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3,2019

해방 이후 최초의 창작SF는?

우리나라 창작 과학소설의 선구자 한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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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낙원(1924~2007)은 해방 후 21세기까지 꾸준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창작 과학소설과 과학교양서를 집필해온 이 장르문학의 명실상부한 선구자다. 안동민이 번역과 창작 그리고 평론까지 조금씩 손댔다면 한낙원은 전자의 성과를 압도할 만큼의 다수의 창작과학소설을 평생 꾸준히 집필했다는 점에서, 향후 전체 과학소설 시장의 초석이 될 ‘청소년 과학소설의 아버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나운서와 교사 생활을 거쳐 잡지 ‘농민생활’과 ‘동광’의 주간을 지낸 그가 과학소설을 창작하기 시작한 시기는 1952년부터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한 시기는 아동문고판 내지 세계문학전집류가 인기를 끌던 195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사이다.


1953년 간행된 한낙원의 장편 ‘잃어버린 소년’은 원래 신문에 연재되었던 작품으로 한낙원의 과학소설 데뷔작이자 해방 이후 최초의 창작과학소설이다. 이것은 세계연방이 수립된 미래의 지구가 외계인의 침공에 맞서 싸우는 이야기로, 전형적인 소년모험담에 과학소설적인 설정을 가미한 작품이다1). 1957년 발표된 ‘금성탐험대’는 워낙 인기가 좋아 1969년까지 무려 10쇄를 찍을 만큼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오늘날 ‘잃어버린 소년’,‘금성탐험대’의 초판과 재판 고서들은 온라인 중고경매 사이트에서 4~5만 원 선에 거래되는 골동품이다.

해방 이후 최초의 창작과학소설, ‘읽어버린 소년’

이 장편은 하와이 우주항공학교에 다니는 한국계 청년이 미국의 금성탐험호에 탑승하기 직전 스파이에게 납치되어 소련의 금성탐사 우주선에 탑승하게 되면서 양측이 옥신각신하는, 냉전구도에 충실한 스릴러다. 적어도 ‘금성탐험대’는 우주 항행과 금성 탐사 그리고 알파별 외계인들과의 만남 등 과학소설다운 서사적 틀을 풍부하게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인물과 사건에 대한 묘사가 한낙원의 과학소설들 가운데 가장 정교하다는 점에서 해방 전에 비해 장르문학으로서 크게 진일보한 면을 보여준다. 나아가 한낙원은 1967년 재간행된 ‘금성탐험대’ 서문에서 우주탐사로 상징되는 첨단과학기술의 추구가 어떻게 쓰여야 할지에 관한 도덕적 책무까지 계몽하고 나섰다.

“하나의 힘은 약하나 그 하나하나가 모인 힘은 강하다. 로켓을 우주 깊숙이 운반하는 가스의 힘도 실은 하나의 분자들이 동시에 내뿜는 데서 발생한다. 놀라운 원자력 역시 그러하다. 인간의 힘도 매일반이다. 일개인의 힘은 약하나 뭉친 힘은 강하다. 우주 개발은 온 인류의 지혜와 힘을 합쳐서 비로소 가능한 성업이다. 그런데도 그 거창한 우주 앞에서 세계는 부질없는 대립과 경쟁을 일삼고 있다.

만에 하나라도 그 때문에 피할 수도 있는 희생을 재촉한 것이라면 매우 애석할 노릇이다2). 그렇긴 하나 미소 양국의 세 우주인이 다 같이 어느 한 개인, 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것이 아닐진대 우리 모두가 그들에게 경건한 조의를 표해 마땅하리라.

이 소설은 미소 양국의 우주 경쟁을 다룬 글인데, 달을 정복하려는 그들의 경쟁은 오늘도 치열하기만 하다. 이런 시기에 필자는 이 작은 책자를 인류의 복된 내일을 위해 바친 세 우주인들 넋 위에 드려 삼가 그들의 명복을 빌고 싶다.”
- 세 우주인이 가던 해 (1967년) 6월3)

아동SF 평론가 김이구는 과학소설이 실제 우주비행사들의 사고사를 애도하는 서문으로 시작한다는 점에서 한낙원의 ‘금성탐험대’는 우리 문학사에서 매우 진귀한 사례라고 지적한다. 하지만 한낙원의 과학소설들은 당대 저명한 아동문학 작가들의 작품들과 함께 아동문학전집에 포함되는 서브 메뉴였던 까닭에 출판유통과정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대신 독립적인 단행본과 달리 금방 단종 되지 않고 장수를 누렸고 해당 전집 내지 문고판이 재간될 때마다 거의 자동으로 목록에 오르는 이점이 있었으니 어찌 보면 장군 멍군 격이었다.

어쨌거나 수십 년에 걸쳐 다수의 청소년용 과학소설을 꾸준히 펴냄으로서 장차 어른이 되어서도 이 장르문학을 즐길 예비독자층을 길러냈다는 점에서 한낙원이 우리나라 초창기 과학소설 시장에서 기여한 바는 중국 작가 쩡웬광(郑文光; 1929~2003)의 초기 업적에 견줄 수 있다. 안동민 뿐 아니라 한낙원에 대해서도 앞으로 후학의 보다 실증적인 연구가 뒷받침되길 기대한다. 한낙원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상세히 다루기로 한다.

