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21,2019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15

인쇄하기 일러스트가 있는 과학에세이 스크랩
FacebookTwitter

“남녀는 의사를 전달하는 방법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생각하고 느끼고 지각하고 반응하고 행동하고 사랑하고 필요로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달리한다. 어떤 때엔 언어도 다르고 환경도 다른,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 존 그레이,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미국의 대인관계 카운슬러인 존 그레이 박사는 남녀 사이의 갈등은 ‘남자와 여자가 전적으로 다른 개체’인데서 비롯한다는 통찰로 1992년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제목의 책을 펴냈다. 이 책은 남녀관계의 미묘한 어려움을 겪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초베스트셀러가 됐고, 그 뒤 40개 언어로 번역돼 지금까지 5천 만부가 팔렸다고 한다.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일찌감치 번역돼 여전히 베스트셀러에 올라있다. 필자 역시 십 수 년 전에 이 책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남녀가 서로 다른 행성에서 왔을 정도로 다르다며 그레이 박사는 남자에게는 화성, 여자에게는 금성을 지정해 줬는데 그 이유는 영어 원제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책의 원제는 ‘Men Are from Mars, Women Are from Venus’로 Mars(화성)은 로마 신화의 군신 이름이고 Venus(금성)는 로마 신화의 미의 여신 이름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면 파경 직전까지 간 부부들이 이 책을 보고 그레이 박사의 세미나에 참석하면서 부부관계를 회복해 저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했다는 일화가 여럿 나온다. 이혼율이 꽤 높은 편인 우리나라에서도 대중이 쉽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이런 심리학책을 활용한다면 갈등을 완화하는 데 도움을 주지 않을까?

남녀의 문제인가 인간의 문제인가

그런데 심리학저널인 ‘성격과 사회심리학 저널’ 2월호에 ‘남자와 여자는 지구에서 왔다(Men and Women Are from Earth)’라는 특이한 제목이 논문이 실렸다. 지난 20년을 풍미한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이론은 별 근거가 없는 과장된 주장이라는 것. 우리가 남녀차이라고 보는 많은 심리적 특성이 사실은 개인의 차이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논문의 저자는 미국 로체스터대 심리학과 해리 라이스 교수와 미국 세인트 루이스대 공중보건시스템과학센터 바비 캐러더스 박사다.

▲ 사람의 신체적 특성은 남녀의 차이가 확연한 경우가 많지만(힘의 분포를 나타내는 위의 그래프), 심리적 특성은 많은 경우 남녀의 차이로 범주화할 수 없다(남성성(자기주장)의 분포를 나타내는 아래 그래프). ⓒ로체스터대


이들은 논문에서 오늘날 심리학자들 다수는 이미 이런 틀에 박힌 단순한 이분법을 믿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일반인들은 여전히 ‘화성 남자 금성 여자’ 가설을 진실로 믿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라는 것. 수년 전 라이스 교수 연구팀에 박사과정 학생으로 들어간 캐러더스는 이런 모순을 명쾌히 보여주는 연구를 학위주제로 정하고, 그동안 행해졌던 13건의 대형 연구프로젝트(122개 항목 13,301명 참여)를 다시 분석해(이를 메타분석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결과를 얻었다.

이들은 어떤 특성이 ‘화성 남자 금성 여자’처럼 확실한 남녀 범주로 나눌 수 있는 건지 아니면 설사 남녀의 평균 차이가 좀 있더라도 분포가 완만해 서로 겹치는 부분이 많아 범주로 나눌 수 없는 건지 구분하는 작업을 했다. 예를 들어 ‘키’라는 항목을 보면 남녀는 평균에 차이가 있을 뿐 아니라 ‘여자 170cm이면 큰 키이지만 남자 170은 약간 작은 키’라고 판단할 정도로 편차가 확실하다. 이런 특성이 ‘화성 남자 금성 여자’ 범주화에 속한다는 것.

반면 ‘수학 실력’이라는 항목을 보면 보통 남자가 여자보다 수학을 잘 한다고 알려져 있지만 ‘여학생 중에 수학을 잘 하는 친구가 남학생 사이에서 놓고 보면 못하는 편’인 건 아니다. 남녀 각각에서 수학 평균인 친구들의 남녀 차이는 상대적으로 작은 반면 같은 성 안에서도 실력의 편차가 워낙 넓게 퍼져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특성은 ‘화성 남자 금성 여자’ 범주화에 속하지 않는다.

