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혈흔 분석하면 범인 보인다

[사이언스타임즈 라운지] 국내 최초로 모조혈액 개발 성공

2011년 5월 대구 중구의 한 주택가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목 부위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으며, 시신 옆에는 치명상을 입힌 도구로 추정되는 가위가 놓여 있었다. 시신을 처음 발견한 이는 사망자가 세들어 살던 집주인이었다.

경찰은 처음에 사망자가 자살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고자인 집주인이 사망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 같다고 진술했을 뿐더러 최초 현장 상황도 범행으로 보일 만한 특이한 점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찰은 정밀한 수사 끝에 사망자는 타살 당했으며, 그 범인은 바로 신고자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상황을 뒤집은 결정적인 증거는 혈흔이었다. 사망자가 흘린 핏자국을 분석하면 움직이며 흘린 피와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흘린 피와의 구별이 가능하다. 움직이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 낙하로 형성된 혈흔은 정원형의 모양에다 혈흔의 외곽에 형성된 작은 돌기 형태의 혈흔들인 위성혈흔이 고르게 퍼져나간다.

CSI 실습장에서 혈흔 감식 시범을 보이고 있는 과학수사대 요원. ⓒ 연합뉴스

CSI 실습장에서 혈흔 감식 시범을 보이고 있는 과학수사대 요원. ⓒ 연합뉴스

그러나 사망자가 저항하고 움직이면서 흘린 피는 움직인 방향으로 폭이 줄어들면서 긴 혈흔을 남기게 된다. 이때 움직인 속도가 빠를수록 폭에 대한 길이의 비가 증가한다. 특히 자살을 위장한 경우 시신의 현 위치와 혈액이 흐른 방향이 다른 ‘흐름 왜곡’이 나타난다. 경찰은 혈흔으로 범인의 도주 방향까지 알아내 집주인을 범인으로 지목할 수 있었다.

살인 같은 강력사건에서 혈흔은 가장 중요한 현장 증거다. 공판 중심주의 사법제도를 가진 우리나라에서 혈흔의 형태는 기소된 내용의 설득력을 높이는 결정적 단서로 사용될 수 있다. 특히 흉기나 둔기로 인한 살인사건이 많은 우리나라에서는 혈흔의 상태가 역동적이고 다양하기 때문에 혈흔 형태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

칼은 낙하혈, 둔기는 비산혈 발생시켜

혈흔을 분석하면 피해자가 어떤 범행도구에 의해 당했는지 알 수 있다. 날카로운 흉기에 의해 치명상을 당할 경우 폭이 좁은 타원형의 혈흔이 생기지만, 둔탁한 둔기는 둥근 원형의 혈흔을 남긴다.

날카로운 칼이 몸을 즉시 관통해 뚝뚝 떨어진 혈흔을 낙하혈이라 하며, 야구 방망이 같은 둔탁한 둔기에 의해 발생한 혈흔은 비산혈이라 한다. 사체가 한 곳에 오래 머물러 다량의 혈액이 고이면 고인혈흔이 생성되며, 이 같은 혈흔에서 어떤 물건의 모양만큼 비어 있는 모양은 공간흔이라 한다.

이밖에도 손이나 머리카락 등에 묻은 혈흔이 다른 물건에 묻은 경우에는 전달혈흔, 파리 같은 곤충이 옮겨서 마치 비산된 작은 혈흔처럼 보이는 파리얼룩, 호흡에 의해 코에서 분출되는 호기혈흔 등 다양한 혈흔의 형태가 실제 사건현장에서 관찰된다.

혈흔 크기로는 범행 도구를 휘두른 가격 속도도 가늠할 수 있다. 혈흔의 지름이 1.0㎜ 이하면 고속, 1.0~4.0㎜는 중속, 4.0㎜ 이상이면 저속으로 추정할 수 있다. 빠르게 때리면 피가 멀리 날아가면서 증발하는 원리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혈흔의 모든 형태를 분석하면 범행 현장을 재구성할 수 있다. 피의자가 무슨 도구를 사용했으며 피해자를 몇 회 가격했는지, 또 범행의 중심 장소를 비롯해 피해자가 가격 당한 위치, 그리고 피해자 및 피의자의 행동반경 및 동선까지 파악해낼 수 있는 것.

영구 미제로 남을 뻔한 이태원 살인사건의 피의자인 미국인 아서 존 패터슨을 사건 발생 18년 만에 국내로 송환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2008년 국내에 도입된 혈흔형태분석 기법 덕분이었다. 최초 수사에서는 피해자보다 키와 덩치가 큰 사람이 범인이라고 추정했으나, 현장에 남은 혈흔의 형태를 상세히 분석한 결과 피해자보다 덩치가 작은 패터슨도 충분히 범행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이다.

물리학 및 수학 등 전문 지식 필요해

혈흔형태를 정확하게 분석하기 위해선 혈액의 질량과 중력가속도, 높이 등의 수치를 비롯해 혈흔의 점도 및 바닥의 탄성 등이 모두 고려돼야 한다. 때문에 수학적 계산을 물론 물리학적 지식 등 전문 지식은 필수적이다.

또 하나, 사건 현장과 똑같은 현장 재구성 실험을 하기 위해선 진짜 사람 피가 필요하다. 돼지 등의 동물 피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사람 피와는 점성 및 응고 속도 등에서 차이가 난다. 따라서 정교한 판단이 필요한 범죄 현장에서는 수사관들이 직접 자기 피를 수혈해 실험에 사용하거나 미국산 모조혈액을 수입해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최근 대구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국내 최초로 수사 현장에서 사용할 수 있는 모조혈액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대구한의대와 5년여의 공동연구 끝에 선보인 이 모조혈액은 사람 피와 점도 및 탄성이 90% 이상 동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조혈액을 사용하면 동물 피나 사람 피를 사용할 때 나는 악취나 감염 우려가 없다는 장점을 지닌다.

최근 미국에서는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립스틱 흔적을 분석해 어떤 브랜드인지를 알아내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또 개인마다 몸에 서식하는 박테리아의 종류 및 비율이 다른 점을 이용해 범죄 현장에서 얻은 박테리아 유전정보로 개인을 식별하는 기술도 개발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범죄 역시 지능화되고 있다. 하지만 거기에 맞춰 범죄자들을 꼼짝하지 못하게 만드는 과학적 수사 기법 역시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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