1950년대 한중일 3국의 과학소설 현황

1950년대 말 일본에서는 이전까지만 해도 점처럼 따로 떨어져 존재하던 과학소설 작가들이 장르의식으로 한데 뭉쳐 아직 소수지만 이들에 호응하는 독자 팬들의 지지를 받아 ‘우주진 宇宙塵(1957년 창간)’ 같은 팬진과 ‘SF 매거진(S-Fマガジン; 1959년 12월 창간)4) 같은 상업월간지를 무대로 안정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독자적인 공간을 확보했다5).


같은 시기 중국에서는 공산화 이전부터 소개되어온 영미권 과학소설 못지않게 소비에트 러시아의 작품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이를테면 H. G. 웰즈의 ‘투명인간(The Invisible Man)’과 알렉세이 톨스토이의 ‘아엘리타(Aelita)’가 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식이다. 1950년대의 중국 과학소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표방하는 소련 과학소설의 도그마 아래 놓이게 됨에 따라 실용주의를 매우 강조하고 청소년들에게 혁명 사상에 바탕을 둔 낙관주의적 미래상을 제시하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이 무렵 중국에서 줄 베르느 선집이 꾸준히 번역 출판된 것은 작가 자체의 지명도 못지않게 그의 과학만능주의식 낙관적 사고가 사회주의 세계관과 합치되는 면이 많았던 까닭이다6). 비록 청소년 독자 위주였지만 10년 동안 일본과 중국의 과학소설 출판시장은 전에 비할 수 없이 양적으로 풍성해진 가운데 과학소설만 쓰거나 과학소설을 주로 쓰는 전업 작가층이 두터워졌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해방에 이은 정국 혼란 속에서 과학소설이 질은 고사하고 양적인 면에서 성장에 이루는데 심한 제약이 따랐다. 따라서 뜻을 같이 하는 과학소설 작가들의 연대와 과학소설 연재를 위한 고정지면 확보라는 과제는 1960년대로 미뤄지게 된다.





1. 한라산 우주과학기지에서 우주정거장으로 떠난 소형우주선이 외계의 비행접시에게 피랍된다. 안에 타고 있던 소년소녀는 인질이 되어 외계인들은 우주과학기지의 원일 박사가 항성 간 우주선 제작을 위해 연구해온 미완성 비밀설계도의 비밀을 털어 놓으라고 협박당한다.

우여곡절 끝에 외계인 우주선을 탈출한 소년소녀는 달로 추락하여 달 관측소 대원들에게 구조되는 사이, 지구의 원일 박사는 비밀설계도를 훔쳐 달아나던 외계인을 뒤쫓다 사망한 나 기사의 시신에서 태양계에서는 발견할 수 없는 특수원소를 찾아내 이것을 추가하여 마침내 항성 간 우주선 연료개발에 성공한다. 외계인들에게서 탈출하며 철이가 가져온 외계인 우주선 설계도라는 일군만마까지 얻은 지구인들은 대반격에 나선다.

2. 1967년 1월 17일 발사를 앞두고 있던 미국의 우주선 아폴로 1호 안에 시험 도중 화재가 발생하여 세 명의 우주비행사들이 숨졌다. 당시 미소 간의 우주탐사 경쟁이 군사적 충돌의 대리전 양상을 띠며 과열되고 있었기에, 한낙원은 소련보다 먼저 달에 사람을 보내려던 미국 측의 무리수가 이러한 안전사고를 일으킨 것은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가졌던 모양이다.

3. 김이구, “팬터지를 사랑할 것인가―여러 갈래로 열린 창작의 길”, 어린이 도서연구회
(http://www.childbook.org/news/seminar2002/6.htm)

4. 일본 과학소설 출판계의 최대 메이저인 하야가와 출판사(早川書房)에서 매월마다 오늘날까지 펴내고 있다. 원래 일본 최초의 과학소설 잡지는 1954년 창간된 [성운]이지만 단지 한 호만 내고 폐간되었다. 이후 몇몇 잡지들이 뒤를 이었으나 [SF 매거진]이 출현하기 전까지는 죄다 단명하고 말았다.

5. Takayuki Tatsumi, “Generations and Controversies: An Overview of Japanese Science Fiction, 1957-1997”, [Science Fiction Studies], #80 = Volume 27, Part 1 = March 2000

6. 실제로 쩡웬광의 <지구를 떠나 화성으로; 1954년>에서부터 통은쩡(童恩正)의 <산호섬 상공의 살인광선 珊瑚岛上的死光; 1978년>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과학소설에는 소련 과학소설의 그늘이 배어있어 1980년대까지 늘 과학지식의 보급교육을 위한 실효성 측면이 강조되었다. 이를 두고 북경사범대학(北京师范大学) 교수이자 과학소설 연구가 우옌(吴岩; 1962~ )은 <중국 과학소설의 역사와 발전>이란 에세이에서 1902년과 1979년 사이 중국에서 과학소설의 창작은 늘 일종의 공리주의(功利主義)에 순응해왔다고 비판한 바 있다.

  • 고장원 SF 평론가·작가, <세계과학소설사> 저자 다른 기사 보기
  • 저작권자 2011.05.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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