연구자들은 신체 특성(키, 어깨 넓이, 허리와 엉덩이 둘레 비율)과 성 정형화된 활동(비디오게임 하기, 포르노 시청, 화장 하기, 전화로 수다 떨기), 신체 능력(높이뛰기, 멀리뛰기, 멀리던지기)에 대한 데이터를 연구를 위해 도입한 분석법으로 해석한 결과 남녀가 다른 행성에서 왔다고 할 정도로 뚜렷한 차이가 난다는 결론을 얻었다.

다음으로 여러 심리적 특성을 분석했는데 크게 네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즉 성적 취향과 배우자 선택, 대인관계, 성 관련 기질, 친밀성이 그것이다. 이 각각에 대해서도 여러 세부항목이 있다. 앞에서 했던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이들 심리적 특성 대부분은 남녀의 평균 차이는 있을지언정 ‘화성 남자 금성 여자’ 범주를 나눌 정도로 분포의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성적 취향과 배우자 선택’을 보면 “낯선 이성과 성관계를 갖고 싶나?” “애정 없는 섹스를 어떻게 생각하나?” “섹스에 대해 얼마나 자주 생각하나?”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을 분석한 것인데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의 이론대로라면 남자는 각 질문에 대해 “그렇다” “문제 없다” “늘”, 여자는 “전혀” “말도 안 돼” “가끔”이라고 답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말이다.

이 밖에도 ‘성공에 대한 염려’ ‘배우자 선택의 기준’ ‘동정심’ 같은 여러 심리적 특성에서 남녀의 평균 차이는 각 성 내부의 편차에 비해 작다는 결과를 얻었다. 결국 우리가 배우자나 애인과 겪게 되는 심리적 갈등은 남녀라는 타고난 차이 때문이 아니라 그 사람 개인의 성격이나 기질 때문이라고 저자들은 주장한다.

라이스 교수는 “게이 커플과 레즈비언 커플도 남녀 커플이 겪는 문제들을 똑 같이 겪는다”고 덧붙였다. 사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의 이론대로라면 동성인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늘 매끄럽게 흘러가야하지만(서로의 마음을 너무나 잘 이해하고 있으므로) 주위를 둘러보면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함을 알 수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의 갈등은 동성 이성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며 그 와중에 위안을 주고받는 친구 역시 동성일 수도 있고 이성일 수도 있다. 즉 그 사람의 ‘성별’이 아니라 ‘성질’이 문제인 것이다.

남녀 성별은 이분법의 출발점

저자들이 이 연구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인간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복잡한 문제들을 ‘남과 여’라는 단순화된 틀로 해석해 처방을 내리는 것이 올바른 해답이 아닐뿐더러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이스 교수는 “커플 사이에 문제가 생기면 사람들은 바로 상대의 성(gender)을 비난한다(예를 들어 “저래서 여자는 안 돼!” “남자라는 족속들은…”)”며 “성에 대한 정형화가 상대를 개별 인격체로 바라보는 시각을 방해한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이런 특성을 바꾸려는 노력을 하지 않게 된다고.

▲ 논문 저자인 바비 캐러더스 박사는 소녀시절 만능 스포츠 선수였다. 캐러더스는 자신의 경험에 비춰 여러 심리 특성을 남녀의 차이로 정형화한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이론이 설득력이 없다고 보고 이를 반증하는 연구를 박사논문 주제로 삼았다. ⓒ강석기


사실 ‘화성 남자 금성 여자’라는 단순화된 이분법의 오류에 대한 지적과 이에 대한 반대 이론인 ‘양성간 유사성 가설(Gender Similarities Hypothesis)’는 이미 2005년 미국 위스콘신대 심리학과 쟈넷 하이드 교수가 제시한 바 있다. 즉 심리학적 특성 대부분에서 남녀는 서로 비슷하다는 것. 그럼에도 ‘화성 남자 금성 여자’ 가설이 여전히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건 사람이라는 존재가 뭐든지 범주화하는 걸, 그것도 이분법으로 나누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런 인간의 성향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인지적 구두쇠 가설(Cognitive Miser hypothesis)’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즉 사람 사이의 복잡한 관계를 해석하는 데 드는 정신적 노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간의 특성을 나눌 때 가장 확실한 출발점이 되는 ‘남녀’라는 성 차이를 다른 특성에다가도 갖다 붙여 해석하려고 한다는 것. 그 결과 남녀 사이에는 차이를 극대화하고 동성 사이에는 차이를 극소화하는 왜곡된 시각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가정이나 학교, 직장에서 혹 이성인 상대와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고 ‘다른 행성에서 온 종족이니까’라고 단정 짓는 범주화 오류에서 벗어나 그 사람 자체를 이해하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우리 모두는 (비유적으로나 실제로나) ‘지구’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의견달기(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