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bruary 23,2019

한국 BEST SF작가 10인, 박성환(3)

사회의 병리, 종교에 대한 관심과 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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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2007년’1)는 이영수의 ‘대리전’과 일본만화 ‘기생수’의 기본설정을 한데 융합시킨 작품이다. 외계인들이 지구를 침공하기 위해 물리적으로 엄청나게 먼 거리를 구태여 우주선 타고 오는 불편을 감수하는 대신 인간의 뇌에 자신들의 의식을 다운로드한다는 설정이 전자의 예라면, 그렇게 추가 입력된 외계인의 자아가 원래 자리 잡고 있던 지구인의 자아와 하나로 융합하여 새로운 지성으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후자의 예를 닮았다. 

한국사회의 병리현상에 대한 관심,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하지만 유사한 플롯과  상관없이 박성환의 활용 의도는 다르다. 한국사회의 부조리를 세태풍자 식으로 나열하면서도 근본적으로는 여주인공의 내면심리 변화에 주목한 ‘대리전’이나, 또 인간과 외계인 간의 공존모색이란 외피를 통해 실제로는 인간과 인간의 공존, 즉 인간사회의 공존공영이란 메시지를 담은 ‘기생수’와 달리 박성환의 관심사는 현직 교사의 경험을 토대로 입시지옥이라는 말을 만들어낼 정도로 과열된 국내 교육제도의 사상누각에 메스를 들이댄다.

과학소설이 아이디어 문학이라고는 하지만 어떤 아이디어가 그것을 처음 내놓은 작가의 전유물은 아니다. 다만 유사한 공식을 쓸 때에는 활용 목적이 확연하게 차별화되어야 제대로 된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히 그러한 의도가 시대정신과 부합할 때 그러하다. 박성환은 그러한 모범을 보여준다.

▲ 박성환의 단편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또한 여러 작가들의 선집에 표제로 뽑혔다. ⓒ창비



종교 이해를 바탕으로 한 종교과학소설 ‘관광지에서’

종교와 과학소설은 얼핏 서로 상관이 없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양자 간의 관계를 다룬 과학소설이 해외에는 많이 나와 있다. 기실 따지고 보면 과학소설은 인간세상을 들여다보는 틀이고 종교 역시 마찬가지인지라 양자가 서로 만나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신 들여다보는 방식이 저마다 다를 따름이다.

사실 세상을 구원하러온 메시아의 이야기는 과학소설에서도 매력적인 소재다. 과학소설에서 종교를 바라보는 시각이 반드시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조지 R. R. 마틴(George R. R. Martin)의 중편 ‘십자가와 용의 길 The Way of Cross and Dragon; 1979년’과 로렌스 왓 에반스(Lawrence Watt-evans)의 단편 ‘신앙을 고수하라 Keep the faith; 1991년’처럼, 그리고 이영수의 많은 작품들에서처럼 기성종교의 편협한 교조주의와 이것이 사회 대중에게 미치는 해악을 우스꽝스레 비꼰 작품들도 있지만, 로벗 앤슨 하인라인의 ‘낯선 땅의 이방인 Stranger in a Strange Land; 1961년’과 어슐러 르 귄(Ursula Le Guin)의 ‘어둠의 왼손 The Left hand of Darkness; 1969년’ 그리고 오슨 스캇 카드(Orson Scott Card)의 ‘사자의 대변인 Speaker for the Dead; 1986년’처럼 메시아와 순교행위를 작품 안에 대의(大義)로 끌어안은 경우도 있다. 심지어 메시아사상에 흠뻑 젖어 있는 프랭크 허벗(Frank Herbert)의 ‘듄 Dune; 1965~1985년’에 이르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할까.

▲ 종교와 과학소설은 때로는 서로 긴밀하게 연관된다. 둘 다 인간세상을 들여다보는 틀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메시아를 긍정적인 시선에서 그린 과학소설들. ⓒSF Masterworks



박성환의 단편 ‘관광지에서; 2009년’는 서구 작품들과는 관점이 판이하게 다르다. 기성종교가 위악적이라 폄하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종교의 원형에서 미덕을 발견하려 몸 달아 하지도 않는다. 대신 부처를 찾아 나선 여행인 만큼 지극히 불교적인 결론을 내린다.
 




진정으로 인간의 눈을 가리는 것은 무엇일까? 신앙일까? 이성일까? 부질없다. 옳은 질문은 단 하나다. 그때 내 눈을 가린 것은 무엇이었나. 나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왔나. 답은 간단하다. 내 자만이, 내 무지가 내 눈을 가렸다. 이성이나 신앙이 눈을 가리는 것이 아니다. 이성이나 신앙에 기댄 자만이, 무지에 대한 무지가 눈을 가리는 것이다.
                  — <관광지에서>, 선집 <목격담, UFO는 어디서 오는가; 2010년>에 수록, 사이언티카, 343쪽

해외의 과학소설들은 종교를 우호적으로 그리든 웃음거리로 만들든 간에 흑백논리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에 비해 박성환은 주인공 ‘그’를 통해 불교에 대해 거리를 두며 회의적으로 바라보려 노력하되 불교의 본질에 대한 이해를 바탕에 깔고 있기에 궁극에 가서 위와 같은 제3의 결론에 다다른다. 결국 ‘부처님은 내 마음 안에 있다.’는 진리는 부처를 직접 만나느냐 만나지 못하느냐 와는 무관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종일관 회의하고 또 회의하는 주인공보다는 직관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그의 모친이 보여주는 태도가 훨씬 더 상위 차원의 깨달음으로 그려진다.

이처럼 종교(특히 불교)의 본질을 과학소설의 틀 안에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시각은 일찍이 김영래의 장편 ‘씨앗; 2003년’에서도 엿볼 수 있다. 아마 서구의 과학소설 작가에게서 불교에 대한 이런 식의 접근법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 주요 작품

2004 과학기술창작문예 수상집(동아 사이언스)에 ‘레디메이드 보살; 2004년’ 수록
2006 과학기술창작문예 수상집(동아 사이언스)에 ‘세상이여 안녕; 2006년’ 수록
공동선집 ‘잃어버린 개념을 찾아서; 2007년’(창비)에 동명 단편 수록
2008년 12월호[판타스틱]에 ‘재와 이름’ 수록
공동선집 ‘앱솔루트 바디; 2008년’(해토)에 ‘꿈의 입자’ 수록
공동선집 (황금가지)에 ‘잘 가거라 내 아들 엄마는 널 사랑했단다’ 수록
공동선집 ‘목격담, UFO는 어디에서 오는가; 2010년’에 ‘관광지에서’ 수록
2010년 1월호[판타스틱] 및 네이버 오늘의 문학(2010.01.01)에 ‘금5新SF’ 수록
공동선집 ‘백만 광년의 고독; 2009년’(오멜라스)에 동명 단편 수록
공동선집 ‘독재자; 2010년’(웅진 뿔)에 ‘입이 있다 그러나 비명 지를 수 없다 수록
2010년 3월호 [판타스틱]에 엽편 ‘소원’ 수록
개인선집 ‘우리의 삶을 부수기 전에 부숴야 할 것들; 2005년’(웹진 거울 개인 단편선)
개인선집 ‘전직 흡혈귀의 회고 – 2097년부터 2202년까지; 2005년’(웹진 거울 개인 단편선)





1) 이 단편은 2007년 창비에서 출간한 동명선집에 수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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