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칼럼

플라스틱은 상아 대용품에서 출발

[과학기술 넘나들기] 과학기술 넘나들기(1)

플라스틱처럼 오늘날 널리 쓰이고 있는 재료도 드물 것이다. 일상의 온갖 가정용품에서부터 여러 방면의 공업용 재료 등 쓰이지 않는 분야가 거의 없는 실정이고, 철, 구리 등 예전의 금속재료들을 급속히 대체해가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철기 문명의 시대를 넘어서 ‘플라스틱 문명시대’가 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이다.

영어 플라스틱(Plastic)의 원래 뜻은 ‘모양을 마음대로 만들 수 있는’, 즉 가소성을 지닌다는 의미이다. 따라서, 플라스틱은 특정한 한 종류의 물질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며, 오늘날 합성되는 플라스틱의 종류는 무척 많다.

셀룰로이드 칼라에 관한 당시의 광고만화. ⓒ Free Photo

셀룰로이드 칼라에 관한 당시의 광고만화. ⓒ Free Photo

이러한 플라스틱을 최초로 만든 사람은 누구이며, 최초의 플라스틱은 어떤 종류의 물질로부터 만들었을까? 오늘날의 플라스틱과는 좀 다르지만, 플라스틱의 시초는 상아의 대용품을 찾는 과정으로부터 출발하였다. 상아와 플라스틱은 성질도 다르고, 그다지 긴밀한 관계가 있을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뜻밖에도 상아 당구공을 대신할 물건을 만드는 일이 최초 플라스틱 개발의 단초를 제공했던 것이다.

당구는 우리나라에서도 대중화된 오락인데, 19세기 중반 미국 상류사회에서도 당구가 크게 유행하였다. 그런데, 당시에는 당구공을 만드는 재료로 아프리카 코끼리의 상아가 쓰였다.

오늘날에도 여러 야생동물들의 수가 급감하여 자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듯이, 당시에도 아프리카 코끼리가 점점 줄어 들게 되자 미국은 상아의 수입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원자재의 확보에 비상이 걸린 당구공 제조회사 중 하나가 급기야 거액을 상금을 내걸고 당구공을 만들 상아의 대용품을 찾기에 이르렀다.

셀룰로이드 칼라에 관한 당시의 광고. ⓒ Free Photo

셀룰로이드 칼라에 관한 당시의 광고. ⓒ Free Photo

하이아트(John Wesley Hyatt; 1837-1920)는 뉴욕주 스타키 출생으로, 16세때부터 인쇄공으로 일했는데, 손재주가 좋아서 몇가지 발명을 한 일도 있었다. 그는 1863년에 뉴욕의 거리에 나붙은 ‘당구공으로 쓸 상아의 대용품을 만드는 사람에게는 1만달러의 상금을 주겠다.’는 현상 광고를 보고 거액의 상금을 탈 생각에 현상모집에 응하기로 하였다.

그는 여러 재료들을 모아서 개발에 착수하였는데, 나무가루, 헝겊, 펄프 등을 아교풀, 녹말, 셀락, 콜로디온 등과 혼합하여 반죽해 보는 등, 여러 가지로 실험해 보았다. 처음에는 뜻대로 잘 되지 않았지만, 하이아트는 동생과 함께 상아 대용 당구공을 만드는 일에 몇 년 동안 매달린 결과, 드디어 비슷한 것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나무가루와 셀락을 혼합한 후, 그것을 콜로디온으로 접착하는 방식이었다.

하이아트 형제는 이런 방법으로 당구공을 만들어내기는 하였으나, 콜로디온이 마른 후에는 오무라들어 버리는 등의 단점이 있었으므로, 상아의 성능에는 크게 못미친다고 여겨졌기 때문인지 현상금의 일부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이아트는 다시 이러한 단점을 없애려는 노력을 기울이게 되었는데, 콜로디온 속에 있는 니트로셀룰로스 성분을 녹이는 물질을 섞으면 콜로디온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 내었다. 다시 여러 가지 약품으로 실험을 계속한 결과, 당시 신경통, 타박상 등에 바르는 약으로 쓰이던 캠퍼정기가 바로 거기에 좋은 물질이라는 사실도 밝혀 내었다.

셀룰로이드를 발명한 하이아트. ⓒ Free Photo

셀룰로이드를 발명한 하이아트. ⓒ Free Photo

캠퍼정기란 장뇌를 알코올에 녹인 것이었으므로, 니트로셀룰로스와 장뇌를 알코올에 혼합하여 가열한 결과, 1869년에 인류 최초의 플라스틱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이아트는 자신이 만든 새로운 물질의 이름을 ‘셀룰로이드’라고 지은 후, 동생과 함께 회사를 차리고 미국 특허도 취득하였다.

하이아트 형제가 생산한 셀룰로이드는 니트로셀룰로스 성분으로 인하여 폭발성이 남아 있었기 때문에 당구공으로는 그다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였으나, 다른 용도로 많이 쓰이게 되었다. 즉 하이아트의 회사는 셀룰로이드 틀니를 만들어서 판매했고, 셀룰로이드는 남성용 와이셔츠의 소매, 칼라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또한 오늘날의 플라스틱 제품들처럼, 단추, 만년필, 주사위, 크고 작은 상자 등 여러 가지 물건들을 만드는 재료로 널리 쓰였다. 하이아트는 화학공업의 발전에 크게 기여한 공적으로 1914년 퍼킨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플라스틱의 일반적인 의미인 합성수지 플라스틱은 벨기에 출신의 미국 화학자 베이클랜드(Leo Hendrik Baekeland; 1863-1944)에 의해 최초로 만들어졌다. 그는 당시 번창하던 전기공업에 꼭 필요한 물건인 새로운 절연체를 찾던 과정에서 독일의 바이어(Adolf Baeyer; 1835-1917)가 썼던 논문을 참조하여 페놀과 포르말린을 반응시키고 더 연구를 진전시켜 결국 1909년에 페놀수지의 합성에 성공하였다. 그는 이 새로운 플라스틱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베이클라이트’라고 이름지었고, 전기절연체 등의 용도로 판매하는 등 사업화에도 크게 성공하였다.

이를 계기로 화학자들은 다른 종류의 합성수지 개발에 뛰어들어, 1919년에는 페놀 수지와 비슷한 원리로 합성된 요소 수지가 등장하였고, 1930년대 이후에는 폴리스티롤, 폴리에틸렌, 멜라민 수지 등이 잇달아 합성되었으며 오늘날까지도 갖가지 다양한 종류와 기능의 플라스틱들이 계속 선보이고 있다.

페놀수지 베이클라이트를 발명한 베이클랜드. ⓒ Free Photo

페놀수지 베이클라이트를 발명한 베이클랜드. ⓒ Free Photo

또한 기존 플라스틱의 성능을 뛰어넘는 새로운 엔지니어링 플라스틱과 전도성 플라스틱 등 첨단의 플라스틱 및 고분자 재료들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즉 섬유강화 플라스틱(FRP; Fiberglass Reinforced Plastics) 등의 복합재료는 강철보다 더 단단해서 공업용 재료로 널리 쓰이고 있으며, 플라스틱은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는 기존의 상식을 깨뜨린 전도성 고분자(Conducting polymer)재료 역시 여러 분야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러나 이처럼 편리한 플라스틱은 한편으로는 거의 썩지않은 성질 때문에 환경적 측면에서는 새로운 골치 아픈 문제들을 낳게 되었는데, 플라스틱의 재활용과 아울러 친환경적인 플라스틱 물질을 개발하여 보급하는 것이 커다란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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