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tober 19,2018

화학자 돌턴은 ‘색맹’이었다

과학기술 넘나들기(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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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위인들 중에는 신체적 장애를 불굴의 의지로 극복하고 훌륭한 업적을 남긴 인물들이 적지 않다.

‘3대 고통의 성녀’라 불리던 헬렌 켈러(Helen Keller; 1880-1968)라든가, 소아마비였음에도 불구하고 네 차례나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프랭클린 루스벨트(Franklin Roosevelt; 1882-1945), 청각을 상실한 이후에도 불후의 명작을 남긴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 등, 청소년 시절 이들의 전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은 이들도 많을 것이다.

과학 분야에서는 올해 3월에 타계한 ‘휠체어 위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 1942-2018) 박사 이외에 저명한 장애인 과학자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위대한 화학자 돌턴(John Dalton; 1766-1844)이 선천적 색맹이라는 장애를 지니고 있었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의학계열이나 이공계 상당수 학과에 색맹은 물론이고 색약 등 조그마한 색각 이상이 있는 사람들조차도 입학이 허용되지 않았다.

지금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이러한 불합리한 차별은 사라졌고, 취업 시 색깔과 직접 관련이 있는 극히 일부의 직종에서 제한이 남아있는 정도이다.

그러나 오랫동안 “색맹이나 색각 이상자는 의사나 과학기술자가 될 수 없으니 진학 시에 무조건 문과로 가야한다.”는 편견이 온존해왔는데, 심한 적록색맹이었던 돌턴이 역사에 길이 남는 화학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근대적 원자론을 체계화한 색맹화학자 돌턴 ⓒ Free photo

근대적 원자론을 체계화한 색맹화학자 돌턴 ⓒ Free photo

영국의 화학자 돌턴(John Dalton; 1766-1844)은 근대적 원자론의 토대 위에서 화학을 체계화한 인물로, 모든 화학 교과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돌턴은 가난한 직물공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소년 시절부터 수학에 뛰어나서 ‘수학의 천재’라는 칭찬을 받기도 했고, 어린 나이에 마을 사람들의 추천으로 마을 초등학교의 교장이 된 적도 있었다.

청소년 시절에 외국어, 물리학, 화학 등 여러 학문을 폭넓게 공부하면서 특히 기상학을 깊게 연구해, 20만장에 달하는 엄청난 관측 기록을 남길 정도로 놀라운 집념을 보였다고 한다.

1794년 맨체스터 문학, 과학협회 회원으로 선출된 그는 이때부터 기체론과 원자론 등을 연구하며 화학의 새로운 장을 열어 나아가기 시작했다.

즉 일찍이 고대 그리스의 자연철학자 데모크리토스(Democritos; B. C. 470-380)가 주장했던 원자론을 화학에 체계적으로 적용한 것이다.

원자설을 처음 주장한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라토스 ⓒ Free photo

원자설을 처음 주장한 고대 그리스의 데모크라토스 ⓒ Free photo

이를 통해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 물이 되는 원리를 밝혀냈고, 그밖에도 당대의 여러 화학자들이 발견하기 시작한 기체의 성질들을 원자(Atom)라는 명확한 개념 아래 체계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또한 이 과정에서, ○(산소; O), ●(탄소; C)와 같은 형태의 원자기호를 처음으로 고안하여 사용하였다.

돌턴이 자신의 색채 감각에 이상을 느낀 것은 소년 시절에 친구들과 군대의 행진을 구경하던 무렵이라고 한다. 한 친구가 “빨간색 군복이 너무나 멋지고 화려하다”라고 말하자, 자기는 풀색으로 보인다고 하여 친구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돌턴이 제안한 최초의 원자기호들 ⓒ Free photo

돌턴이 제안한 최초의 원자기호들 ⓒ Free photo

그의 집안은 비록 가난했으나, 신앙이 독실한 엄격한 퀘이커 교도 집안이었는데, 당시의 퀘이커 교도들은 빨간색과 같은 화려한 색의 의복을 입는 것을 금했으며, 폭력을 멀리하고 평화를 사랑한다는 의미에서 무기 등을 가까이하지 않았다.

돌턴은 청년 시절 어머니에게 비단양말 한 켤레를 선물로 사 드렸는데, 자신의 눈에는 푸른빛이 도는 회색 양말로 퀘이커 교도에게 적절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는 새빨간 양말을 받아 들고서 깜짝 놀라고 말았다고 한다. 또 한 번은 그가 파리에 갔을 때, 양복을 새로 맞추려고 진열되어 있는 천을 골라 양복을 주문했는데, 수렵용 빨간 코트를 만드는 천을 택했기 때문에 그가 퀘이커 교도임을 아는 양복점 주인은 매우 의아하게 생각했다.

돌턴이 많은 업적을 쌓은 후 나이가 들어서 은퇴하게 되자, 영국 정부에서는 그의 공적을 기려서 고액의 연금을 지급하기로 하고 국왕을 배알토록 했다.

그런데 당시 국왕을 뵈려면 반드시 화려한 예복을 입고 칼을 차야 했으므로, 의전 관계자들은 상당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돌턴이 퀘이커 교도임을 감안하여 칼을 차지 않아도 되는 옥스퍼드의 법학박사 예복을 입기로 합의했는데, 그 옷의 빛깔은 화려한 빨간색이었으나 돌턴의 눈에는 칙칙한 흙색으로 보였으므로 아무 문제없이 넘어갈 수 있었다.

적록색맹 시험용 도안 ⓒ Free photo

적록색맹 시험용 도안 ⓒ Free photo

돌턴은 자신이 색맹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은 후, 원자론의 연구만큼이나 색맹에 관해서도 깊게 연구했다. 그는 전형적인 적록색맹이었는데, 자기가 색맹인 이유가 ‘눈 내부에 있는 액체가 빛 가운데에 빨간 부분을 흡수해 버리기 때문’이라고 믿고, 자기가 죽거든 자기의 안구를 조사해 달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가 죽은 후 친구인 의사 랜섬이 유언에 따라 그의 한쪽 눈을 조사했으나, 눈 안의 액체가 색맹의 원인이라는 돌턴의 생각은 틀린 것으로 밝혀졌다.

오늘날에도 영어로 선천성 색맹, 특히 적록색맹을 ‘돌터니즘(Daltonism)’이라고 부르는데, 물론 돌턴으로부터 유래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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