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용 혈액분석기 핵심원리 발견

[인터뷰] 김주민 아주대 에너지시스템학과 교수

과학과 의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평균수명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누구나 건강한 신체를 갖고 오랜 세월을 살기 바라지만, 바쁜 현대인들에게 때마다 병원을 방문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 중 하나다.

이처럼 바쁜 일상생활 가운데에도 몸의 건강상태를 진단하기 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전 세계적으로 스마트폰 등을 활용한 소형 건강검진 기기 개발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당뇨병 환자가 증가하면서 혈액을 대상으로 하는 분석기기 개발에 대한 관심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혈액은 상대적으로 채취가 쉽고 건강에 대한 많은 정보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휴대용 혈액분석기에 필요한 핵심원리를 발견해 주목을 받고 있다. 김주민 아주대 교수팀이 마이크로 입자가 흐르는 초저농도 디옥시리보핵산(DNA) 용액 안의 정렬현상을 개발한 것이다. 해당 연구결과는 그 성과를 인정받아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Nature Communications)’ 온라인판에 게재됐다.

소형화 분석기기 원리 밝혀

▲ 김주민 아주대 에너지시스템학과 교수 ⓒ김주민


“혈액 분석기기를 소형화하는 하는 방법으로 선호되는 것은 미세유체소자 방법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미세유체소자는 높이가 대략 0.1 mm 이하인 채널을 따라 액체를 흘리면서 액체 속에 있는 세포와 DNA, 단백질 등을 연속으로 분석하는 방법입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는 아주 적은 양의 시료로도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이죠. 따라서 시료를 채취하는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불편함을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또한 미세채널에 기반을 두고 분석이 이뤄지기 때문에 소자를 매우 작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값싸게 제작할 수 있어 휴대용 기기로 활용하는 데 큰 장점이 있습니다. 이러한 미세유체소자를 이용해 혈액분석을 하는 데에 필요한 핵심기술 중 하나는 흐르는 혈액 속에 존재하는 혈구 세포를 공간적으로 정렬시켜 세포 하나하나씩을 분석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만일 공간적으로 정렬되지 않으면 스마트폰의 CCD 카메라 같은 센서를 지나는 순간 이들 세포에 대한 정확한 분석이 이뤄지기 힘들기 때문이죠.”

미세입자를 정렬하는 것이 혈액분석기의 소형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기존에는 주로 전자기력 발생장치와 같은 부가적인 장치를 이용하거나 복잡한 구조의 채널을 필요로 했기에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존재했다.

“이번 연구는 특별한 장치 없이 액체 속에 극미량의 DNA를 섞은 후, 이 액체를 직선형의 미세채널 속으로 흘려주면 액체 속에 무질서하게 분포하는 수 마이크로미터의 입자들이 저절로 채널의 중앙으로 정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더불어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를 이론적으로 설명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죠.

DNA는 긴 사슬형의 분자인 고분자의 일종입니다. 고분자 용액 속에서 입자가 중앙으로 이동한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알려진 내용이에요. 우리팀은 DNA가 구조적으로 뻣뻣하면서도 길이가 긴 특성을 갖고 있어 합성고분자 대비 미세 입자 이동에 매우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더불어 김주민 교수팀은 초저농도의 DNA 용액이 흐를 때 수 마이크론 크기의 입자가 채널 가운데로 정렬하는 현상을 발견했다. DNA 용액은 점도가 낮아 구동압력을 낮출 수 있기 때문에 분석기 소형화에 매우 유리하다.

“이번 연구에서 발견한 또 다른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DNA 용액의 경우 높은 유량에서도 입자 정렬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보여줬다는 점입니다. 이는 고속 분석을 필요로 하는 고성능 세포 분석 분야에도 응용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하죠. 즉, 이 기술의 활용 범위가 매우 넓다고 볼 수 있어요.”

긍정의 팀워크로 이뤄낸 성과

▲ DNA의 탄성기반 입자 집속 현상의 모식도 ⓒ한국연구재단


김주민 교수가 이번 연구를 시작한 것은 그가 MIT 공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활동하던 당시부터다. 당시 김주민 교수는 코일 형태로 꼬여 있는 DNA를 곧게 편 뒤 DNA에 담긴 유전 정보를 읽을 수 있는 소자 개발 연구를 수행 중이었다.

“귀국 후 학교에 부임한 후에도 DNA 분자 동력학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수행했어요. 더불어 합성 고분자를 활용한 입자 정렬법에 대해서도 연구를 진행했죠. 그러던 중 학생과 고분자 용액을 활용한 입자 정렬과 관련된 문제를 논의하다가, 문득 DNA도 고분자의 일종인 만큼 합성 고분자 대신 입자 정렬에 이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합성고분자와 구조적 특성이 다른 DNA 용액에서 뭔가 다른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이번 연구를 수행한 동기라고 할 수 있죠.”

김 교수는 “연구 초기에는 잘 몰랐지만 해당 과제가 과학적·실용적 측면에서 활용 가치가 매우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 때문에 연구를 더 깊이 수행했다고 전했다.

“DNA는 생물체의 유전 정보를 담고 있고 분석 대상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 연구는 DNA의 새로운 적용 분야를 제시했다는 측면에서 과학적인 의미가 매우 큽니다. 더불어 DNA 기반 입자 정렬에 바탕을 둔 여러 응용 기술 개발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실용적인 면에서도 활용 가치가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김 교수는 이번 연구 성과에 대해 “훌륭한 팀워크의 결과”라고 언급했다. 밤잠을 설치며 연구하는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은 작업이지만, 공동연구자들의 좋은 팀워크가 부족한 리소스를 상쇄해 좋은 결과를 나타냈다는 것이다.

“미세유체소자 분야는 한국이 많은 강점을 갖고 있는 분야입니다. 단적으로 이 분야의 탑(top) 저널인 영국 왕립화학회에서 발행하는 ‘랩온칩’ 지에는 한국 특집호가 실리기도 했어요. 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수행된 많은 연구가 이 저널에 수록, 이것만으로도 한국이 이 분야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알 수 있습니다. 미세유체소자의 제조는 반도체 제조 공정과 상당 부분을 공유해 잘 갖추어진 미세소자 제조관련 인프라를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개인적인 경험에 비춰볼 때 소자 제조에 손재주가 필요하고 실험의 싸이클 타임이 상대적으로 빠른 게 한국인들이 체질적으로 미세유체소자 분야에 잘 맞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향후 여러 연구자들이 합심해 해당 분야 연구에 집중하면 반도체에 이어 미세유체소자가 한국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술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김주민 교수는 이번 연구가 혈액 속 혈구 세포를 분석하기 위해 필요한 핵심 기술을 제시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향후 의대 교수들과 협력해 실제 적용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하는 실용화에도 관심이 많다”며 “이 경우 저의 본래 전공인 화학공학뿐만 아니라 전자공학, 기계공학에서 개발된 기술이 융합돼야 한다. 그만큼 다양한 분야의 기술을 효과적으로 조화롭게 만들고 싶다”며 앞으로의 포부를 이야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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