체되어 가면서 서서히 인간으로서의 기억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치에가 남자친구의 사랑을 기억하기 위해, 그래야만 자신이 세상에서 의미있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위해 그나마 남은 기억마저 까먹지 않으려 끊임없이 속으로 되뇌는 장면은 눈물없이는 볼 수 없다. 지구 전체가 초토화되는 운명의 마지막날에도 그녀는 우주를 나는 비행선으로 변신하여 남자친구를 구한다. (copyright: 高橋しん)

비록 수적으로 세를 형성하지는 못하고 있지만 미야자키 하야오와 오토모 가츠히로의 맥을 이어 부조리한 현실과 치열하게 변증법적 격돌을 벌이는 작품들이 21세기를 전후한 일본사회에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오시이 마모루(押井守)의 애니메이션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クロラ; 2008년>는 공중전에서 사망해도 또 다른 복제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죽을 수 없는, 늙지 않는 젊은 파일럿(이른바 ‘킬드런’)의 반복되는 삶을 통해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 질식하는 개인들을 그린다.

모든 전쟁이 종식되고 대신 기업이 스폰서로 나선 대리전쟁이 일종의 스포츠화 된 형태로 지속되는 근미래, 올림픽과 월드컵이 국가간 누적된 긴장을 풀어주는 역할을 하듯이 기업간 전쟁은 땅 위의 보통사람들과는 뚝 떨어진 하늘을 무대로 전투기 편대를 이뤄 벌어지는 일종의 대리보상이다. 다만 고난도의 공중전을 속행하자면 A급 파일럿이 필요한데 전사하면 대체할 인력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 문제다. 이 때문에 유전공학을 이용해 뛰어난 파일럿 요원의 클론을 다수 만들어 두었다가 필요할 때마다 깨워 총알받이로 내보낸다. 신판 가미가제라고나 할까.

본의 아니게 이 와중에 상처 입는 사람은 파일럿 자신이 아니라 공교롭게도 그를 사랑하게 된 비행장의 여성 관리자다. 공중에서 전사한 그를 잊기도 전에 똑같이 생긴 파일럿이 출두해 그녀에게 보고하는 삶이 연이어 반복되는 것이다.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입지 않으려 매번 새로 전입해오는 그에게 강한 거부반응을 보이고 영문을 모르는 복제 파일럿은 이를 이상히 여기다 마침내 그녀와의 오랜 사연을 깨달을 무렵 마찬가지로 전사한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복제가 그녀 앞에 당도한다. 시스템은 계속 돌아가고 개인은 계속 상처를 입는다.

이 연재를 통해 전에 언급했듯이, 대재앙을 전면에 내세운 일본의 묵시록 내러티브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비극 이후 국가 정체성의 단절과 위축을 투영해왔을 뿐 아니라 시대별 사회문화적 주요 변동에 발맞춰 변화를 거듭해왔다. 주로 성인남성들을 타겟으로 한 1980년대 이전의 대재앙 이야기들은 대재앙의 정신적 후유증이라 할 국가 정체성 위기를 회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전화(戰火)로부터 견실하게 경제를 복구하는데 성공한 일본 사회에서 작가들은 국가 정체성의 새로운 비전과 자국(自國)을 굽어 내려보는 미국과의 관계 재설정 같은 현실적인 문제들에 초점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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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시이 마모루(押井守)의 애니메이션 <스카이 크롤러 スカイ.クロラ; 2008년>는 모든 전쟁이 스포츠처럼 기업 간의 공중전으로 변질된 근미래에 사망해도 또 다른 복제가 그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에 진정한 의미에서 죽을 수 없는, 늙지 않는 젊은 파일럿(이른바 ‘킬드런’)의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을 통해 부조리한 시스템 속에 질식하는 개인들을 그린다. (copyright: プロデューサー / 奥田誠治・石川光久)

패전의 트라우마로부터 출구를 모색하던 당시의 대재앙 이야기들은 현재와 과거의 단절에 다리를 놓는 동시에 국가뿐 아니라 개인의 현대적 정체성을 수립하고자 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서구의 대재앙 이야기 또한 미래에 대한 피상적인 비전 뿐 아니라 작가가 발 딛고 있는 사회현실의 만화경을 입체적으로 제시함으로서 우리 자신과 사회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데 집필의도가 있었다. 예컨대 일반적으로 묵시록 소설이라 하면 다양한 동인으로 말미암은 사회불안과 혼란상 그리고 격변의 여파에서 우리가 공감할 수 있는 의미를 찾아내려 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1980년대부터 일본의 대재앙 이야기들 가운데 상당수는 우리 주변을 주의 깊게 성찰하는 대신 자기 자신의 주관적인 환상에 몰입하는 자아도취에 빠지고 말았다는 비판의 화살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2011년 발표한 박사논문에서 일본문학 학자 다나카 모토코는 세카이계 계열의 작품들이 만연하게 된 것은 일본사회에 내재된 한계에서 비롯되었다는 해석을 내놓아 눈길을 끈다.

비록 패전국이었으나 전후(戰後) 빠른 경제재건으로 번영을 구가한 1970~1980년대에 들어서도 일본에 대한 미국의 입김과 패전의 그림자는 여전히 짙게 남아 있었다. 일본이 세계경제의 2위 자리를 넘보는 외형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정작 국제정치 무대에서 독자적인 힘을 발휘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처지였던 것이다. 이 무렵의 일본 정부와 사회지도층은 일반대중에게 이러한 트라우마에 대해 납득할 수 있는 설명이나 낙관적인 미래 전망을 내놓지 못했다.

