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한국 BEST SF작가 10인, 이영수(1)

[한국SF를 찾아서] 과학교양 지식을 독창적으로 활용

작가 이영수에 대한 간략한 이력

이영수의 경우 동기가 무엇이든 간에 경력은 고사하고 성별과 나이까지 밝히길 거부해온 작가이다 보니1) 구체적인 인적사항은 확언하기 어렵다. 다만 1994년부터 PC통신 하이텔(hitel)을 무대로 창작 과학소설 단편들을 발표해왔음을 고려할 때 적게는 30대 후반, 많게는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며 성별은 여러 설이 있으나 종합적으로 판단하건대 여성으로 보인다.2) (또는 적어도 여성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는 인물로 보인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이영수를 지칭하는 인칭 대명사로 ‘그녀’를 쓰려 한다.)

그녀가 창작한 소설들은 과학소설뿐 아니라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지만 과학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작품들이 가장 많은 편이다. 소설 창작 외에 영화평론에도 열심이어서 별도의 영화비평 웹사이트를 온라인에서 운영하고 있다.3) 2011년 1/4분기 현재까지 모두 여섯 권의 중단편집과 한 권의 영화평론집을 펴냈다. 2007~2010년에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하는 사이버문학광장 ‘문장’에서 창작마당 장르부문 심사위원으로서 매주 투고작들을 리뷰한 바 있다.
 

▲ 한국적인 현상과 SF의 공식들을 자연스레 버무려 장르안팎의 주목을 받은 이영수의 장편 <대리전> ⓒ이가서



작가 이영수의 가치와 한계

PC통신을 거쳐 인터넷으로 급속히 진화해온 사이버 커뮤니케이션 환경은 IT산업뿐 아니라 문화의 패러다임까지 뒤흔들어 놓았다. 과학소설도 예외가 아니어서 출판시장의 수용자로만 만족하던 사람들 대다수가 1990년대 중반 이후 이른바 통신문학이란 새로운 틀 안에서 스스로 작품을 생산하고 수용하고 비평하는 자족적인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이 가운데 높은 완성도에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운 화제작은 오프라인 단행본으로 출간되는 사례가 드물지 않았으며 이 무렵 두각을 나타낸 신예작가들 중 군계일학이 바로 이영수다. 당시 그녀를 복거일의 뒤를 이을 적자로 기대한 연유를 정리하면 대략 다음 두 가지가 될 것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과학소설이 어떠한 것인지 잘 안다. 나아가서 과학소설이 인접 장르와 어느 선까지 퓨전했을 때 서로 간에 상처를 입지 않는지도 잘 안다.4) 과학소설 장르에 대한 이영수의 이 같은 지식은 복거일과도 비견된다.5)

다만 복거일이 과학소설을 다변화하는 문화와 인간사의 제반 양상들을 포착하는 문학의 한 하위범주로 받아들이는 반면, 이영수는 장르적 속성 자체에 몸을 푹 담그고 마니아적 기질을 마음껏 발산하는 데 그 차이가 있다고나 할까. 이는 복거일이 과학소설뿐 아니라 순문학 소설도 발표했지만, 이영수는 줄곧 과학소설을 포함한 장르소설을 써왔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둘째로, 빼어난 과학소설 작가라면 그저 과학소설답게 쓸 줄 아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잘 써야 한다. 과학이론이나 객관성 있는 설정을 배경으로 삼으면서도 독자의 감동까지 이끌어내야 한다는 뜻이다. 과학과 테크놀로지를 현란하게 늘어놓는다 해서 과학소설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훌륭한 과학소설 작가가 되려면 작가로서의 기본 재능뿐 아니라, 반드시 과학자만큼은 아니더라도 과학 일반에 대한 수준 높은 교양을 지녀야 하며 그 지식을 독창적으로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바로 이영수가 이런 일에서 선수다. 단편 가운데 열에 여덟아홉은 일정 수준 이상의 완성도 높은 작품들을 내놓는다. 그녀의 문장에는 재치가 있고 단편의 특성을 감안한 절묘한 반전이 돋보이며, 특히 여성의 심리묘사에 일가견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작품들 대다수가 과학소설로 분류됨에도 불구하고 한국 과학소설의 간판으로 거론되는 시선에 대해 한동안 부담스러워 했다. (실제로 이영수는 과학소설 외에도 환타지와 미스터리, 공포, 그리고 사회풍자물 등 다양한 형식의 소설을 쓴다.6)) 작가의 이러한 심경은 수년 전 필자와 나눈 필담에서도 드러난다.

