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gust 19,2018

프로바이오틱스는 장 건강에 효과적일까?

소장에 자리잡을 경우 문제 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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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져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이익이 나거나 최소한 본전이지 결코 손해가 나지는 않는 경우다. 건강보조식품이 대표적인 예가 아닐까.

‘어디 어디에 좋다더라’는 얘기를 듣고 사서 먹거나 선물하면서도 최소한 몸에 해롭지는 않을 것이므로 큰 부담은 없다.

2000년대 들어 인기를 끌고 있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도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유산균이 들어있는 요거트에서 십여 가지 균주가 들어있는 프로바이오틱스 캡슐까지 다양한 형태로 널리 쓰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6년 장이 건강한 사람은 프로바이오틱스가 별 소용이 없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즉 분변의 장내미생물 조성을 분석한 결과 프로바이오틱스를 먹더라도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아무튼 먹어서 해롭지는 않으니 크게 신경 쓸 결과는 아니다.

필자는 지난해 한 지인과 대화를 나누다 이분이 과민대장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이라는 얘기를 듣고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해보라고 권한 적이 있다. 장내미생물의 불균형이 원인일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였다. 그게 아니더라도 ‘밑져야 본전’일 테니까(물론 제품을 사느라 몇만 원은 나가겠지만).

그런데 얼마 전 다시 만났을 때 여전히 고생하고 있다고 해서 “프로바이오틱스가 효과가 없었냐?”고 물었는데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며칠 복용하니 증상이 더 심해져 끊었다는 것이다.

그럴 리는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필자가 의사도 아닌데 더 얘기하기도 뭐해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렸다.

소장에 자리 잡으면서 문제 일으켜

학술지 ‘임상 및 중개 소화기내과’ 6월 19일자에는 이분의 반응이 진짜일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연구결과가 실렸다.

미국 오거스타대 조지아의대 내과 연구자들은 기능성위장관장애 환자 가운데 소장세균과증식인 경우는 프로바이오틱스 복용이 증상을 유발했거나 적어도 악화시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기능성위장관장애(functional gastrointestinal disorder)는 외관상으로는 특별한 이상이 없음에도 소화기의 기능이 떨어져 복통, 복부팽만감, 설사 등의 증상이 나타나는 난치성 질환이다.

기능성소화불량과 과민대장증후군이 대표적인 기능성위장관장애다.

소장세균과증식(small intestinal bacterial overgrowth. 약자로 SIBO)은 대장에 살아야 할 장내미생물이 어떤 이유에서인지 소장에 과도하게 거주(1밀리리터에 10만 마리 이상)하는 현상이다.

그 결과 세균이 미처 소화가 안 된 음식물을 발효해 가스를 발생시켜 기능성위장관장애와 비슷한 증상을 유발한다.

실제 기능성위장관장애 환자의 절반 정도가 소장세균과증식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능성위장관장애 환자들은 속만 불편한 게 아니다. 이들 다수는 ‘브레인포그(brain fog)’ 증상을 호소한다.

즉 안개가 낀 것처럼 머리가 흐리멍텅해져 집중력과 판단력, 기억력이 떨어지는 현상이다.

브레인포그는 ‘장뇌축(gut-brain axis)’의 존재를 입증하는 대표적인 증상이다.

장이 건강한 사람은 장내미생물이 주로 대장에 거주하고 소장에는 거의 없다. 2. 반면 어떤 이유로 소장에 세균이 과다하게 증식하게 되면(SIBO) 수소와 메탄, D-젖산 등 발효산물이 나오면서 장 건강이 나빠지고 과민성대장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3. 이를 완화하려고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면 오히려 소장세균과증식이 심해져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 강석기

장이 건강한 사람은 장내미생물이 주로 대장에 거주하고 소장에는 거의 없다. 2. 반면 어떤 이유로 소장에 세균이 과다하게 증식하게 되면(SIBO) 수소와 메탄, D-젖산 등 발효산물이 나오면서 장 건강이 나빠지고 과민성대장증후군과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 3. 이를 완화하려고 프로바이오틱스를 먹으면 오히려 소장세균과증식이 심해져 상태가 더 나빠질 수 있다. ⓒ 강석기

연구자들은 기능성위장관장애로 찾아온 환자 38명 가운데 브레인포그 증상이 있는 30명과 없는 8명을 대상으로 소장세균과증식과 D-젖산산증 여부를 조사했다.

D-젖산산증(D-lactic acidosis)이란 소장에 과증식한 세균이 소화가 덜 된 음식물을 발효할 때 나오는 부산물인 D-젖산(우리 몸의 대사과정에서 나오는 L-젖산의 이성질체다)으로 체액이 산성으로 바뀌는 증상이다.

우리 몸은 D-젖산을 제대로 분해하지 못해 쉽게 축적된다.

브레인포그가 있는 30명 가운데 63%(19명)와 브레인포그가 없는 8명 가운데 25%(2명)가 소장세균과증식이었다.

한편 브레인포그 증상이 있는 30명 가운데 80%(24명)과 없는 8명 가운데 25%(2명)이 D-젖산산증을 보였다. 브레인포그 환자 가운데 소장세균과증식인 경우는 모두 D-젖산산증이었다.

그렇다면 소장의 세균을 줄이는 게 치료법이 되지 않을까.

때로는 항생제가 도움이 될 수도

연구자들은 소장세균과증식이거나 D-젖산산증인 환자들에게 항생제를 처방했고 동시에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하거나 요거트를 먹고 있을 경우 끊으라고 권했다.

참고로 브레인포그가 있는 환자 전원이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하고 있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석달이 지난 뒤 브레인포그가 있는 환자의 85%가 브레인포그 증상이 사라졌다고 답했다. 또 기능성위장관장애 증상이 확연히 개선됐다고 답한 환자도 70%에 이르렀다.

프레인포그가 없는 환자 가운데 처방을 받은 네 명도 기능성위장관장애 증상이 많이 약해진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소장세균과증식은 위산과다로 위산분비억제제(PPI)를 장기적으로 복용하는 사람에게서 나타나기 쉽다. 약물 작용으로 살균력이 있는 위산이 부족해져 소장으로 넘어간 음식물에 세균이 쉽게 증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에서 탄수화물이 풍부한 음식을 먹을 경우 소장의 효소가 포도당으로 분해(소화)하기 전에 세균이 먼저 발효를 해버리면 수소(H2)와 메탄, D-젖산 등이 만들어지면서 난리가 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과민성대장증후군을 비롯해 기능성위장관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프로바이오틱스나 요거트가 증상 완화에 도움을 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상태가 심해 브레인포그 증상까지 나타나는 환자들 전원이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하고 있었던 배경이다.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에 따르면 적어도 소장세균과증식을 동반한 기능성위장관장애 환자가 프로바이오틱스나 요거트를 ‘꾸준히’ 복용하거나 먹으면 ‘밑져야 본전’이 아니라 ‘불난 집에 부채질’을 하는 셈이 된다.

연구자들은 논문 말미에서 “의사의 권고 없이 과도하고 무분별하게 프로바이오틱스를 복용해서는 안 된다”며 “특히 위장관의 운동성이 떨어지거나 장기적으로 위산분비억제제나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하는 사람은 더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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