이처럼 우울하고 답답한 현실이야말로 일본에서 대재앙 이야기 혹은 묵시록 분위기의 작품들이 현실에서 허구의 시공간으로 일탈하도록 부채질하는 동인이 되었고 그 결과 이러한 컨텐츠를 향유하는 타겟층 역시 연령이 대폭 내려가 버리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는 것이다. 작가들은 살아남기 위해 시장에 남아 있거나 새로 유입된 어린 소년들을 상대로 그들의 소망을 대재앙을 배경으로 한 애틋한 (그러나 실은 일방적으로 한쪽이 받기만 하는) 러브스토리로 충족시켜주는 노하우를 점차 정교하게 다듬었다.

독자인 소년들 역시 자신들의 이상을 현실에 구현해보려는 희망을 포기한 채 그 대신 허구의 시공간에서 대리만족을 찾기 시작했다.1) 특히 세상의 종말이란, 위기감을 한층 불러일으키는 패러다임과의 직면은 소년들이 일상의 정체된 삶과 패전 이래 확고하게 회복되지 않은 국가의 위신으로부터 역사적 단절을 하게 도와주었다. 아무리 세카이계 이야기들이 허구의 세상을 무대로 비현실적인 해법에 의지한다 한들 눈앞의 소망충족 앞에 소년들은 주저 없이 호주머니를 열었던 것이다.

현대 일본에서 무기력할 만치 수동적인 소년들을 세상의 종말 전야에 모성애 짙은 여자친구와 짝지어 주는 묵시록적인 이야기들은 더 이상 패전의 트라우마에 대한 해결책이나 사회구성원의 성장통 따위에 연연하지 않는다. 대신 의미 있는 사회관계로부터 완전히 뒤로 물러나 움츠러듦으로서 청소년들이 점차 사회공동체와의 끈을 잃어버리고 영원한 사춘기에 잔류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들은 패전과 원자폭탄 피폭의 상처로 말미암아 억눌려 있던 과거의 기억에서 온전히 벗어날 건강한 출구를 잃은 채 우왕좌왕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이 갈수록 양식화되어 21세기에는 마치 하나의 주요 장르인양 자리 잡고 있는 현실에서, 이 같은 퇴행적 플롯이 언제까지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설뿐 아니라 만화와 애니메이션에서 번창하는 세카이계 작품들이 우리나라 청소년들에게까지 전후맥락에 대한 아무런 사전지식 없이 무비판적으로 유입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지라 제작장면

영화 <고지라>의 일본판 제작시 제작장면. 특수효과가 발달하지 못한 시절에는 대역이 고지라 인형을 뒤집어쓰고 연기했다. 일본의 대재앙 이야기들은 재앙의 원인을 수수께끼처럼 모호하게 처리하거나 넌지시 미국의 탓인 양 힐난하는 경향이 있는데, 단적인 예가 일본의 인기 괴수 캐릭터 영화 <고지라>다. 여기서 고지라는 원래 해저에 잠자던 선사시대의 공룡인데 미군이 태평양 심해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하는 바람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거대괴수가 된 케이스다. 이러한 설정은 미군의 원폭으로 도시가 잿더미가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사상을 입은 일본의 피해의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해석을 낳는다.  (copyright: Tomoyuki Tanaka)

한국인 입장에서는 세카이계 작품군의 묵시록적인 암울한 비전에 선뜻 동의하지 못하는 뚜렷한 이유가 하나 있다. 일본의 대재앙 이야기들은 재앙의 원인을 수수께끼처럼 모호하게 처리하거나 넌지시 (<고지라>에서처럼) 미국의 탓인 양 힐난한다. 이러한 화법은 세계대전을 일으키고 대동아 공영권이란 미명 아래 아시아 전역을 식민지로 만들려는 과정에서 수많은 아시아 공동체들에 대재앙을 안겨준 장본인이 정작 일본 자신임을 슬그머니 은폐하는데 효과적으로 기여한다.

이러한 자가당착에 빠진 전형적인 플롯이 바로 세카이계 유형의 내러티브다. 논리보다는 감성에 호소하는 스타일을 통해 일본의 대재앙 이야기는 갈가리 찢긴 세상을 배경으로 하면서도 대체 누가 왜 그랬는지 잘 알려주지 않거나 동문서답으로 일관한다. 다카하다 이사오의 <반딧불의 묘지>가 지극히 서정적인 감성으로 심금을 울림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반전 메시지가 한국인들의 가슴에 깊이 와 닿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 다.

대재앙의 원인에 대한 분석을 기피하거나 오히려 오도하는 한편으로 그저 참상만 나열하면서 일본 국민 역시 남들 못지않게 힘들었고 지금도 그 상흔으로 마음이 멍들어 있다는 식의 자기변명은 베트남 전쟁에서 지고 나서 미군이 실제로 전쟁을 도발했던 이면의 흑막은 일체 감춘 채 할리웃 영화들이 앞장 서 귀국한 참전군인들의 정신적 트라우마를 부각하는 데에만 반복해서 열을 올렸던 사례와 하등 다를 것이 없지 않은가. 세카이계 작품들은 똑같은 임무를 SF 장르에서 수행하고 있는 셈이다.

주석

1) 일본을 포함한 현대 도시사회에서 실제의 삶을 불안정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는 나와 상대 사이를 이어주는 중간지대의 상실이다. 이를테면 공통된 사회적 언어와 연대의식, 지역 커뮤니티들, 직접적인 인간관계 그리고 상징적인 힘의 쇠퇴 같은 것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특히 현대의 일본에서 이러한 현상은 일상화되다 못해 점차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이는 사람들이 자신의 지역 커뮤니티와 고립되어 살며 타자의 간섭 없이 의식주를 누리고 심지어 성적 욕망까지 충족시키는데 따른 결과이다. 직접 남과 대면 없이 가상공간을 이용해 뭐든 손쉽게 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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