“전 한 장르를 책임질 생각은 없습니다. 국내 과학소설 시장의 발전에 대해서는 기대를 접은 지 오래고요. 저 자신에 대해 말한다면, 시장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지금은요. 단편 의뢰는 꾸준히 들어오고 출판 계획도 계속 잡혀 있으니까요. 제가 SF가 아닌 다른 장르의 픽션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장르 시장의 상태와 제 책이 계속 나오느냐는 큰 관계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니, 오히려 제가 그 좁아터진 장르의 덕을 보는 건지도 모르죠. 최근 몇 년 동안 전 ‘유일한 직업 SF 작가’ 행세를 하면서 독점권을 휘두르고 있었으니 말이죠.”
                                                           — 작가가 필자에게 보내온 편지 중에서7)
이영수 개인에게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2012년 현재 상황이 예전 같지만은 않다. 과학소설 출판시장이 2000년대 후반 들어 번역물 일변도에서 탈피해 창작물에 대한 관심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다행이라면, 이제 ‘제대로 된 SF 하면 이영수’ 그리고 ‘꾸준히 SF를 내는 작가라면 이영수’라는 패러다임이 더 이상 통용될 수 없을 만치 후배 작가들의 추격이 거세다는 점에서 분발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한 마디로 시장사정이 전보다 나아질 만하니 이영수 혼자 독식할 수 있는 구도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게 됐다는 뜻이다. 이제 창작과학소설계가 복거일이나 이영수 같은 한두 작가에 의해 풍향이 좌우되던 시절은 지났다. 김보영과 박성환 그리고 배명훈 같이 SF공모전으로 등단한 작가들과 웹진 ‘거울’에서 활동하는 작가들 그리고 박민규와 윤이형처럼 순문학계에서 등단했으나 과학소설 장르를 마음껏 주무를 수 있는 노하우를 지닌 작가들이 즐비한 터에 더 이상 이영수가 전처럼 독보적 프리미엄을 행사하기에는 상황이 녹녹치 않다.
이러한 환경변화는 이영수에게 어떤 득실이 있을까? 일단 위의 작가들보다 이영수는 단골 독자들이 많다. 그녀의 새 단행본이 나올 때마다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채가는 독자들이 여전히 적지 않다. 하지만 점차 커지고 있는 창작 과학소설 시장에서 이영수가 자신의 커버리지를 키우려면 다른 유능한 작가들과 선의의 경쟁을 해야 한다. 다시 말해 이영수는 단지 빼어난 과학소설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작가들과는 확연하게 비교되는 다른 칼라로 신규 독자와 기존 독자들을 사로잡아야 한다.

이쯤에서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위와 같은 목적 달성이 이영수의 기존 세계관과 스타일로 가능할까? 물론 한 작가의 세계관과 스타일은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며 축적된 과정의 산물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새로운 환경과 작가 역시 상호작용하지 않으면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영수의 작품들에는 이른바 ‘이영수적인’특징들이 있다. 지금까지는 이러한 특징들이 일부 단골 독자들을 만들어낼 만큼 매력적인 트레이드마크 구실을 해왔다. 그러나 전보다 다양한 메뉴를 골라 맛볼 수 있게 된 독자들 앞에서 이영수가 전과 대동소이한 메뉴판으로 견뎌낼 수 있을까?

필자가 보기에 이영수의 필력은 장편 ‘대리전; 2006년’에서 정점을 찍은 후 중편 ‘용의 이; 2007년’부터 연작집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 2008년’와 ‘제저벨; 2012년’에 이르기까지 다시 1990년대 중반 데뷔 시절의 자유분방한 허무주의로 회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든다.(글 솜씨가 아니라 작가의 세계관이 그렇다는 얘기다. 오해마시길.)

물론 이영수가 우리나라 창작 과학소설 역사에서 복거일과 2000년대 중반 이후의 젊은 작가 세대 사이를 잇는 중요한 교량 역할을 했다는 사실은 정당하게 평가돼야 마땅하다. 다만 이 글에서는 이영수가 기존 단골을 빼앗기지 않으면서 새로운 독자까지 확보하려면 되돌아보아야 할 점들이 있지는 않은지 몇 가지 사안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이영수는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글로서만 답할 뿐 직접 얼굴을 내미는 법이 없다. 일례로 그녀의 단편 ‘시간을 거슬러 간 나비; 1994년’의 말미에는 “수다장이 듀나와 이름 밝히기를 죽기보다, 아니 죽기만큼 싫어하는 누군가가 보냅니다.”라는 사족을 붙였을 정도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작가의 신비주의 전략이라는 해석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이제까지 익명으로 활동하다보니 그게 일종의 트레이드마크처럼 굳어서 새삼스레 굳이 자기 신원을 밝히는 것이 작가의 퍼소너에 부자연스러워 보여 어쩔 수 없이 신비주의 전략을 고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풀이도 있다.

2) 신분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영수는 그동안 SF 관련 오프라인 모임에 꾸준히 참석해왔으며, 출판사의 원고료 지급시에는 본인 대신 오빠의 신상정보를 제공했다는 후문이다.

3) http://djuna.cine21.com/movies/

4) 이영수의 소설을 읽다 보면, 그녀가 서구 과학소설의 역사와 시장에 대해 폭넓은 정보를 지니고 있는데다 과학소설상의 설정이 우스워 보이지 않게 현대의 첨단과학이론에 대해서도 많이 공부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2011년 현재의 젊은 작가들은 과학소설이란 장르를 어찌 다뤄야 할지 훨씬 능수능란해졌지만, 이영수가 데뷔하던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단행본을 내는 작가조차 과학소설에 대한 기본이해가 모호한 경우가 많았다. 과학소설은 인간과 사회에 대한 성찰에다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을 면밀하게 응용하지 못하면 설득력이 떨어지거나 심지어 웃음거리가 된다. 기본설정이 무너지면 아무리 애절한 내용을 담아도 다 도로 아미타불이 되는 것이다.

5) 과학소설은 아이디어에 기반을 둔 문학이라 뛰어난 문장력과 사회적 통찰력 못지않게 과학지식에 대한 일정한 식견을 요구하는데, 예컨대 이영수의 단편 ‘토끼굴’을 보면 국내 과학소설 작가들이 아직 시도해보지 못한 다차원 우주론까지 소설의 내러티브 안에 자연스레 끌어들인다.

6) 예컨대 월간 ‘판타스틱’ 2007년 5월호에 실린 단편 ‘너네 아빠 어딨니?’에서 그녀는 사회풍자와 엽기적 유머가 넉살좋게 버무려진 공포물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7) 필자가 작가와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서신 내용 중 일부의 공개는 자칫 작가에게 결례를 범할 수 있다. 하지만 필자는 수년 전 이영수의 작가론을 지면에 발표할 계획이었기에 작가 본인에게 그동안 몇 차례 나눈 필담 중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작가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내용은 일부 발췌 인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은 바 있음을 밝혀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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