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11,2019

환자복에서 찾아낸 전염병의 비밀

노벨상 오디세이 (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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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은 1812년에 50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 원정길에 나섰다. 그런데 모스크바에 도착했을 때 그의 병력은 약 10만여 명에 불과했다. 도중에 몇 차례의 전투가 있었지만 프랑스군이 연전연승한 까닭에 전사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 탓도 있었지만 그보다 병사들을 더 많이 쓰러뜨린 건 온몸에 발진을 일으키는 전염병 때문이었다. 무적이었던 그의 병사들은 전염병으로 속수무책 쓰러지기 시작했고, 이후 나폴레옹은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

그 전염병은 바로 페스트, 천연두와 함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을 죽인 티푸스였다. 실제로 유럽의 한 연구팀은 당시 전쟁에서 숨진 병사들의 치아에서 추출한 치수(齒髓)를 분석한 결과, 프랑스 군대가 러시아에서 퇴각하게 된 주요 원인은 발진티푸스라는 연구 결과를 2005년에 발표했다.

발진티푸스의 전염 경로를 밝혀내 192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샤를 니콜 박사. ⓒ Public Domain

발진티푸스의 전염 경로를 밝혀내 192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한 프랑스의 샤를 니콜 박사. ⓒ Public Domain

발진티푸스는 유독 전쟁 중에 많이 유행했다. BC 430년경에 일어난 펠로폰네소스 전쟁 때 아테네를 황폐화시킨 것도 바로 이 병이었으며, 나이팅게일이 활약했던 크림전쟁에서도 발진티푸스는 병사들의 제일 큰 사인이 됐다.

이처럼 전쟁이나 가뭄 등 심각한 재난이 발생했을 때 유행한다고 하여 이 질병은 캠프 티푸스 혹은 가뭄 티푸스로 불리기도 했다. 홍역과 매우 비슷한 방법으로 전염되는 이 병에 걸리게 되면 1~2주의 잠복기를 거쳐 오한과 고열, 두통, 근육통 등의 증상이 나타나게 된다.

또한 상체부에 발진이 생겨 전신으로 넓게 번지기 때문에 발진티푸스라고 하는데, 장티푸스와는 완전히 다른 질병이다. 문제는 의사들도 이 질병의 전염 경로를 알지 못했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질병을 연구하던 의사들조차 전염돼 희생되기도 했다.

티푸스를 일으키는 균은 ‘리케치아 프로바제키(Richettsia prowazekii)’인데, 사실 이 이름도 티푸스균에 전염돼 목숨을 잃는 두 명의 과학자 이름을 딴 것이다.

끈질긴 관찰로 전염 경로 비밀 밝혀내

가장 많은 전사자를 낸 제1,2차 세계대전 때도 티푸스 대유행이 일어나 수백만 명이 사망했다. 그런데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이 질병에 대한 예방책의 기초를 마련한 세균학자가 있었다. 1928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프랑스의 샤를 니콜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1866년 9월 21일 프랑스 루앙에서 병원 의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형제들과 함께 생물학 수업을 아버지로부터 받았다. 이후 그는 파리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파스퇴르연구소에서 메치니코프의 지도를 받았다.

1893년에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루앙의학교 교수로 재직하다 1896년에는 루앙의학교 미생물학 연구소장이 되었다. 1903년에는 튀니스에 있는 파스퇴르연구소 소장이 되었으며 이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일했다.

초기에 주로 암과 디프테리아 등을 연구하던 그가 티푸스를 연구하기 시작한 건 튀니스에 부임하면서부터였다. 그는 병원에 입원한 티푸스 환자들의 발병 및 전염 과정을 추적하던 중 이상한 사실 하나를 발견했다.

그들이 병원에 입원하는 순간 그들의 가족을 비롯해 다른 환자, 간호사, 의사들까지 전혀 티푸스에 전염되지 않는다는 점이 바로 그것이었다. 샤를 니콜은 그 이유가 새로 입원하는 환자들의 경우 모두 기존에 입었던 옷을 벗은 다음 몸을 깨끗이 씻고 환자복으로 갈아입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즉, 환자들의 몸이나 옷에 살고 있는 기생충인 몸니가 티푸스의 전염 요인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의 추론을 입증하기 위해 동물 실험을 실시했다. 티푸스에 감염된 침팬지의 피를 다른 침팬지에게 주입해 발진티푸스를 전염시킨 그는 같은 방법으로 원숭이에게도 티푸스를 감염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09년 9월에는 티푸스에 감염된 원숭이를 물었던 몸니가 다른 동물을 물기만 해도 감염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티푸스 환자에 대한 단순하고도 끈질긴 관찰이 그동안 미스터리로 남아 있던 이 질병의 전염 경로에 대한 비밀을 밝혀낸 셈이다.

2년 만에 튀니스 지역의 티푸스 퇴치

티푸스균은 몸니의 체내에서 약 1주일이 지나야 증식돼 전염성을 가지게 된다. 반드시 몸니에 물려서만 전염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드러났다. 몸니가 병원균이 들어있는 배설물을 분비하면 사람이 가려워서 피부를 긁게 되고, 피부의 긁힌 상처를 통해 티푸스균들이 체내로 들어가는 것이다.

몸니에 대한 티푸스의 전염 경로가 밝혀지자 매년 이 질병에 시달려 왔던 튀니스에서 티푸스는 불과 2년 만에 완전히 퇴치됐다. 몸니로 옮아간 티푸스균은 성충이 죽으면 유전되지 않고 저절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또한 샤를 니콜은 한 번 이 병에 걸린 원숭이가 다시는 걸리지 않는다는 것에 착안해 회복기 환자의 혈청으로 티푸스에 대한 예방 접종에도 성공했다. 그의 이 같은 연구로 인해 튀니스의 파스퇴르연구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세균학 연구의 중심지로 부상했다.

하지만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후에도 유럽의 의사들은 티푸스에 관한 샤를 니콜의 연구 성과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티푸스로 인한 사망자가 많았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니콜 박사는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전쟁 주변 지역에서 티푸스 발병을 확인하는 등 티푸스에 대한 임상 연구를 광범위하게 실시했다. 시인이자 철학자로서도 상당한 명성을 누린 그는 1936년 2월 28일 세상을 떠났다.

발진티푸스는 1990년대 이후 난민캠프 등 비위생적인 환경에 놓인 특수한 상황에서 가끔 발생이 보고되고 있으나 현대의 문명사회에서는 잊혀가는 질병이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도 6.25 전쟁 때인 1951년에 3만여 명의 환자가 발병했으나 1967년에 1명의 환자가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보고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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